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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기 Jan 08. 2022

너의 안녕이 나의 안녕을 부추기는 일

"살아있길 잘했어!"

"살아있길 잘했어!"라는 말을 입 밖으로 탄성을 지르듯 내뱉을 때가 종종 있다. 두 눈이 토끼눈이 될 만큼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자주 그랬던 것 같고, 마음이 찌르르할 만큼 아름다운 장면 앞에서 내가 그 장면의 일부로 물들어가고 있음을 느낄 때도 그랬던 것 같다. 인생에 고난과 역경이 닥쳐도 끝끝내 살아있길 잘했다고, 앞으로도 악착같이 살아남아 보자고 굳센 의지와 일순간 치솟는 감동의 표현으로 나는 그 말을 의도치 않게 곧잘 꺼낸다. 그런데 최근, 주체가 나로부터 타자에게 옮겨간 채로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게 된 날이 있었다. 그 대상은 나의 오랜 고양이 이웃, 아리였다.


"아리야! 잘했어! 살아 있길 잘했어!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


  평소에 주위 사람들에게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마음으로 보듬는 인연의 생일날이 되면 나는 자연스럽게 그 문장을 시작으로, 혹은 마무리로 축하 인사를 전한다. 하지만 살아있어 줘서 고맙다는 얘기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되도록이면 앞으로도 할 일이 없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런데 예상 밖의 의외의 존재에게 그 말을 처음으로 꺼내고야 만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잘 기억은 안 나지만 햇수로 5년이 넘게 알고 지낸 길고양이, 그러므로 우리 가족의 이웃이 된 아리다. 아리는 왜 아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지도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기억을 한참 더듬어야 할 정도로 아리와 우리 가족 사이에는 꽤 오랜 세월이 쌓였다. 아마도 동생과 함께 지었던 것 같은데, 아리는 우리 집 마당을 자주 드나들면서 자연스럽게 아리가 되었다.


  워낙 고양이를 좋아하고 귀여워하는 터라 아리가 등장하면 나와 동생들은 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아리에게 다가가 관심을 보였다. 아리는 그 관심을 처음에는 낯설어하다가 어느새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도망가지 않고 멀찍한 거리에서, 담벼락에서 우리를 마주 보았다. 우리가 자신에게 해를 끼칠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눈을 맞추고 응시하다가, 시간이 흘러 긴장을 풀고 지그시 눈을 감게 되기까지 거의 5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아리는 세 마리의 새끼를 낳고, 그중 한 마리의 새끼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 두 마리의 새끼도 얼마 안가 보이지 않아 생사를 알 수 없었다. 아리도 우리에게 자세한 사연을 알려줄 수 없었다. 총명하게 반짝이던 연두색 눈동자가 흐려지고 털의 윤기가 사라져 가는 아리의 홀로 된 모습은 아리를 보면 고양이 똥냄새가 나는 것 같다며 질색팔색을 하던 엄마의 가슴도 저미게 만들었다.


"아리 쟤 좀 봐라. 불쌍하다, 야."


  아리는 불쌍한 고양이. 그러나 불행한 고양이는 아니었으면 했다. 본가에 머무는 시간이 적어 애초부터 아리를 자주 보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휴일을 맞아 본가에 있을 때면 아리가 종종 내 시간에 끼어들었다. 문 틈 사이로 까만 꼬리를 살랑살랑 움직이며 자기가 여기 와 있다는 티를 꼭 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존재를 각인시킨 사이었다. 인사를 나누는 사이었다. 인사를 하고 말을 걸다 보니 아리는 나의 언어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리야, 기다려! 나 금방 올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기다려!"


  아빠가 역정을 자주 내서 늘 고양이의 밥이 준비된 상태는 아니라 나는 홀쭉해진 몸으로 나타난 아리를 만날 때면 집 근처에 고양이 사료와 간식을 파는 곳으로 거듭 당부의 말을 남긴 채 후다닥 뛰었다. 혹시나 아리가 자리를 떠났을까 봐 마음이 급해졌다. 계산대 앞에서 동동 거리다가 결제가 끝나자마자 아리의 밥들을 품에 안고 다시 또 집까지 뛰었다. 그러면 아리는 제자리를 지키고 있거나 정말 대문까지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아리가 나의 마음까지 이해할 줄 아는 것 같아서 뙤약볕 아래 쪼그려 앉아 아리와 함께 있는 시간은 늘 넘치게 위로가 되었다. 가만히 지나가는 바람을 느끼고 바람을 따라 흔들리는 나뭇잎들의 이야기를 함께 들으며, 우리 둘 다 꼬질꼬질한 차림으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느슨해졌다. 늘 바짝 긴장한 채로 길 위에서 살아가는 아리에게 그 순간만큼은 아무 걱정도, 두려움도 없이 편안해지길 바랐다. 아리가 행복하길 바랐다. 그만큼 아리의 존재감은 커져갔고 나는 본가를 떠나서도 아리의 사진을 보며 아리를 떠올렸다. 동생에게 아리의 안부를 물었고, 아리를 봤다는 대답이 돌아오면 마음이 놓였다. 아리가 잘 살아있는 게 나에겐 가족과 친구들의 일인 양 궁금한 일이 되었고 소중한 일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에게서 아리를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는 대답을 전해 들었다. 죽은 것 같다는 이야기에 다시 또 마음을 졸였다. 아주 멀리 따뜻한 집에서 태평하게 살아가는 한낱 인간인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다시 또 아리를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아리가 무사히 돌아오게 해달라고 진심으로 바라는 것 밖에는, 다시 또 본가에 가게 될 날을 기다리며 초조해하는 것 밖에는. 사실 전에도 아리가 오랫동안 자취를 감춘 적이 있었다. 그때도 가족들은 아리가 죽은 것이 아니냐고 추측했는데, 그 추측을 보란 듯이 뒤엎으며 아리가 등장했던 적이 있다. 놀라움과 반가움도 잠시, 눈병에 걸린 채 어딘가 불편한 듯 절뚝이는 아리의 몰골을 보고 우리는 마냥 웃으며 기뻐할 수 없었다. 그 당시 아리는 전과 달리 하악질을 하며 경계했다. 몸도, 마음도 크게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어디서 도대체 무슨 일을 당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아리의 몸에 손조차 댈 수 없어서 상처 입은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지만 아리가 돌아온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전보다 조금 멀어진 거리에서, 그러나 마음만은 가까이서 아리의 이름을 부르고 밥을 챙겨주었다. 많이 힘들었냐고 물었다. 그 작은 몸으로 혼자 모든 것들을 감당하며 살아온 아리의 삶은 내내 고단함의 연속이었을 터였다. 아슬아슬 위태롭게 이어온 묘생이었을 터였다.


  그러나 내가 아는 아리는 참 영리하고 똑부러진 고양이어서 이번에도 나는 아리가 그때처럼 돌아올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그렇게 주말 동안 짧게 본가에서 머물게 된 첫날, 계속 시선이 문 밖과 창 밖을 기웃거리는 사이로 기적처럼 아리가 나타났다. 아리의 기척이 느껴지자마자 쏜살 같이 문을 활짝 열고 아리에게로 달려갔다.


"아리야!"


  아리는 총총걸음으로, 계속 나를 돌아보며 따라오라는 듯 우리가 늘 머물렀던 창고 쪽 담벼락으로 가볍게 뛰어올랐다. 그리고 늘 그랬던 것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나를 바라봤다. 급하게 구해다 준 밥을 다 먹고선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아리는 여전히 불쌍한 데다 이제는 너무 늙기까지 한 고양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고양이었다. 내가 지켜줄 수 없지만, 나의 삶과 연결되어 나를 지켜주는 고양이. 때로는 무거운 삶의 무게에 가라앉는 내 마음을 지탱해주는 세상에서 제일 다정다감한 고양이. 그동안 어떻게 살았냐고, 밥은 잘 먹고 다녔냐고, 너무 보고 싶었다고 스스럼없이 너스레를 떨 수 있는 영원히 내 삶에서 물러나지 않고 버티고 있을 고양이 이웃. 계절이 겨울로 접어들면서 추위가 점점 매서워지고 있다. 따뜻한 온기가 절실한 이웃들이 세상에는 참 많은데 그중 가장 먼저 염려되고 마음이 쓰이는 고양이 이웃 때문에 문득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아리는 내게 살아있길 잘했다고, 살아있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이웃이 있다면 오히려 내 삶이 더 포근해진다는 걸 알려주었다. 나의 안녕보다 나를 둘러싼 혹은 나를 벗어난 존재의 안녕이 나의 안녕을 부추긴다니. 그 덕분에 나는 앞으로 또 기적처럼 감탄하게 될 것이다.


"살아있길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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