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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륜휘 Sep 02. 2020

No rain

비가 안 오네

  블라인드 멜론의 ‘No rain’이라는 곡을 좋아한다. 베이시스트의 옛 여자친구는 우울증이 있었다고 한다. 해가 나도 집에 누워있는 날이 많았는데, 비가 오지 않는다며 불평하고는 했다 한다. 나가지 않아도 될 변명 거리가 비니까 말이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만나본 적 없는 누군가의 여자친구가 된 기분이었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아주 짜증스럽지도 않은 혹은 격하게 불안해하는 눈빛이 보인다. 사람들은 대게 밖에서 활동을 하는 데 누워만 있는 삶은 충분히 경험했다. 커튼을 친 5층 오피스텔은 진주남중과 세무서로 둘러져 있었다. 온종일 자동차 엔진 소리를 들었으며 어린 학생들이 등교하고 수업 중에 흘러나오는 노래도 다 들렸다. 그런데 나는 작은 매트리스 위에 누워만 있었다. 커튼을 조금 열어보면 경남과학기술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옹기종기 걷거나, 손세차장 아저씨의 하모니카 소리를 눈으로 쫓아보곤 했다. 이내 무너져 잠을 자는 날이 많았다. 저녁 아홉 시가 나의 출근 시간이었다. 구구가 운영했던 라이브바 ‘우산’에 다닐 때였다. 아홉 시에도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으면 구구에게 문자를 보내곤 했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어요.> 그러면 <네, 푹 쉬어요>라는 구구의 답이 돌아왔다. 출근을 하게 돼도 손님이 많은 날이 문제였다. 아주 간혹 많은 손님들이 공연을 보러 왔었는데, 그러면 또 시끄러운 소리들로 공황이 왔다. 얼굴이 새하얘지고 정신이 벙쪄있었다. 한 손님이 내게 “세수 좀 하고 와요.”라고 말했다. 좁은 싱크대가 있는 공간으로 들어가 세수를 하다가 콘택트렌즈 한 알이 배수구에 빠져버렸다. 한쪽 눈을 찡그린 채 나오자 그 손님은 당황해했다. 내가 왜 세수를 하고 오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 손님이 다시 말했다. “손 좀 씻어도 되냐고 말했는데.” 잘못 들었다며 웃었지만 죽고 싶은 마음이었다. 때마침 누군가 공연을 신청했고 한쪽 눈이 바보가 된 채 어색하고 죽고 싶고 울고 싶은 마음 참으며 노래를 하고 집으로 후다닥 돌아갔다. 그래서 출근하기 전 사장님에게 물어보고는 했다. <사장님, 오늘 손님이 많나요?> 그러면 사장님은 내 상태를 짐작하셨다. <오늘 무슨 모임이 오기로 했어요. 힘들면 쉬어요.> 그렇게 잠만 잔 하루를 늘려갔다. 나를 걱정하며 진주로 찾아온 엄마는 백화점에 나를 끌고 갔다. 평소 쇼핑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서였다. 나는 바닥만 보며 걷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위해 이곳저곳 들리며 옷을 입어보라, 마음에 드냐 이 옷 입고 힘내는 거라며 사주곤 했다. 집으로 돌아와 곧장 매트리스에 눕는 나를 보며, 엄마는 울었겠지. 

  태풍 마이삭이 남해안으로 지나갈 예정이다. 비가 온다. 비가 온다. 비이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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