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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네시 Oct 07. 2022

나의 유산 일기(2)

올레(2022. 9. 9.~10. 3.)


10. 1. (토) - 7주차 1일


아침에 눈을 뜨고 미적미적 거리며 아빠와 수호를 배웅했어. 엄마는 밤새 오르락내리락 하던 복잡한 마음을 애써 달래며 괜찮다는 주문을 외우고 있었어. 푹 쉬면 기분도 너의 상태도 좋아질 거라고. 아빠가 수호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면 ‘너와 건강하게 만나게 해달라고 절에 가서 기도를 하자’ 그렇게 맘을 먹었거든. 점심이 지나고 수호가 멋지게 혼자 수영을 한다는 메시지를 받았어. 간만에 날씨도 기분도 좋았어. 점심을 먹어도 속이 울렁거리지 않아서 더 좋았던 것 같아. 약한 입덧의 잔상에 살짝 흔들거리는 속을 달래며 아빠를 기다렸어.

아빠가 돌아와서는 조금 더 누워서 게으름을 피웠어. 수호가 처음으로 혼자 수영을 해서 레일을 왕복 했단 얘길 신나게 듣다가 늘어진 몸을 벌떡 일으켰어. 절에 가기 힘들다면 산책만 하자는 아빠의 제안에 왠지 오기가 생겼거든.


오후 4시였어. 너를 위한 기도를 하고, 저녁을 먹으면 딱 맞겠다 싶어 온몸에 묻은 게으름을 꾸역꾸역 털어내고 집을 나섰어. 사실 소원을 빌기 위해 절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처음이었어. 왜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어. 그리고 꼭 오늘이어야 할 것 같았어.


그렇게 우리는 삼각산 도선사로 향했어. 지난 6월 홀로 등산을 위해 북한산 백운대를 오르던 길에 지나친 절이 기억에 남았었거든. 아빠가 열심히 운전을 하는 동안 엄마는 옆에서 도선사에 대해 열심히 정보를 모았어. 그래도 널 위해 기도를 하는 곳이 어떤 곳인지는 알고 싶었거든. 태조 왕건의 탄생을 예언한 ‘도선국사’가 창건한 절이라는 배경이 맘에 들어 더 들떴던 것 같아.


북한산 탐방지원센터 앞에 주차를 하고 도선사까지 오르는 길에 접어드니 청량한 산 공기 때문인지 몸이 더 가벼워지는 기분이었어. 천왕문을 지나며 문 양쪽의 사대 천왕에게 짧은 인사를 하니, 처음 등을 달고 소원을 비는 일에 대해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했어. 조금 더 오르니 지장보살님이 보였어. 미래불인 미륵불이 올 때까지 중생의 괴로움을 보살펴준다는 지장보살님의 아래에 매달려 있는 동자 스님을 보며 너를 보듬어 주실 분이란 생각을 해서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던 것 같아.


어디로 가야 할지 헤매다가 정면에 보이는 기도 접수처로 들어가 등을 다는 일에 대해 물어보니, 오늘 당장 달 수 없고 신청을 하면 추후에 단체로 등을 달아주신다고 했어. 조금 고민하다가 작더라도 오늘 직접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싶어 초를 켜고 오기로 계획을 변경했어.


여러 차례 물어 초를 사고, 너의 이름과 엄마 이름을 함께 적고, 소원을 적어 초에 붙였어. 아빠 초에는 수호와 아빠 이름이 함께 들어갔단다. 우리 네 사람이 처음으로 가족이란 테두리에 들어온 것 같아 왠지 모든 일이 잘 될 것만 같았어.


그리고 초를 두 곳, 총 네 개에 불을 켜고 네가 건강하게 해달라고 빌었어. 거기에 엄마도 잘 되게 해달라고 숟가락도 한 번 얹어봤단다. 그렇게 불이 붙은 초들을 보며 기도를 하니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 들었어. 불안함을 외면했다는 말이 더 정확했을까.


그리고 나오는 길에 찾은 오리고기 집에서 엄마는 간만에 아주 만족스러운 저녁을 먹었어.


입덧 때문에 한동안 두 숟가락 이상을 먹은 적이 없었는데, 너무 푸짐하게 저녁을 먹고도 심지어 작은 더부룩함조차 없었어. 네가 엄마에게 준 선물 같이 완벽한 저녁 식사였단다.


그리고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 ‘가족의 의미’에 대해 한참동안 대화를 나눴어. 수호를 만나고 우리가 얼마나 변했는지. 그리고 가족을 만드는 것이 개인으로 존재하는 인간에게 얼마나 가치 있는 순간을 선물하는지. 마치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의 간증 시간 같았어.


그 대화의 순간에 너는 우리 곁에 있었을까.


처음으로 수호가 없이 너와 세 가족의 밤을 보냈어. 그리고 엄마는 자다 깨서 더욱 좋아진 컨디션에 또 한참을 울었단다. 경미한 울렁거림과 피곤함조차 없는 개운한 단잠이 이렇게 슬플 수 있을까. 짓눌리는 무거움과 쉼 없이 찰랑거리던 울렁거림이 이렇게 그리울 수 있을까. 그렇게 또 아빠를 붙잡고 하염없이 울다가 지쳐 잠이 들었단다.


10. 2. (일) - 7주차 2일


새벽에 잠을 설친 덕에 늦잠을 자서 허겁지겁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어. 수호를 데리러 가야 했거든. 요 근래 차만 타면 끊임없이 울렁거리던 입덧 증상이 무서워 챙겨 둔 입덧 사탕마저 깜빡 할 정도로 정신이 없었어. 가는 길에 토만 하지말자 되뇌며 차에 올랐어. 하지만 내 각오가 무색하게 조금의 울렁거림도 없이 무사히 호텔에 도착했단다. 입덧이 사라졌다는 기이함에 놀랄 시간도 없이, 떠나야 하는 가족들을 배웅하고 수호와 수영을 마치고 점심을 먹었어. 간만에 모든 음식이 맛있어서 쉬지 않고 이것저것 흡입했어. 잠시 스쳐가는 불안감은 기도의 효과라고 다독이며 말야.


수호와 있는 시간은 불안할 틈조차 없이 빠르게 지나갔어. 할머니가 주신 꽃게를 한 박스와 아빠의 요리 솜씨 덕분에 푸짐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어. 적당히 잘 쪄진 꽃게와 수호의 주문으로 완성된 꽃게된장라면은 여느 바닷가 식당 못지않았어.


 가족 모두 배불리 식사를 하고 침대에 누워서 엄마는 공휴일에도 여는 병원을 검색했어. 입덧 하나 없이 만족스러운 식사를 몇 번 반복하고 나니 고작 3일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너를 다시 만나야겠다는 결심 때문이었어. 불안감을 안고 다음 진료까지 일주일을 버티기엔 엄마는 겁이 많은 사람이거든.


편안한 마음으로 너와 함께하는 시간을 채우고 싶었어. 병원을 찾다가 잠이 들고 깨서 또 울었을까. 새벽에 깨서 울었던 순간들은 물기 젖은 검정색으로 가득해서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내가 건강해질수록 네가 건강하지 못한 것 같아서 온몸에 사무치게 미안함이 넘쳐 흐느꼈어. 널 만나자마자 좀 더 반겨줬다면 좋았을 텐데. 널 만나고 좀 더 누워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수많은 후회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엉키다가도 네가 들으면 아파할까 다시 나를 일으킨 밤들이었어. 우는 엄마를 걱정하느라 밤잠 설치는 네 아빠마저 불안하게 만들까 미안한 마음에 터지는 눈물을 주워 담으며 잠을 청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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