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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기 Sep 06. 2015

Magnetic North의 Home:Word

집을 떠나기 전까지는 집을 모른단다 너는 바다 건너의 더 먼 세상 같거든

  네가 너만의 안전지대에서 나오는 순간, 네 삶이 시작되는 거라고 말했던 신과 나눈 이야기의 저자 닐 도날드 월쉬. 그의 말대로 나는 스무 살이 되어 타지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19년간 머물렀던 따뜻한 가족의 품이라는 난공불락의 안전지대를 벗어났다. 완전히 벗어났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두 시간 반 정도의 거리를 달리면 다시금 노란색 빗금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언제든 가능한 일이 아니라서 문제였다. 과제가 없고, 행사나 모임이 없고, 시험이 없다는 전제하에 완벽히 안정적인 느낌이 필요해질 때, 두 달 반 중 고작 두 번 정도를 다녀갈 수 있었으니까. 그때마다 나는 주문을 외웠다. '시간아 멈춰라.' 단지 주말의 하루, 이틀만 지내다 가는 게 아쉬워서인지 돌아가는 발걸음이 쉽사리 떼어지지 않았다.


  사실 나의 향수병이 이다지도 깊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부모님의 잔소리가 그리워지고, 동생들의 개구진 미소가 이토록이나 보고 싶을 줄이야. 가끔씩 걸려오는 전화에 울컥해져서 힘겹게 말을 잇기도 하고 때로는 연락이 오지 않으면 나를 잊은 건가, 그만큼 바쁜 건가, 아니면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싶어 전전 긍긍하기도 했다. 여섯 식구가 부대껴 살던 풍경 속에서 혼자 동떨어져 있으니 그 고달픔을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데, 가족들과 마음에서까지 멀어지는 건 아닌지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한창 자라고 있는 어린 동생의 기억 속에 내가 없음이, 가족들의 시간 속에 내 흔적이 희미해질까 속상하고 서운했다. 물보다 진한 피로 맺어진 인연이기에 괜한 걱정이었겠지만, 그만큼 가족들에 대한 생각을 한시도 끊어낼 수가 없었다. 집을 떠나기 전까지는 집을 몰랐던 것이다.


내 인생의 희로애락이 깃들어 있는 곳.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 곳. 그 소중함을.


  그러나 불안전지대에도 새로운 집이 생겼다. 정말 거짓말 같은 기적처럼, 기적 같은 거짓말처럼 시작된 삶은 점차 좋아졌으므로. 내 집 같지 않은 집이라고 여기면서도 지친 하루의 끝에서 어쩔 수 없이 머물게 되는 곳에 자연스럽게 애정이 스며들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낯선 만남이 새로운 인연의 끈을 쥐어주어 공허함이나 외로움 따위를 자주 잊고 살기 시작했고, 새롭게 좋아하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익숙하다 못해 친숙하기까지 한 장소에서 나만의 추억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제는 돌아갈 곳이 두 곳이나 된다며 태연하게 자랑도 늘어놓고, 추억할 곳도 두 곳이나 있는 셈이라며 행복한 감상에 잠겨 웃고 있는 내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그 말인 즉, 그리워할 장소도 두 곳이란 얘기가 되기 때문에 아마 나의 향수병은 평생을 고칠 수 없는 불치병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바다 건너의 더 먼 세상에도 집을 짓고 싶은 꿈이 있다. 앞으로 또 어떤 곳에 새로운 집 몇 채를 만들어 꽤 골치 아파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꿈을 따라 씩씩하게 발을 옮길 수 있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 담담해진 이 현실이 마냥 슬프지만은 않다. 이 모든 게 다섯 배의 힘을 내는 덕분이니, 여정의 마지막 걸음은 꼭 가족이 있는 내 진짜 집에 가 멎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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