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ms drawing Mar 05. 2016

보물 찾기

recollect [|rekə|lekt] 기억해 내다


   prologue                  


 굉음을 내며 밤 잠을 설치게 만들던 냉장고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냉장고를 구입하게 되었다.

양쪽 문을 열어 아이스크림과 딸기를 한 번에 꺼낼 수 있는 획기적인(응??) 냉장고다.

어찌나 넓고 깊은지 쓰던 냉장고의 음식들을 모조리 쓸어 넣고 바가지와 유리볼을 그대로 넣어도 자리가 남았다. 이제는 사과를 잔뜩 사서 쌓아놓을 수 있고 고기도 쟁여놓을수 있다며 엄마가 신나했다. 얼마 가지 않아 태평양 같던 냉장고가 꽉 차게 되었고 냉장고 정리용기를 2세트나 구입했다. 그럼에도 뒤쪽으로 밀려 들어간 통속에서는 토마토가 하얀 꽃을 피우고 레몬청을 만든다고 난리를 피웠던 유리병에는 파란 꽃이 두둥실 떠올랐다.

예전의 냉장고로 그동안 어떻게 있었던 것인지 갑자기 궁금했다.


냉장고는 대전 엑스포랑 동갑이었다.

1993년. 지금은 2016년.


무려 번쩍번쩍  GOLDSTAR.


지지난해 이삿짐을 정리해 주던 아주머니는 외제 냉장고냐고 물어보셔서 엄마를 당황하게 했다. 골드스타 딱지를 보시고서야 두 분은 배꼽을 잡고 웃으셨고 많은 집을 다녀봤지만 이런 냉장고를 처음 본다 싶어 오해했다고 설명하셨다.


 "다들 양문형 쓰시나 보네요. 하하하"


23년 된 낡은 냉장고. 당시 돌풍을 날렸던 김장독이 있는 나름의 김치냉장고 모델로 김치가 시어지지 않는다며 연신 극찬을 했었다. (김치냉장고는 그 이후에나 생겼으니) 이 김장독을 라이벌 회사에서 훔쳤다가 걸려서 혼이 났다는 미담(?)이 떠돌고 하얀 가전은 역시 '골드스타' 라며 혼수의 명품으로 자리 잡았었다. 냉장고를 보내던 날 김장독은 따로 챙겨두었다. 새 냉장고가 들어오고 우리 냉장고가 사다리차를 따라 내려갔다.  커다란 탑차에 올랐고(우리 집에서는 부엌의 반을 차지했지만 탑차에 오르고 보니 크기가 옹색해 보였다.)

골목을 떠날 때까지 지켜보았다. 새 냉장고가 얄미웠다.

곧 잊어버렸지만 그 날은 그랬다.


 곰팡이 핀 토마토를 정리하면서 우리 집에 얼마나 많은 물건들이 오랜 시간 함께했는지 갑자기 궁금했다.

지지난해 이사하면서 새로 바꾼 전자레인지가 전자기기 중 가장 오래되었었다. 87년 구입했었고(그랬다고 한다.) 싯 노란 기름때가 방울방울 달려있긴 해도 꽤 하얀색을 유지했고 바닥의 유리도 상태가 멀쩡했다. (새로 산 전자레인지 바닥유리는 엄마가 두 달 만에 깨 먹었다.) 마찬가지로 굉음을 내며 탈수하다가 천둥소리를 내면서 알아서 다시 첫 세탁 모드로 바뀌어버리는 세탁기도 20년이 넘었다.


 내 서랍에는 오래된 손편지가 가득하고 드로잉 수첩과 다이어리, 학창 시절 이름표도 버리지 못했다. 오래된 물건은 함께한 시간만큼 이야기가 있다. 절절할 때도 있고 피식피식 웃게 만들기도 한다.

곧 자리를 떠날지도 모르는 그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싶었다.


케케묵은 보물단지의 뚜껑을 열어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