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과 마음의 분리
'마음을 드높이'라는 말을 오랫동안 좋아해왔다.
가톨릭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때면 이 표현이 등장한다.
마음을 드높이. 주님께 올립니다.
몇 년 간은 이 말을 '내 마음을 주님께 바친다.' 는 의미라고 생각했다.
세상에서 건져내어 주님께 드리는 마음, 오롯이 순수하고 드높고 고결하게 유지할 마음.
하느님이 좋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지, 예수님께 올려드릴 수 있을만큼 깨끗한 마음을 지녀야지.
미움도, 화도, 불순한 그 어떠한 악도 묻어있지 않도록 마음을 하늘 높이 올려두고 싶었다.
그러나 그 드높은 마음, 고결한 마음이 하루 아침에 완성될 리가 있을까.
환경과 상황에 따라, 때로는 그냥 가만히 혼자 집에 있다가도 마음은 갑자기 추락해버리곤 했다.
어제까지 열반에 오른 사람인 것마냥 평화와 안식 속에 평온하던 마음이
다음 날 한순간도 견딜 수 없는 불안증 환자가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마음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다짐하는데도 자꾸만 이런 저런 감정에 흔들리고 무너져 내렸다.
내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바로 종잡을 수 없는 내 마음이었다.
이토록 변덕스러운 마음이 사실은 내 영혼과 일치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다시 한번 이 표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마음을 드높이'
영혼과 마음을 분리하여 저 시끄럽고 제멋대로인 마음을 떼어내 드높이기 위해서는
오직 영혼의 나로써 마음에 일어나는 모든 생각과 감정과 형상들을 가만히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내 생각과 감정, 시각, 청각 등의 모든 감각을 동원한 압도적이고 입체적인 TV가 상영되고 있는 것이다.
의식을 깨워 마음 속 TV에 푹 빠진 내 영혼을 인식해야 한다.
마음 속 TV에 지나치게 집중한 의식은, 자기가 경험하고 있는 대상이 바로 나인줄 착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아니다. 길잃은 영혼일 뿐이다.
의식은 어떤 것에나 집중할 수 있다. 나 자신에게도 집중할 수 있다.
세상은 내가 지켜보고 있는 마음의 작동일 뿐,
나의 영혼은 안전하고 순수한 본질 그대로 남아 있다.
가만히 깨어있는 영혼의 상태로 나를 지켜보자.
내 마음에 수많은 악마가 들락거리는 것도,
마음을 잡아먹을 순간을 호시탐탐 노리고 가지고 노는 감정의 영향도,
사실은 나의 본질이 아니다.
TV에 온통 마음이 뺏겨 있을 때는 내 우주는 온통 그것 밖에 없다.
하지만 영상에서 빠져나와 정신을 차리면, 한 발짝만 물러서면 TV가 있는 방 전체가 보인다.
생각과 감정과 감각의 세계에 온통 집중해 있는 대신,
한 발 물러나서 모든 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때가 바로
유한에서 무한으로 물러나는 순간이다.
영원을 생각하는 영혼이 되는 바로 그 순간이, 내가 다시 깨달은 '마음을 드높이'는 순간이다.
주님께 올려드리는 마음,
일주일 내내 마음이 무슨 짓을 하든 내버려 두다가
일요일에 성당에 앉아 깨끗한 부분을 골라 떼어낸 마음은 '드높이' 올려보낼 수가 없다.
정신없고 복잡한 마음을 바라보느라 온 에너지를 다 소비하는 나날을 보내는 것을 그만두고,
하느님께 내 마음을 의지해버리고 나는 온전히 바로 서서 지금 이 순간에 머물러야 한다.
가장 내밀하고 솔직한 내 마음을 그대로 주님께 드려야 한다.
마음이 무슨 짓을 저지르든 간에, 그 마음을 통째로 들어올려야 한다.
그럴 때 나는 내 영혼을 온전히 느끼고,
현재를 분별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