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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시락 Oct 01. 2015

인간, 믿는 것일까 생각하는 것일까?(사편)

베이컨의 '극장의 우상'을 통해 본 인간

* 생각 좀 하고 살자는 마음으로 쓰는 철학 매거진


종족의 우상에 이어 베이컨이 말한 네 번째 우상인 '극장의 우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극장의 우상(idola theatri)'이란 전혀 실제적이지 않으면서 극적으로 구상한 세계관을 가진 철학적 논문들이나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그럴싸한 과학의 원리와 수학적 공리 등을 가리킵니다. 오래도록 전해내려온 전통이나 관습, 무비판적으로 공유하는 사회적 가치들 또는 종교적 교리들도 '극장의 우상'에 해당합니다. 그 연원도 알지 못한 채 오랜 옛날부터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극장의 우상'이 가진 특징이죠.

극장의 우상=연극이 아닌 '관객'이 문제

'극장'이라는 이름은 '극장'에서 벌어지는 연극적 요소들을 비유한 것입니다. 극장 자체가 이미 가상의 공간이고 그 가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연극 역시 가상의 상황임에도, 그것이 실제인양 희노애락을 느끼며 감상에 젖어드는 인간의 불안정함을 비판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연극에 심취하는 것은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으므로 좋은 현상임은 틀림없지만 연극이 끝난 후에는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도 있어야 합니다. 본인의 믿음에 대해서도 막이 내린 것처럼 마찬가지 태도를 취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맹목적인 믿음이 가져오는 부작용은 우리 사회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끼리 다투고, 서로 다른 학설을 믿는 사람끼리 다투고, 서로 다른 관습을 지닌 사람끼리 다투고, 서로 다른 의견과 취향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다툼의 소지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들'의 내용이 중요하기보다 '내'가 그것을 믿기에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왜 나의 믿음을 포기하기 힘들까요? 이는 '내'가 잘못됐고, 실패했고, 패배했음을 인정하기 싫어서가 아닐까요?

내가 믿는 것이 거짓일 리 없다는 그 '믿음'이 문제

무턱대고 믿는 것도 문제지만 그 '믿음'이 깨어졌을 때도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비난의 화살은 '믿었던 개인'이 아니라 그 개인이 '믿었던 대상'에 돌아갑니다. 전문가의 견해나 공신력 있는 언론의 보도를 자기의 견해인 것마냥 여겼다가 그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분노와 비난을 가하게 됩니다.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인 본인의 책임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믿었던' 사람은 본인이었고 '그렇게' 믿었던 것도 본인인데 말이죠.


'극장의 우상'은 '권위에의 호소의 오류'라는 논리적 오류와 맥락을 같이하는데, '권위에의 호소'의 오류란 어떤 권위를 가진 대상에 대한 맹신이나 무비판적 수용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흔히 "그 학자가 그랬대" 또는 "텔레비전에 나왔대"라고 하며 권위를 가진 사람의 말이나 매체의 보도를 그대로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설마 학자가 거짓말을 할 리 없고, 설마 공영 매체가 잘못된 사실을 전할 리 없으니 믿어도 될 것이다, 라고 스스로 가정을 하며 기정 사실로 인정하는 것이죠.

맹목적 믿음이 권위적인 세상을 만들어

어떤 사람의 견해나 특정 기관의 입장이 맹목적으로 지지되면 그들의 권위가 절대화되어 이에 대한 비판조차 용인되지 않는 경직된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열린 사회'가 아니라 '닫힌 사회'가 되는 것이죠. 나아가 이러한 현상이 확대되면 개인의 주체성이나 다양성을 부정하고 한 가지 이념만을 추구하거나 획일화된 가치를 지향하게 되는 전체주의적 사회로 변질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너도 옳고 나도 옳으니 서로 다투지 말자며 문제를 회피하는 사회 분위기가 되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자기의 믿음이 거짓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보통은 자기를 합리화하거나 자기와 타협하려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늘, '나의 믿음이 올바른지' 스스로 질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각을 생각하다 - 바스락 https://www.basol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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