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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리 Oct 25. 2018

나는 좋은 향기가 나는 사람일까

가끔 왕산리에서 강남을 나갈 일이 있다. 이럴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고는 하는데 가는 길이 만만치가 않다. 광역 버스를 타면 모현읍을 지나 경기도 광주 골목골목을 거쳐 분당에 다다르는데 40분 정도가 걸린다. 분당에서는 교통 상황에 따라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로 갈아타고는 한다. 이렇게 강남까지 가는데 도로 상황에 따라 1시간 반에서 2시간이 걸린다. 이사 온 뒤부터 멀고 먼 강남행이 시작되었는데 매번 쉽지가 않다.


일단 나는 버스 멀미가 있다. 많은 경우 울렁거리는 속을 가까스로 다스리며 '조금만 더 참자 거의 다 왔어' 하고 주문을 외운다. 그러나 출렁거리는 버스에 1시간 이상 몸을 싣고 가는 건 쉽지가 않다. 심지어 이 고통을 가중시키는 게 있으니 바로 사람들의 불쾌한 냄새다.


한 번은 아침 일찍 강남을 향하는 길에 내 옆자리에 20대 젊은 아가씨가 앉았다. 막 머리를 감았는지 은은한 샴푸 냄새가 났다. 좋은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 기분이 훨씬 상쾌했다. 그런데 반대편에 자리가 비자 자리를 옮겨 앉아 버렸다. 몇 정거장은 둘 다 편하게 갈길을 갈 수 있었다. 그런데 머지않아 내 옆자리에 한 중년 아저씨가 앉으셨다.


아저씨는 담배를 많이 피우시고 술도 많이 드시는 게 분명했다. 단번에 냄새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이미 버스에 40분을 앉아 있었기에 멀미를 간신히 참고 있는 상태였는데 아저씨가 옆자리에 오신 뒤부터 울렁거림이 점점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도착지까지는 아직 30분이 남았고 우리 둘 중에 누군가가 먼저 내리기 전까지 이 고통을 참아야만 했다.


1분이 1시간 같이 느껴졌다. 머리 속은 오만 잡념으로 가득 찼다. 중년 아저씨가 어떤 모습인지, 인상이 어떤지 쳐다보지도 않은 상태였지만 이미 난 아저씨를 싫어하고 있었다. 하필 왜 내 옆자리에 앉으셨을까, 그리고 본인이 고약한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알고는 계실까? 제발 향내가 나던 아가씨 곁으로 돌아가고만 싶었다. 너무 괴로웠다.


아저씨는 본인의 냄새나는 상태가 어떠한지 인지조차 못하고 계신 게 틀림없었다. 그저 본인 하고 싶은 대로 평소처럼 하고 거리로 나왔을 테고, 평소와 다름없는 본인의 상태가 주변인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으며 괴로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계셨을 것이 틀림없다. 이미 아저씨를 미워하고 있는 나의 마음은 새까맣게 모르신 채.


다행히 나는 목적지까지 구토를 하지 않고 잘 도착할 수가 있었다. 정류장에 다다르자 창가 쪽에 앉은 나를 배려해 잠시 일어서 주시는 모습에서 아저씨가 마음은 착한 분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미 오랜 시간 나에게 피해를 끼친 불쾌한 분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의도와 상관없는 나의 행동과 습관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 있고 예상보다 큰 영향력을 끼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매일같이 나에게서 좋은 향내가 나도록 하는 사소한 행위 또한 상대방을 배려하고 기분 좋게 해 줄 수 있는 일 가운데 하나라는 것. 불편해도 참고 넘어가면 되는 일이라고 치부하지 말고 이왕이면 좋은 향기가 나는지 살펴보는 것이 나에게도 좋고 주변 누군가에게도 좋은 일을 하는 셈이 아닐까.


뿐만 아니라 작은 미소,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배려  - 이런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향기 나는 일이라는 것 또한 말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향기가 나는 사람으로 기억된다면 은근히 기쁠 것 같다. 은은한 향기라도 그에 대한 기억은 강렬하다. 고소한 빵 냄새, 쌉싸름한 커피 냄새, 향기로운 꽃 향기를 맡았던 기억이 뇌리에 남아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찾게 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오늘따라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좋은 향기로 기억되어 자꾸 보고 싶은 사람이.


우연히 지나던 골목에, 향기로 가득했던 어느 집. 2018 프랑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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