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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기 Sep 19. 2015

경이로운 설산, 샤모니몽블랑에서-1

 샤모니몽블랑(Chamonix-Mont-Blanc) 으로 가는 길


  에메랄드빛 호수 마을 안시(Annecy)에서 우리는 샤모니(Chamonix)로 향하는 열차를 탔다. 샤모니는 이탈리아, 스위스와 국경이 인접한 프랑스의 알프스 산악 지역이다.  샤모니는 TGV가 아닌 지방 열차를 타고 한 번 갈아타서 다시 산악 열차로 갈아타야 할 만큼 기차로 여행하기 힘든 지역이지만, 그만큼 빼어난 경관으로 유명하며 안시와 함께 프랑스 레저스포츠의 메카 도시로 불리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무궁화 호를 타는 것만 같은 여유로운 속도에 어느새 내 눈과 마음은 창 밖의 고즈넉한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아직 설산은 보이지 않았지만 산악 지역답게 초록의 침엽수림이 날카롭게 뻗어 있었고, 마치 레고 블록의 작은 조각처럼 집들이 사이사이에 꽂혀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기차를 타고 지나갔던 마을들은 너무도 작아서, 몇 번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중간에 정차하지 않고 바로 샤모니로 향했다. 

험준한 산악 지역인 샤모니 일대는 각각의 마을을 연결하는 기차가 발달되어 있다. 

  한참을 달렸을까, 산악 기차답게 경사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너무도 얇고 가는 철근이 가파른 철도 양옆에서 혹시나 기차가 탈선할까 귀엽게 막으려는 것처럼 느껴져 웃음이 나왔다. 사진처럼 기차는 까마득한 높이 위에서 아슬아슬 곡예를 하며 운행했다. 침엽수림 한 가운데에 이름 모를 다리가 보이기 시작하자 하얀 설산이 눈을 아릿하게 만들었다. 설산은 아직 구름에 가려 그 모습을 모두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구름에 가린 그 하얀 그림자마저도 위엄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초록의 침엽수림 위로 하얀 설산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길고 긴 산악 열차의 중간 지점, '다음 역은 샤모니 몽블랑입니다.' 안내 방송을 듣고 나는 벌써부터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샤모니에서는 어떤 수많은 경험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 어떤 수많은 경험들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이곳은 Chamonix-Mont-Blanc
숙소를 찾아가는 길. 손때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샤모니.

  우리는 우선 큰 배낭을 풀고 체크인을 하기 위해 샤모니 시내와 도보로 약 2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유스호스텔로 걸어갔다. 어느샌가 도보 이삼십 분 거리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배낭은 무거웠지만, 한적하고 여유로운 샤모니의 자연 풍경과 상쾌한 공기를 마시니 마음은 너무도 가벼웠다. 한껏 푸르름을 자랑하는 초목 위로 펼쳐진 유럽의 지붕, 알프스 산맥의 설산의 풍경은 가히 비현실적이었다. 레저스포츠와 휴양 도시답게 샤모니 곳곳에는 산장과 알프스 지역 특유의 숙박 시설이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객들을 반기고 있었다. 

 호스텔에 도착하자, 우리 나이 또래 되어 보이는 예쁜 여직원이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했다. 'Bonjour' 한 마디에 여행자들을 향한 반가움과 고마움이 묻어 있었던 인사였다. 그녀는 샤모니를 여행하기 위한 안내 책자와 시내로 향하는 버스 편, 기차 편을 꼼꼼히 알아봐 주었다. 'Merci'. 우리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방에 들어가 짐을 푼 뒤 다시 나왔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몽블랑 케이블카를 타러 가는 길이었다. 저 멀리 설산 위를 향해 느릿느릿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보이기 시작하자, 가벼운 발걸음은 어느새 빠른 뜀박질로 바뀌고 있었다.



에귀디미디(Aiguille Du Midi) 전망대에서


케이블카를 타는 곳.  3842m의 아찔한 높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몽블랑이지만, 여전히 아름답다.

  케이블카 입구에는 웬일인지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원래 이렇게 사람이 없나?' 생각하려는 찰나,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해발 4000m 위의 변화무쌍한 날씨를 나타내 주는 전광판에는 우리를 탄식하게 하는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흐림' 표시 옆에 카메라로 몽블랑 정상을 찍은 영상이 흐르고 있었는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위의 날씨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안 사람들이 비싼 케이블카를 타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미 티켓을 예매해 왔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케이블카를 타야만 했다. 

케이블카는 2번에 걸쳐 운행한다. 이 곳은 케이블카를 갈아타는 중간 지점이다.

  케이블카는 중간에 한 번 갈아탈 수 있는데, 우리는 곧바로 케이블카를 갈아타지 않고 몽블랑 중턱을 자유롭게 트레킹하기로 했다. 트레킹이라고 해봤자 전문 산악인이 아니기에 걸을 수 있는 곳까지 걸어 다니는 것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알프스를 걸어 다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뿌듯했다. 

알프스 중턱의 동키(Donkey)들! 쓰다듬고 싶었지만 거친 산악 동키들이라 무서웠다...
알프스에는 짙게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
먹구름 사이사이에 햇빛이 비치며 장관을 만들어 냈다.

  먹구름이 짙게 낀 알프스 정상을 바라보며 우리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케이블카에 올라탔다. 케이블카는 거의 70도에 육박하는 급경사에 엄청난 속도로 올라갔다. 우리 나라의 케이블카를 생각한다면 크게 놀랄 것이다. 너무 빠른 속도와 중간에 덜컹거리는 아찔함은 흡사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을 선사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정원 가득 사람들을 태운 케이블카 안에서는 "Oh my god."을 외치는 관광객들의 즐거운 비명소리가 한가득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10분 정도 올라갔을까, 드디어 에귀디미디 전망대에 도착했다. 역시 날씨는 그리 맑지 않았다. 우리는 못내 아쉬웠지만, 구름 낀 몽블랑도 특유의 운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산 위로 소복히 내려앉은 하얀 눈들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짙게 낀 안개 구름만 없었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날씨는 점점 더 가혹해져만 갔다. 안개는 어느새 몽블랑 전역을 뒤덮었고, 우리는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해발 4000m 위에서 느끼는 백야 같았다. 전망대의 난간을 붙잡고 불어닥치는 맞바람을 얼굴로 견디며 섭씨 0도의 추위를 느끼고 있었던 나는 별안간 어떤 작은 검정색 형체들을 볼 수 있었다. 그 형체들은 사람들이었다. 이 궂은 날씨에도 사람들은 알프스를 몸으로 겪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도 아닌데, 괜시리 내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것은 경외심이었을까? 목숨을 걸고 알프스를 등반하는 사람들은 대단하면서도 두려운 존재였다. 나는 과연 저 사람들처럼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까?  

  대자연의 짙은 안개와 매서운 바람은 한낱 종잇장에 불과한 사람의 몸을 쉴새없이 흔들어댔다. 나는 영하의 추위에 덜덜 떨며 미약해진 중력, 거칠어진 호흡과 무거운 발걸음에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안전 시설이 되어 있다고 해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하얀 어둠 속에서, 어딘가에 발을 잘못 디뎠다가는 아무도 모르게 황천길로 떠날 수도 있었다. 우리는 무사히 지상으로 내려갈 수 있을까. 해발 3842m 위에서 나는 그 생각만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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