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이야기가 신문에 소개되었다
대구의료원으로 파견 근무를 나가있던 어느 날, 네이버 콘텐츠 팀(썸랩)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유튜브를 통해 '이사부 : 이렇게 사는 부부' 영상들을 인상깊게 봤습니다. 특히 대구로 아내 분을 보내기 전날 영상을 보며 저도 콧등이 시큰했는데요. 두분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저희 채널에 담아 많은 분들께 소개하고픈 마음에 연락드렸습니다."
그렇게 진행한 인터뷰가 네이버 메인과 문화일보 지면에 소개되었고, 기념하고싶은 마음에 브런치에도 스크랩한다.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에서 연락 왔어.
내일 바로 대구의료원으로 올 수 있냐고.
솔직히 겁도 나고 가족들도 걱정돼...
하지만 도울 수 있을 때 돕고 싶어.
지난 4월 9일. 간호사인 김민경 씨는 대구에서 코로나19 환자 치료 파견 의료인력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남편 최호석 씨는 그런 아내를 존경하면서도 걱정이 한가득이었다고. 두 사람은 6주간 만날 수 없는 생이별 중이다.(4주 간 의료지원, 2주 간 자가격리). 지금도 민경 씨는 코로나19와 싸우는 대구의료원의 현장에 있다. 민경 씨를 통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해당 글은 김민경 씨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1인칭 시점에서 재구성되었습니다.※
2020. 4. 8. 대구 가기 전날, 집
중수본에서 연락이 왔다. 내일 당장 대구로 올 수 있냐고. 당장 달려가 돕고 싶다는 마음이 꿈틀댔다. 대구 의료 현장에서 의료진, 특히 간호사가 얼마나 힘들 지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냥 환자를 간호하는 것도 힘든데, 겹겹이 마스크에 방호복을 입고 간호해야 한다니... 가혹하리만큼 힘든 일이다. 간호사의 마음은 간호사가 가장 잘 안다. 도움을 요청하는 그들의 손길을 외면하면 평생 마음의 짐이 될 것 같다. 하지만 고민이 된다. 혹시 파견 나갔다가 내가 감염이 된다면? 무증상 감염자가 되어 가족들에게 옮긴다면? 밤새 잠 못 들 엄마와 홀로 남을 남편이 걱정된다. 남편에게는 어떻게 말하지?...
2020. 4. 9. 대구로 가는 기차 안
어제 저녁, 남편에게 조심스레 내 생각을 털어놓았다.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간호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하고 싶었다. 남편은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정말 가고 싶어?"라는 눈빛에 걱정과 불안, 지지와 응원이 모두 보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내게, 그는 언제나처럼 "그럼 다녀와야지"라며 내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해야 해. 국가 위기 상황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네게도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거야"라는 진심 어린 남편의 말이 무엇보다 힘이 된다.
2020. 4. 20. 대구의료원 코로나19 격리병동
이곳에 온 지 2주 차. 가족을 떠나보내는 이들을 보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프다. 대형병원에서 근무하며 끊임없이 겪었던 일이지만,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코로나19 확진 이후 몇 달간 얼굴도 못 보다가, 갑작스러운 임종으로 이별한 노부부를 지켜보았다. 사랑하는 아내의 마지막 가는 길, 손 한 번 잡아주지 못한 남편의 마음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신종 감염병'이 자아낸 냉기를 체감한 순간이었다. 감정은 치사율 같은 통계 수치에는 담겨있지 않다. '치사율 낮으니까, 나는 안 걸리니까'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 신중하게 행동한다면, 이 냉기를 조금이나마 무력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가족들이 와 계시는 거 알고 계시죠, 외롭지 않게 가세요. 고생 많으셨어요.'
마음속으로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그가 살아생전 의식이 있을 때 가족들이 찾아와 줬더라면 어땠을까. 그의 곁을 조금 더 일찍 지켜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담담하고, 강직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냈던 그의 표정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렇게 그는 가족이 아니라 간호사인 내게 마지막 미소를 남긴 채로 임종했다. 그의 마지막 미소를 내가 기억하게 된 것이 괜스레 미안했다.
- 민경 씨가 쓰고, 호석 씨가 출판한 책 <나이팅게일은 죽었다> 中
2020. 5.13. 대구의 한 모텔
남편과 함께 치맥을 했다. 물론 영상통화로! 우리는 각자 치킨과 맥주를 산 뒤 휴대폰을 통해 화면 너머 서로를 바라보았다. 대구에 내려온 뒤 혼밥이 익숙해져 외로웠는데, 누군가와 대화하는 게 너무나 행복했다. 대구에서의 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얼른 직접 마주 앉아 맛있는 밥 한 끼 해먹고 싶다. 남편과 만난 이후 이렇게 긴 시간 떨어져 있기는 처음인 것 같다. 홀로 있게 되니 남편과 함께한 운명 같은 시간들이 더 생생히 기억난다.
2016년, 한 대형병원의 종양내과에서 일하며 온라인 플랫폼에 간호사의 일상과 삶에 대한 글을 썼다. 간호사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을 알리고, 인식 변화를 촉구하고 싶었다. 우연히 글을 보고 감동받은 남편이 메시지를 보냈다. 마침 남편이 사는 곳은 내가 일하던 병원 바로 옆이었다. 우리는 가볍게 차나 한 잔 마시기로 하고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만나보니 남편과 나의 가치관, 삶의 방향이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마주 앉아 바라본 그의 눈동자가 어찌나 반짝이던지. 매일 죽음 가까이서 일하던 나였는데, 남편을 보니 '살아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가 멈출 수 없이 이어져 8시간 넘게 이야기만 나눈 기억이 난다. 사실 남편이 주로 말하고 나는 들었다. 내가 듣는 법을 아는 사람이라 좋았다던 남편의 말이 생각난다. 그날부터 쭉, 남편은 간호사로서 내 삶을 존중하고 응원해 주었다. 결국 우리는 2017년 부부가 됐다.
지금도 묵묵히 기다려주는 남편이 너무 고맙다. 힘든 이 시기를 '각자의 삶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삼기로 했다. 외롭긴 하지만 이를 통해 우리 부부가 한층 더 성장해지리라 기대한다.
서울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남편, 얼른 보고 싶다!
점점 날씨가 무더워지면서 방호복 입고 2~3시간 근무하고 나오면 유니폼이 땀으로 흠뻑 젖습니다. 두 겹의 장갑을 낀 손은 마치 목욕탕에 들어갔다 나온 듯 쭈글쭈글 불어 있습니다. 500ml 생수 한 병 원샷하는 것이 그토록 쉬운 일인 줄 처음 경험했습니다. 온몸을 두들겨 맞은 듯한 느낌이 들 만큼 체력 소모가 심한 일을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해내고 있습니다. 저는 코로나19의 최전선에서 한 달여간 파견 근무를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여전히 방호복을 입고 병원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의 노고를 잊지 말아 주세요. 그분들께 마지막까지 응원의 마음을 보내주세요. 그리고 함께 코로나19가 종식하는 그날까지 노력해 주세요. :)
출처 : https://blog.naver.com/sum-lab/221960185675
▼ 대구로 떠나기 전날 밤, 부부의 대화를 담은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