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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리 Dec 28. 2017

우리의 결혼기념일

남편 쟝은 기념일 챙기기를 좋아한다.


첫 만남, 첫 술 한잔, 첫 커피 한 잔, 첫 데이트, 첫 키스, 첫 섹스... 각자의 생일과 결혼기념일. 그렇게 날짜를 기억하고 그 날이 오면 의미를 부여하며 특별한 축하를 하고는 한다. 데이트를 하거나 작은 선물을 하거나 꽃다발을 안겨주거나 식탁에 마주 앉아 샴페인 한 잔을 부딪히거나. 때론 "자갸 오늘 우리 처음 커피 마신 날이야. 나랑 이 날부터 사랑에 빠졌지?"라고 말 한마디라도 건네며 포옹하는 것. 이렇게 기념일을 되뇌고 그 순간을 추억하는 모든 행동은 쟝의 즐거움이자 곧 나의 기쁨이 되었다.


심지어 결혼과 관련한 기념일은 두 번을 치른다. 결혼식을 올린 날혼인신고를 한 날. 처음에는 뭘 이렇게까지 하나 싶었다. 지나치게 소소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기념일 이벤트는 한국인의 전유물 아니었나? 내가 잘못 알았나 보다'하는 생각도 하고, 로맨틱한 프랑스 남자라 그런가 보다 하고 혼자 결론을 내려보기도 했다(실제로 모든 프랑스남자가 그렇지는 않다).


이렇게 기념일을 챙기다 보니 특별한 날들이 금세 돌아오고 하루가 멀다 하고 축하를 하는 기분이다. 그런데 이런 축하가 하면 할수록 참 좋다.


결혼생활은 오래될수록 익숙해지고 바쁜 일상에 젖어들기 마련이다. 신혼 때는 자주 했던 애정표현도, 감사의 마음도, 함께 하기에 기뻐했던 순간들도 점차 흐릿해진다. 당연히 살아가는 날들이 쌓이고 인생은 그렇게 살아진다. 직장일에 육아에 밀려 부부가 함께 사는 기쁨과 열정은 후순위로 묻어두게 되고 우리가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냐는 듯 다시 꺼내보기 어렵게 되기 쉽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시답잖아 보였던 남편의 소소한 기념일 챙기기가 소중하게 여겨지고 어느 순간 나 역시 은근히 동조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 12월 26일은 결혼식을 치른 지 만 2년이 되는 날이었다. 2년 전 우리는 신속하게 식을 치렀다. 당시 우리는 이미 함께 살고 있었고, 결혼식이란 공식적으로 부부가 됨을 주변에 알리는 행사에 불과했다. 한 달 뒤로 식 올릴 날을 잡고 2주 만에 준비를 마친 끝에 결혼을 했다. 마침 그해 12월 26일은 크리스마스 다음날이자 토요일이라 하객들이 참석하기도 좋다고 판단했다. '거나한 성탄절을 보내고 하루 쉰 다음에 우리 결혼식에 와!'그렇게 연말 파티의 연장선처럼 40명의 하객들과 웃고 떠들며 치른 우리만의 결혼식이었다.




그런데 막상 기념일로 여기자니 크리스마스 다음날이라 소홀해지기 쉽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부모가 되고부터 아이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과 파티 준비에 많은 신경을 쓰게 되고 우리의 이벤트는 뒷전이 되고 말았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자기야 미안해. 나 아무 준비도 못했어. 심지어 레스토랑 알아볼 생각도 못했어."


결혼기념일 당일, 함께 점심 데이트를 하러 가는 길에 쟝이 말했다. 그렇게 따지면 나 역시 마찬가지인데 남편은 기념일을 챙기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고 있었다.


"그럴 수도 있지머! 내년에는 애들을 맡기고 꼭 우리 둘만 나가서 데이트하자!"


내년은 더 멋진 데이트를 하자고 약속하면서 다음을 기약했지만 사실 나는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이유는 일상적으로 축하하며 살아가는 남편 덕분이다. 마침 1월에는 혼인신고 기념일이 기다리고 있고 3월에는 셋째가 태어날 예정이라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우리가 챙길 기념일들이 코 앞에 와 있다. 그런데 서운할 이유가 뭐 있을까! 이번 결혼기념일이 아니어도 머지않아 그가 날 기쁘게 해줄게 틀림없는데. 조금 상기된 표정과 들뜬 목소리로 "오늘은 우리가... 한 날이야!!"라고 속삭일 그의 모습이 눈 앞에 그려진다.


그리고 오랜만에 외출한 오늘, 나는 쟝이 좋아하는 티라미수 케이크를 사서 집에 들어갔다. 초를 두 개 꽂아놓고 "해피웨딩 데이~" 하며 노래를 부르고 아이와 함께 촛불을 껐다. 이틀 지난 축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우리는 마냥 좋았다. 우리의 결혼기념일은 12월 26일이지만 매일 기념하듯 살아야겠다고 다시 다짐해본다. 그게 기념일의 진짜 의미일 테니까.


준비 못했다지만.. 결혼기념일 저녁 식탁을 빛낸 쟝의 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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