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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류장 Nov 23. 2021

뜨끈한 콩나물국밥의 위로

수란은 필수


전주콩나물국밥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바로 토렴식과 한 번에 끓여 나오는 방식인데,

나에게 콩나물국밥! 하면 떠오르는 것은 단연 토렴식 국밥이다.


두 국밥의 차이는 밥에 국물을 스며들게 하는 방법만이 아니다.

토렴식 국밥에는 수란이 별도로 곁들여 나오고

끓여 나오는 국밥에는 계란이 톡 뚝배기 속에서 보글보글 끓다가 나온다.


느끼한 고기 기름칠에 밀가루를 몇 끼 연속으로 먹고 난 어느 날 저녁, 갑자기 콩나물 국밥이 먹고 싶었다.

소고기도 양념갈비도 마다하고, 콩나물 국밥만 먹고 싶은 저녁이었다.

혀가 아닌 위장에서 올라오는 이 간절함을 아는 사람, 있을까?

전주 토렴식 국밥 한 그릇을 시켜놓고, 고소한 수란에 김가루를 뿌려 콩나물과 밥 한 숟갈을 넣어 후룩 먹는 상상을 할 때쯤..


안 되겠다 싶어 인근의 콩나물국밥 식당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의외로 순대국밥과 돼지국밥집은 흔하디 흔한 반면, 콩나물국밥집은 정말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을..

그나마도 주꾸미집에서 사이드로 하는 콩나물국밥이라거나, 대강 해장용으로 콩나물국에 얼큰히 말아주는 밥이 대부분.

실망하려는 찰나 유명한 전주콩나물국밥 체인점을 발견했다.

거리는 좀 있지만.. 콩나물국밥을 먹으러 택시를 타기는 그렇고, 대중교통을 타자니 갈아타고 하기가 번거로운 길이 자전거를 타고 출동했다.

이럴 때 아무 말 않고 함께 가주는 짝꿍이 있어 얼마나 든든한지.


도착해서 토렴식 콩나물국밥을 주문하고, 오징어를 추가했다.

불과 몇 년 전 먹던 3천 원, 5천 원짜리 콩나물국밥에도

오징어와 오징어젓갈이 풍성하게 들어있는 게 기본이었는데.

이곳에서는 추가 금액을 줘야만 오징어가 함께 제공된다고 한다.

저렴한 가격에 든든하게 먹을 수 있던 콩나물국밥의 추억도 이제는 먼 옛날의 정취로 사라진다.


수란에 김가루를 찢어 넣으며 이 맛을 영원히 잊지 못하게 만들어준 '맛 따라 멋 따라'선배들을 떠올렸다.

대학시절 학교 주변의 맛집이란 맛집은 다 돌아다니며 어떻게 먹어야 더 맛난 조합인지,

어떻게 먹어야 진정한 OO대의 학우로 거듭날 수 있는지를 알려주던 재미있는 선배들.


그 선배들이 '맛 따라 멋 따라'를 조직해 제일 먼저 후배들을 데려가 준 곳이 바로, 콩나물국밥집이었다.

초가집 스타일의 콩나물국밥집은 들어가는 입구부터가 거스를 수 없는 아우라를 풍겼다.

창호지가 붙은 나무문. 황토로 바른 벽. 고소한 냄새가 가득한 낮은 천장의 공간.


조선시대 국밥집도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말을 타고 내려 들어와 "주모, 국밥 하나!"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곳에는 전주식이라는 말도, 토렴식이라는 말도, 어떤 형용사도 없었다.

그저 메뉴판에 콩나물국밥, 해물파전, 모주(되/잔). 이게 다였다.

선배들은 "이모, 5명! 모주 한 되!"라고 외쳤고 그때 그 멋짐이란.

이곳에서 맛 본 인생 첫 모주도 참 진하고 부드럽고 향긋했다.


어쩌면 위장에서부터 올라온 그리움은 콩나물국밥의 맛이 아니라

그날의 추억, 함께하던 이들과의 즐거운 분위기가 아니었을까.

배 터지게 먹고도 가격이 저렴해 선배들이 넉넉히 인심을 쓸 수 있어서 더 좋았을 것이다.


어찌 됐든 콩나물국밥 한 그릇 들이붓고 나니 예민하던 속도 다 편안해지고

장기가 씻은 듯 개운해진 느낌이었다.


신나게 자전거를 달려 집으로 돌아오며, 아무래도 수란 스댕그릇을 사서

집에서 콩나물국밥을 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오늘, 콩나물이 싸길래 한 봉다리 사서 전주식 콩나물국밥을 만들어봤다.

맛있는 재료를 아낌없이 넣고 엊그제 선물 받은 귀한 멸치액젓도 넣고.. 끓이는 식으로다가 한 그릇을 완성했다.


아. 맛은 있는데 뭔가가 부족하다.

아무래도 나는 역시 토렴식 국밥 파다.

수란 그릇을 주문해야겠다.



잊을 수 없는 맛도, 살아가는 멋도 알려주신.. '맛 따라 멋 따라' 선배님들,

잘 계시지요?




-정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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