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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이베리 Nov 23. 2015

호떡 파는 노인

멈춰 설  수밖에 없는 이유

-호떡 먹고 갈래?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오빠가 말했다.  물었다가 아니라 말했다 라고 표현한 것은 커다란 현수막에 빨간색 글씨로 '인사동 명품 호떡'이라고 쓰여있는 트럭 차를 보며 이미 자동차의 속도를 늦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트럭 앞이었고 차에서 내릴 준비를 했다. 날씨가 제법 추웠지만 금방 다시 차에 탈 생각으로 담요 따위는 과감히 놓아두고 호떡을 향해 걸어갔다. 생각보다 기다리는 사람이 꽤 있어서 주위를 둘러보니 비상등을 켜 놓은 자동차 여러 대가 눈에 들어왔다. 호떡장사를 하는 주인은 70대 정도로 보이는 노인이었는데 작은 트럭 뒤편에 짐칸을 개조하여 의자를 놓고 앉아있었다.  노인이 앚아있는 공간은 허리를 겨우 펼 수 있을 만한 높이의 천정이었고 양손을 좌우로 나란히 하면 그 끝이 닿을 정도의 크기였다.  노인은 의료용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위생상의 이유이거나 혹은 하루 종일 올라오는 기름 냄새를 막고자 하였을 것이다.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내내 호떡을 만드느라 우리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움직이는 양 손과 코 끝에 내려앉은 검은색 뿔테 안경은 노인의 바쁨을 대신 말해 주는  듯했다. 우리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중년 부부와 할머니, 손자 들을 비롯한 대 여섯 명이 순서대로 종이컵에 호떡을 받아가고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 노인은 얼굴을 들어 몇 개가 호떡을 먹을 건지 말이 아닌 표정으로 우리에게 물었다.


-저희 두개만 주세요


오빠가 천 원짜리 두장을 들어 보이며 얘기하자 노인은 턱끝으로 돈통을 가리켰고 오빠는 돈통에 천 원짜리가 두 장임을 재  확인시키듯 한 장 한 장 노인이 끝까지 봐주기를 기다리며 돈을 넣었다. 우리의 호떡이 기름에서 자글자글 튀겨지는 동안 검은색 승용차 한대가 비상등을 키고 도로 한쪽에 멈춰 섰고 갈색 패딩을 입은 30대 후반의 여성이 총총 걸음으로 달려왔다. 노인이 여인에게 몇 개나 필요한지 묻자 활짝 웃으면서 '열개요!' 했고 나랑 오빠는 누가 먼 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여인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우리의 시선을 느낀 여인은 다소 머쓱하지만 곧 호떡을 먹을 생각에 기쁜지 웃으며 말했다.


-신랑이 열 개 사 오래요!

-와.. 엄청 맛있나 봐요

-맛있기도 맛있고 제가 호떡 되게 좋아하거든요


안경을  치켜올리며 웃는 모습이 꼭 고등학생 소녀 같았다. 바람이 차다며 패딩 모자를 뒤집어 쓰고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가만히 호떡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괜히 호떡 맛이 더욱 기대가 되었다. 담요를 차 안에 두고 온 것을 후회하며 말이다.


-근데 지난주에 왔더니 없으시던데..

-아 주말에는 오후에만 하고 평일에는 다 하는데 평일 중 하루는 쉬어요

-아 그렇구나.. 그럼 우리가 쉬시는 때에 왔었나 봐요


오빠가 자주 오시냐고 묻자 여인은 고개를 서너 번 끄덕였고 어떤 남자가 다가왔다. 아까 열개를 사 오라던 그 여인의 신랑 되는 사람인 듯 보였다. 여인과 비슷해 보이는 연령의 남자는 열개나  구매할 만큼 호떡에 목말라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고 아마도 아내의 성에 못 이겨 억지로 차를 끌고 온  듯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먹으러 많이 와요 공주에서도 오고 천안에서도 오고.. 이게 반죽에 곡물이 많이 들어가서 고소하고요 이 기름이 유채기름인데 타질 않아요 (기름과 물이 들이었는 500ml 생수통을 보여주며) 그리고 어떤 분은 기름 많이 들어갔다고 싫다고 하는데 이렇게 물 하고 섞이질 않으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요.


내가 이해가 잘 안 되는 표정을 짓자 오빠가 내 귀에 대고 '반죽은 물로 하잖아' 라며 속삭였고 노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기저기 차가 속도를 늦추며 정차를 하더니 순식간에 대기자가 8명이 되었다. 나는 빨리 먹고 싶은 마음보다 할아버지 혼자서 이 많은 대기자를 어떻게  수용할까 걱정이 되면서도 생각보다 장사가 잘 되어 기쁜 마음이 들었다. 일회용 비닐장갑을 낀 할아버지가 손에 묻은 기름을 티슈로 닦고 종이컵 두개를 집어 들어 호떡을 하나씩 담아 나와 오빠에게 주었다. 나는 진심을 다해서 '많이 파세요' 하고 호떡 트럭을 뒤로 한 채 차에  올라탔다. 차 안에서 호떡을 다 먹을 동안 적어도 승용차가 세 대는 더 비상등을 깜빡였을 것이다.  호떡의 맛은 기대 이상이었고 반죽은 정말이지 고소했다. 어쩌면 나도 그 갈색 패딩 여인처럼 노인의 팬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천 원짜리 호떡 하나로 행복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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