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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네시 Mar 20. 2017

스물아홉생일, 사표를 결심하다

안녕, 나의 이십대

반년 전, 난 흔히 사표를 맘에 품고 다니는 직장인 중 하나였다.

일을 시작한지 2년 반. 그 작은 공간에 갇혀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는 것이 일상의 팔 할을 넘을 때 쯤,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사무실에서 서러움이 터지면 옥상에 올라가 수백 수천번 눈물을 주워 담았다. 욕과 술도 같이 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의 끝을 상상하며 집을 나섰다.


2년차 직장인치곤 적지 않은 돈을 받았다. 사업 하나하나 끝낼 때 마다 온몸으로 부딪혀 일궈내야 했다. 그만큼 성취가 컸다. 하지만 사람 스트레스는 그 모든 장점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인격을 지우고, 가면을 썼다. 그렇게 하루만큼씩 더 우울함을 채워가며 쳇바퀴 속을 내달리는 부속품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오래 연애한 남친과의 결혼 얘기가 오갔다. 볕이 따가워지기 시작하는 6월 우리는 상견례를 했다. 아버지의 퇴직, 예비신랑의 취업, 나의 나이까지 각종 상황들에 업무 스트레스까지 얹혀 입버릇처럼 일을 관두겠다 말하던 나날이었다. 시어머님과 친정 어머님의 대화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상투적인 두 부모의 대화를 들으며 불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 있었다.


애는 엄마가 키워야겠죠? 아무래도 두 명은 낳아야..."
"일 관두면 애 보면서 나중에 재취업 고민해봐도 되는거고..."


씹히는 불고기가 모래알이 되어 어적거렸다.  


"어머, 두 분 얘기 듣다보면 생기지도 않은 애기가 벌써 걸어다니는 줄 알겠어요~ 하하하"


어그러진 표정을 애써 펴보며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던졌다.

이후의 대화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머릿 속에 애 한 명 업고, 나머지 한 명은 유모차에 태운 채 낑낑거리고 있는 내 모습만 되풀이 되어 그려졌다.


-


"떠나야겠어."


7월이었다. 생일 한 달 전, 계약연장 두 달 전.

이대로 아줌마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절벽 끝에 몰렸다.

아이도 좋아하고, 아기자기한 가정을 일궈 나가는 삶도 좋았다. 하지만 결혼 이후에 책임감없이 내 인생을 즐기겠다고 떠돌아 다니는것은 무책임했다. 그러니 지금, 당장 떠나야만 했다.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려고 하니, 요새 취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거니, 나중에 언제든 갈 수 있잖니 -

란 걱정들이 사방 팔방에서 들이쳤다. 철 들지 못한 중학생이 교무실에 불려가는 기분으로 수많은 어른들의 잔소리 포화가 들이쳤다.


"언제나 가능하다는 말은 언제나 불가능하단 말과 똑같아요."

 

라고 내 뱉는 내 눈앞에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넘실 거렸다. 직전까지 사표를 쥔 마음이 나를 흔들어댔다. 결심을 흔들지 못하게 발목을 묶어놔야 했다.

 

2월 25일. 겨울이 끝나기 전 마지막 토요일로 결혼식 날을 잡았다. 곧바로 여행날짜를 뒤적였다. 앞으로 장기 여행은 쉽지 않을거란 생각버킷리스트의 큰 두 축을 여행 계획속에 밀어넣었다.


산티아고 순례길과 안나푸르나 트래킹.


큰 두축을 세우고 나니 왠지 마음이 후련했다. 결혼을 앞두고 흔쾌히 허락해 준 남친이 고마웠다. 함께 하는 결혼식 준비는 적어도 두 달 정도는 해야겠다 싶었다. 그렇게 나의 귀국 날짜는 12월 24일로 정해졌다. 거의 몇 년을 하지 않았던 영어 울렁증 해결을 위해 조금의 워밍업 기간도 넣었다. 퇴사 이후부터 약 한달가량 영어 회화와 여행준비 기간을 잡고, 비행기표가 가장 비싼 추석연휴를 살짝 넘긴 10월 10일 출국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


"계약연장 하지 않겠습니다."


8월 8일, 생일이 지나기 전 보좌관님께 사표를 건넸다. 생각보다 입을 떼는 일이 어려웠다. 장황한 이유 설명을 앞뒤로 붙였다 뗐다를 반복하며 고민하기를 십 여 일. 스물아홉 생일이라는 마음 속 데드라인이 가까워 질수록 비행기 티켓과 사표의 무게가 머릿속을 헤집었다. 하루는 보좌관님 기분이 안좋아 보였다. 다른 하루는 숙취로 하루종일 피곤했다 는 둥의 이유들로 사표 선고는 미뤄졌다. 결국 생일날 아침까지도 사표의 '사'자도 꺼내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준비를 끝내고 모든 기점을 스물아홉 생일로 맞춰 준 책을 꺼내 들었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예담. 하야마 아마리 지음.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회사 옥상에서 펑펑 울다가 직장 동료에게 전화해서 죽어버릴거라 소리를 질러댄 날이 있었다. 탈진 직전까지 울다 '내가 왜 고작 이따위 인간들 때문에 내 목숨을 버려야하나!'란 생각에 화가 나서 눈물이 멈췄다. 퉁퉁 부은 눈으로 집에 돌아가는 길에 서점에 들렀다. 그 날 이후로 내 사표의 데드라인은 스물아홉 생일 이었다.


그녀가 죽기로 결심한 날, 나는 사표를 결심했다.  

그리고 생일 날 책 앞의 꽃 한송이가 말을 건넸다.


'생일 축하해. 선물은 네 인생이야.'


-


29년. 회사 사무실과 옥상을 오가던 내 삶은 사표를 내고 두 달 후에, 세상으로 꺼내졌다. 웃고 울고 다치고 이겨냈던 나날들이 여행의 순간들에 더 고운 색을 입혀 준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사회생활을 겪지 않고 여행했다면 느끼지 못했을 새로운 생각들이 하루의 끝에서 날 반겨줬다.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꽃을 내려가면서야 볼 수 있었다던 고은 시인의 싯 구절 처럼,

떠나고 나서야 사무실 안에서 울고 불고 하던 내 모습 또한 참 소중했구나 싶었다.


결혼을 앞두고 70여일 동안 일곱 개의 나라를 돌아다녔다. 비행기도 기차도 질릴만큼 타봤다. 800키로를 걷다 무릎과 어깨도 다 터졌다. 난생 처음 고산병 증세와 싸우며 걸으며 토하는 기염도 토했다. 다녀와서 두 달 후, 파혼 당할거란 친구들의 놀림과 달리 무사히 결혼식도 치렀다.

매일 몸통만한 가방을 메고 등산화를 고쳐 신던 내 모습이 이젠 꿈 같다.

대책도 답도 없었지만 꽤 마음에 들었던 나의 스물아홉, 마지막 순간들을 붙잡아 기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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