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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기 Aug 25. 2015

내 존재의 증인



  내가 글쓰기에 흥미를 가졌던 건, 초등학교 4학년 시절이었다. 그때 만났던 담임 선생님께서 학급 페이지에다 일기 쓰는 숙제를 내주셨는데 그것이 전혀 의무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일기를 통해 내 하루를 기록하고 그 하루에 녹아있던 나의 감정들을 천천히 풀어내며 되돌아보는 일이 결코 노동처럼, 고되거나 힘겹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즐겁고 신선하기만 했다. 일기를 쓰면서 쪼개냈던 일상의 조각, 그 아래를 샅샅이 들춰보면 그 순간엔 무심코 지나쳤던 소중한 무언가가 반짝, 하고 빛을 냈다. 어느 누구도 반짝이는 것들을 그냥 지나치진 못할 것이다. 그 빛이 어린 꼬마의 손목을 잡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덩달아 탄력 받은 머릿속에서는 활자들이 솟구쳐 안달이었다. 저마다 세상 밖으로 나가 제 목소리를 내겠다고 아우성이어서, 일기를 쓰는 것뿐만 아니라 교내외 작문 활동에도 참여하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솔직히 털어놓자면 그 당시 나는 순수하게 글쓰기를 좋아한 것이 아니었다. 거부할 수 없는 마력에 홀린 듯 글을 쓰긴 했어도, 앞서 말했듯 단지 글쓰기의 매력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그 나이 또래 답지 않게 영악했던 나는 글쓰기를 이용해 내 존재를 증명하려고 했다. 일기 검사를 받으며 선생님께 정성어린 조언이나 칭찬을 들을 때, 상장에 쓰인 내 이름 석자와 마주할 때, 그리하여 나를 자랑스러워하시는 부모님의 다정다감한 눈길이 내게 닿았을 때, 그제야 나는 내 존재에 확신이 들었다. 맏이로 태어나면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강했던 나는 그 애처롭고 어리석은 욕구만큼이나 내 존재를 부정했던 자존감이 낮은 아이었다. 그래서 글을 팔아야만 내 존재의 가치를 높이 살 수 있다고 생각했고 어떻게든 글쓰기에 두각을 나타내려 애를 썼다. 그렇게 하면 반대로 글이 나의 존재를 드러내주었으니까, 글이 내 존재의 증인이 되는 동시에 든든한 증언을 해주는 셈이었다. 너는 여기, 아주 훌륭하게, 잘 살고 있다고 토닥이면서, 나를 기억해주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작가를 목표로 열심히 글을 썼다. 그러나 예전만큼 열성적이진 못했다. 불순한 마음가짐으로 쓰는 글은 오래가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읽기에 더 몰두했다. 고등학생 때는 비겁한 내 글들과는 차원이 다른, 진정한 예술의 혼이 담긴 책들을 따라다녔다. 숨 가쁘게 뛰거나 종종 뒷걸음 치거나 혹은 울며 주저 앉기도 하면서 나는 글과 함께 성장했다. 물론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었다. 더 이상 내가 자라지 못하도록 글이 나를 가로막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내 존재를 증명하기 급급했던 내가 글을 통해 타인의 삶과 더 긴밀하게 연결되었고 글로 써 세상과 호흡하는 법을 배우게 되면서 나아가 스토리텔러라는 꿈까지 꾸게 되었다. 오로지 나의 이야기가 아닌, 나에게서 비롯된 세상의 이야기들을 쓰고 싶다는 것이 조금 달라진 점이지만 글과 이어지는 주체는 어김없이 내 자신이었다. 글이 사라진다면 나란 존재는 무(無)에 가까워질지도 모른다는 것, 그 생각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그러니 더 절박하게, 애절하게 써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인내심을 발휘해 글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확신이 서질 않는다. 난 내 존재의 증인조차 믿지를 못하고 있다. 그는 나를 살릴 것인가, 죽일 것인가. 가끔 글을 쓰다 보면, 정말 글은 '쓰다'고 표현하고 싶을 만큼 괴로운 때가 발생한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아 감히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때, 전하고 싶은 주제는 한 가지로 분명한데 그 뜻을 명백히 짚어내지 못해 아무렇게나 주절대는 때, 수없이 고쳐도 부분마다 고장과 파손 문제를 겪을 때, 그중에서 제일 고통스러운 건 어떤 것도 흡입하지 못하는 내 글의 지루함을 스스로 견딜 수 없을 때. 이처럼 고단하고 외로운 나의 성장 과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써야 한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눈 앞에 두고 이대로 성장하기를 멈출 수는 없다. 비록 솜씨 좋은 글쟁이가 되진 못하더라도 누군가 나에게 붙여주는 작가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도록, 죄를 짓지 않는 글을 써나가고 싶다. 순전히, 그리고 오롯이 진실만을 맹세한 나의 증인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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