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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류장 Sep 20. 2018

머릿 속 계획표

강박적인 질서와 통제에서 벗어나기 

당신의 삶에서 질서와 통제를 요구하는 부분들의 리스트를 만들어라.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라.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있을 수 있다.
당신은 집이나 직장에서 사람이나, 상황, 일에서 어떤 질서를 기대하는가?
어떤 무질서가 당신을 가장 화나게 하는가?
당신이 무질서함에 화가 났을 때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그런 다음 두 칸을 만들어서 당신이 찾아낸 영역에서 질서 있고 조직적이고자 하는 시도가 갖는 이점과 단점을 써 보라. 
당신에게는 질서와 정돈이 인간관계보다 더 중요한가?
당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자기 스스로나 다른 사람들을 물건이나 기계처럼 아무런 감정도 없이 대하지는 않는가? 


때때로 나는 내 자신이 긴장이 많고 심각하다고 느껴왔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는데 전에는 가벼워지기가 어렵고, 늘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곤 했었다.

혼자 있을 때조차 긴장 상태에 있으니 어깨가 자주 아팠고, 아주 편한 사람과 함께면 그때야 풀어지곤 했다.

내 안에 일이든, 상황이든, 대화 혹은 방의 정돈 상태든 모든 것이 반듯해야만 하며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강한 욕구가 있다는 것을 안다. 흐트러진 상황에 있는 것은 늘 스트레스를 수반하지만 해결하는 데에 드는 에너지를 꺼내기가 버거워 요새는 부쩍 잘 미뤄둔다. 때문에 계속 스트레스를 받고 그래서 에너지가 부족한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같다.


특히 청결 부분에는 나만의 규칙들이 있다.

씻고 옷을 갈아 입은 뒤에야 침구를 만지고 올라 앉을 수 있다. 외출복으로 침대에 뛰어드는 일은 절대로 없다. 

집에 있는 날에도 하루에도 몇 번씩 계속해서 손을 씻고 닦으며, 휴대폰도 매일 저녁 에탄올이나 살균물티슈로 깨끗히 닦는다.

집에 자주 놀러오던 친구 중에 씻는 습관이 잘 되어 있지 않는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귀가 후 자기 전까지 왠만하면 손과 발을 잘 안씻는 편이라고 했다. 나는 그녀가 놀러오는 날에는 우선 화장실로 데려가 손과 발을 씻기는 의식부터 치뤘다. 이제는 자동적으로 손발씻기를 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냉장고는 손 씻은 뒤에야 만질 수 있다. 요리하다 보면 식재료를 다듬다가도 만지게 되는 게 냉장고 손잡이인데, 외출 후 바로 만졌다가 더러움이 옮겨갈까 싫은 것이다. 

텀블러는 한 번 쓰고 나면 씻어 말려야 하고, 세균에 대한 걱정 등으로 씻지 않은 채론 이틀 연속 사용할 수 없다.

설거지를 좋아하지 않아 꼬박꼬박 하는 편은 아닌데 요런  강박 때문에 매번 설거지 거리가 많이 쌓인다.

이불, 침대커버, 쿠션 커버 등도 한 두 달에 한 번 씩은 꼭 빨아 바싹 건조시킨다.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침구를 매번 관리해야 하니 이불이 무거운 늦가을부터 겨울, 초봄까지는 부피 큰 이불을 탑처럼 쌓아 들고 세탁방에 몇 번씩 오가야 한다. 

베개커버 역시 열심히 빨지만 대체로 수건을 깔아 교환해가며 사용한다.

세탁기는 속옷, 양말, 수건, 색이 진한 외출복, 하얀 옷, 잠옷으로 나눠 빤다. 

다행인 것은 살다보니 타협하는 순간이 갈수록 늘어가는 것이다. 

사실 쓰고 보니 전부 기본적인 것이다. 

매일 쓸고 닦으며 집안일 하나는 끝내주게 깔끔하신 우리 어머니께서 보신다면.. 이런 기본도 안지키면 어떻게 사냐고 뭐라 하실 것만 같다. 


청결에 대한 나의 규칙이 온통 무질서해지면 나는 삶의 의욕을 잃거나 스스로에게 화가 나는 증상을 보인다.

타인이 침범해 망가진 질서라면? 그 상대에게도 물론 화살이 돌아간다.

이점이라면 청결할 수 있다는 것, 단점이라면 때때로 피곤한 나 자신을 보는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또 다른 질서로는 안전과 쉼에 대한 계획이 있다. 

머릿 속에는 날마다의 계획표가 들어 있고, 그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때 불안을 느낀다.

대표적으로 갑자기 잡히는 저녁 약속이나, 홀로 푹 쉬어야 할 늦은 밤에 급한 일정이 잡히는 것처럼 무질서한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막상 사람들을 만나면 좋은 시간을 보낼 것이면서, 갑작스레 나의 시간과 계획을 통제할 수 없거나 일상의 규칙을 깨뜨리는 일이 생기는 것 자체에 강한 반감을 느낀다.  

사람 만나는 것을 마냥 좋아하던 어린 시절에는 이런 부분에 신경쓰지 않았다. "오늘 치킨?" 하면 "좋아 먹자!!!" 하던 시절이었다. 

아무래도 혼자 살면서 생긴 안전민감성과 일하며 살아남기 위해 필수적이었던 컨디션 케어 때문에 생겨난 새로운 영역인 것 같다.

  

이점을 생각해보면, 규칙적인 일상 유지와 쉬는 시간 확보,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무대뽀로 떠나던 열정이 사라진 것,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급작스런 약속조차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더 많은 부분에 대해 정돈하려는 마음이 있을 것 같다. 

나의 말과 행동, 생각의 흐름에 온통 논리를 붙이고 설명하려고 든다던가 하는.


일상 속 나를 세밀히 관찰해 보아야 겠다.

외부 질서에 대한 걱정은 스스로가 자신 안에서 느끼는 내부의 무질서에 대한 걱정이 얼마나 많으냐에 비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나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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