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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올린 이수민 Jan 05. 2016

어떤 슬픈 밤, 아프면 울어도 돼

말러가 들려주는 위로의 음악

어떤 슬픈 밤, 아프면 울어도 돼


오늘 아침, 친구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지인의 장례식을 가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는데 가는 길에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장례식장 분위기가 무섭지 않을까, 슬픈 얼굴을 한 친구에게 뭐라고 위로의 말을 말해야할까, 행여나 말실수를 하지는 않을까.. 

장례식장에 도착하여 본 친구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습니다. 슬픔은 쉽게 전염이 되는지, 그 모습에 저도 같이 울컥해 지더라고요. 두 손을 잡아주는것 밖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유난히 창백한 달빛을 바라보며 집에 돌아오는 길, 요즘 특히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위로가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살면서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죠. 고민과 슬픔을 꽁꽁 다져서 짊어지고 있다가 어느 때가 되면 그 무게를 견뎌내지 못하고 다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는 나의 말을 차근차근 들어주고, ‘그래 힘들었지, 다 알아.. 그래도 지금까지 아주 잘 해왔어. 수고했어.’라고 말하며 내 등을 토닥거려줄 누군가가 필요한 순간입니다. 따뜻한 눈빛과 넓은 마음을 가진 그 누군가와 마주보고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얘기할 수 있다면 더 좋겠죠. 힘들어도 힘들다 말하지 않고, 내색 않는 것이 ‘어른’이라고 배웠기에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짐을 꾸역꾸역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이런 진정한 위로의 말과 마음을 받는 그 순간, 우리는 다시 아이가 됩니다. 울고 싶으면 울고, 아프면 아프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표현할 줄 아는 아이. 의지가 되는 그 누군가에게 다 털어놓으면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눈물도 같이 펑펑 쏟을 것 같은 그런 순간과 어울리는 음악이 있습니다.     


마음을 위로해주는 음악으로 <말러심포니 5번 4악장 아다지에토>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심포니’란 관현악 합주곡을 뜻하는데 말러의 심포니 5번 4악장은 현악기군만 등장합니다. 사람의 목소리와 비슷한 현악기만으로 연주함으로써 따뜻하고 서정적인 느낌을 더하기 위함이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Adagietto 아다지에토(아다지오보다 조금 빠르게라는 뜻)’란 사실 빠르기말인데 이 곡이 워낙 유명하여 ‘아다지에토’라고 하면 말러의 곡을 제일 먼저 떠올릴 정도입니다.  

이 곡 <말러- 심포니 5번 4악장 아다지에토>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 중 하나인데요, 여러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쓰이기도 하고 미국 911테러의 희생자 추모 곡으로도 쓰였다고 합니다. 이 곡은 요즘 말로 ‘심장 폭행’하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순간도 긴장을 놓칠 수 없게 하는, 한 음도 놓치고 싶지 않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음악입니다. 7분여 되는 이 음악을 듣고 있자면 추위 때문에 꽁꽁 얼은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와 따뜻한 물로 하는 샤워가 연상됩니다. 온 몸을 감싸는 따뜻한 물길에 몸의 제일 끝부터 풀려가는, 그 알싸한 느낌이 들거든요. 꽁꽁 언 몸을 따뜻한 물이 녹이듯이, 이 음악은 딱딱하게 굳어버린 혹은 슬픔에 절어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줍니다. 

이 곡 <말러- 심포니 5번 4악장 아다지에토>는 빠르기와 악상의 급격한 변화가 특징입니다, 은은하게 시작하여 긴 호흡으로 에너지를 모았다가 한순간에 격렬하게 터뜨리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고요해지기를 반복하면서 듣는 이의 마음을 요동치게 합니다. 최근에 오케스트라의 일원으로 이 곡을 연주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바이올린이 낼 수 있는 제일 낮은 음부터 매우 높은 음까지 순식간에 넘나드는 음표들이 많아 연주하기 까다로웠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게다가 이 곡은 밀고 당기는 정도와 맺고 끊는 부분이 지휘자에 따라 그 편차가 크기 때문에 연주하는 내내 지휘자에 대한 집중을 놓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 곡을 워낙 좋아해 평소에 많이 듣는데도 불구하고 들을 때마다 따뜻하게 위로받는 느낌에 첫마디를 듣는 순간부터 눈물이 그렁그렁해집니다. 중간 중간 현악기가 울부짖는 부분에서는 심장 부근이 찌르르해지는 느낌마저 들고요.      


평소에 <말러심포니 5번 4악장 아다지에토>를 들으면서, ‘이 음악처럼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그림을 그려 봐야겠다’ 하고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울고 싶어도 약해 보일까봐,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할까봐 눈물을 참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과 마음을 담은 그림입니다. 제목은 <어떤 슬픈 밤아프면 울어도 돼>이고 제가 생각하는 슬픔의 색인 파란색과 보라색, 창백한 은색을 이용하여 그린 그림입니다.      




유난히 한국인이 화병이 많은 이유가 마음 속의 화를 제대로 꺼내어 표현하지 못해서라고 합니다. 화가 나면 화가 난다고, 기쁘면 기쁘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직접적으로 표현을 하고, 상대방으로부터 그에 대한 반응을 얻는다면 우리의 속에서 응어리진 슬픔과 고통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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