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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별들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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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기 Sep 30. 2015

여행의 마지막, 이틀의 시간 -1

소매치기와 마약과 사람들

  여행의 마지막 날, 우리나라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이륙하기 3시간 전, 나는 여권과 카메라가 들어있는 작은 크로스백을 소매치기당했다. 마지막까지 조심하자며 친구와 다짐하고 숙소를 떠난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는 이른 아침이었다. 우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국제공항으로 가기 위한 열차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를 타러 떼르미니 역으로 갔다. 아침 일곱 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공항 철도에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고, 우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꼬리칸에 탔다. 열차는 5분 뒤에 출발한다. 우리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우리는 마주 보고 앉아 서로의 짐을 옆자리에 두고 각자 생각에 잠겼다. 지난 3주간의 여정을 돌아보고 있었을 것이다. 순간, 한 남자가 걸어오더니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갑작스레 이탈리아어로 쏘아대는 남자에게  "what?"이라고 되물으며 이해할 수 없다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남자는 내 정신을 쏙 빼놓도록 말을 걸어댔다. 그러더니 갑자기 휙 뒤돌아서서는 "ok, ok"하며 열차에서 내렸다. 순간 직감이 왔다. 내 짐을 가져갔다. 나는 남자가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그걸 깨닫고 쫓아나가려 했지만, 열차는 곧 출발한다. 무거운 배낭을 두고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친구에게 외쳤다. "저 XX 소매치기야! 짐 가지고 내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친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가방을 챙겼고, 나는 쏜살같이 튀어나와 그를 쫓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나는 죽을 힘을 다해 뛰었지만, 배낭은 너무 무거웠고 흐릿한 내 시야에는 다른 일당에게 내 가방을 주고 달아나는 그 남자의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나는 지하 플랫폼까지 내려가서 소매치기들을 찾았지만 그들은 순식간에 달아나버렸다. 나는 너무도 허탈하고 어이없어 눈물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이를 바득바득 갈며 떼르미니 역 내 경찰서로 갔다. 경찰서에는 나처럼 소매치기를 당한 사람들로 이른 아침부터 북적거렸다. '이래서 로마가 악명이 높다는 거구나...' 내 차례가 오자 나는 절박하게 상황 설명을 했다. "어떤 사람이 내가 탄 공항 열차 칸으로 들어와서 가방을 가지고 도망쳤어! 나는 그를 쫓았지만 잡을 수 없었어.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경찰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나에게 물었다. "대사관엔 가 봤어?"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는 질문이었다. 방금 소매치기를 당했는데 어떻게 대사관부터 찾아갈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아니, 아직 안 갔어!" 그러자 경찰관이 답했다. "여기 말고 일단 대사관부터 가서 일 처리해봐."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았지만, 시종일관 차갑게 대하는 경찰관의 모습에 나는 그만 포기하고 대사관으로 향했다. 그 자리에 있어봤자 무언가를 해 줄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둘러 택시를 잡고 대사관으로 향했다. 


 주이탈리아 한국대사관은 꽤나 멀리 떨어진 주거지역에 있었다. 나는 벨을 한참이나 눌렀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다. 허탈했다. 비행기 이륙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빨리 공항 가서 비행기 타고 한국 가." 나는 친구에게 너무 미안했다. 나 때문에 친구까지 비행기를 못 타서 시간을 허비하고 그동안 아끼고 아꼈던 경비를 추가로 지출하게 할 수는 없었다. 친구는 나와 같이 있겠다고 했지만, 나는 빨리 비행기나 타러 가라고 친구를 떠밀었다. 친구는 내내 미안해하면서 나에게 꼬깃꼬깃한 남은 현금을 모두 주었다. 부모님께 면세점에서 선물로 사다 드리려고 아낀 돈이었다. "이거로 어떻게든 버텨 보고, 연락할 수 있으면  계속할게. 몸 조심하고 빨리 와라!" 친구가 말했다. "너야말로 조심해서 가고 한국에서 보자!" 나는 애써 웃으며 담담하게 소리쳤다. 그렇게 친구는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나는 터질듯한 머릿속을 정리하며 아무도 없는 길가에 풀썩 주저앉았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인 상태였다.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대사관은 일요일에 문을 열지 않는다. 나는 인터넷을 뒤지며 위급 시 비상연락망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영사콜센터에 전화를 걸었지만, 기대했던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일요일엔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월요일에 방문해서 여권을 재발급받으라는  당부뿐이었다. 나는 오늘 잘 곳을 찾아야 했다. 한참을 기다려 마을 버스를 타고 쳐다보기도 싫은 떼르미니 역 근처로 다시 가야만 한다. 답답한 마음과 함께 여행 마지막에 가장 중요한 물건을 소매치기당한 내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언제까지 이곳에서 강제 체류를 해야 할까? 나는 한국에 도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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