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불편러로 전향하기
지난 주말 일본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 리무진에서 뒷자리 아이 때문에 매우 불편한 2시간을 보냈다며 분노가 가득 찬 페친의 글이 올라왔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아이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좌석을 발로 차기도 했고 옆에 앉은 보호자에게 끊임없이 큰 소리로 이야기를 했단다. 뒤를 돌아도 보고 보호자에게 눈짓을 보내보았지만 돌아보면 같이보고 눈짓을 보내면 눈짓으로 응수할 뿐, 2시간 동안 본인의 버스 수면시간을 빼앗겼다며 매우 분개해했다. 그리고 그의 또 다른 페친들은 앞다투어 자신들이 겪었던 불편한 상황들을 토로하며 소통의 활발한 장을 개척해 나갔다. 안타깝게도 나는 계속 올라오는 댓글들이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불평을 해대는 그들이 더 불편했다. 아주 간단한 문제에 묶여 과거의 분노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댓글의 꾸준한 업데이트로 페이지가 세 번째 맨 위로 올라와서야 나도 댓글을 달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당신도 책임이 있다고.
당신도 책임이 있다.
스스로를 불만에 묶어 분노로 바뀌도록 방관한 죄.
생각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에게 무관심한 듯하면서 지나치게 배려를 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본인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되는 작은 문제들에 관대 해지는 모습은 내 생각을 더 확고하게 다져준다. 그렇다면 정말 중요한 큰 문제에는 적극적으로 나설까? 그리고 그 관대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걱정이 된다. 쌓아두면 병이 되고 병이 되면 폭발한다.
나는 매우 소심하고 소심해서 다른 사람에 먼저 말을 걸거나 길을 묻는 일조차 무척 괴로워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나에게 신세계를 열어준 단어가 있었다. '프로 불편 러'
어감부터가 매력적이다. 이들은 불평을 입에 달고 살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떠들며 주변 사람들의 마음과 귀를 불편하게 만드는 재주를 지녔다. 얼마나 근사한가. 불평을 입에 달고 살다니.. 브라보! 브라바!
나의 소심은 심각할 정도였는데 머리카락이 밥알 사이에 나오면 그럴 수도 있지. 낙지를 먹다가 돌이 나와도 우리 모두 무사하니 패스. 횟집에서 고추냉이를 빠뜨리면 초장으로만 먹자. 향수 뚜껑이 깨져있어도 내가 고치면 되지. 슈퍼에서 거스름돈을 잘 못줘도 저 삼백 원은 기부했다고 치자. 앞사람의 우산에서 흐르는 물이 내 발을 적셔도 언젠가 나도 그럴 일이 있겠지.
그렇게 넘어가는 주제에 두고두고 저눔의 식당을 미워하고 저 가게 앞은 지나가지도 않고 그때 그 점원은 오늘 하루 재수 없어라 라고 저주를 거는 것이다. 방관한 분노는 나를 옹졸하고 치사하고 찌질하게 만들었다.
'프로'는 아무나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의 평안을 위해 나는 불평러가 되기로 했다. 그리고 '프로'자를 붙이기 위해 나름의 수행을 하기 시작했다. 왕처럼 화내라. 유명한 책의 제목이다. 제목만 보아도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감이 올 것이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땐 참지 말자. 그러나 구체적이고 낮은 목소리로 지적으로 차분하게 말하자. 나는 '프로'불편러니까.
그리고 생각보다 빨리 기회가 왔다. 혼자 순대국밥집에서 식사를 하는데 순댓국에서 알 수 없는 돌인지 쇠구슬인지 작은 둥근 물체가 나왔다. 생각 없이 씹었다면 큰일이었겠지만 매의 눈으로 수저 위에서 발견했고 주인아저씨를 불렀다.
"아저씨, 순대 사이에서 이런 것이 나왔어요. 이거 혹시 돌인가요? 직접 만드시는 거면 앞으로 신경 좀 더 써주세요."
주인아주머니도 무슨 일인가 뛰어나오셨다. 두 분은 매우 미안해하셨고 괜찮냐고 내 치아의 안부를 물으셨다. 나는 아직 먹기 전에 발견했으니 괜찮고 가능하다면 순대를 뺀 국밥만 새로 먹고 싶다고 했다. 아저씨는 당연하다며 머리 고기를 듬북넣어주시겠다고 했지만, 나는 머리고기는 먹지 않는다. 새 국밥을 받아 훌훌 먹고 있자 아저씨가 접시 하나를 앞에 놓으시며 산삼 뿌리인데 하나 잡수시란다. 어머나.. 이런 귀한걸 왜... 물론 먹지 않았다. 나는 삼이 받지 않는 체질이기 때문에 거절하고 국밥을 다 먹고 계산을 하려고 지갑을 열었다. 아저씨는 산삼을 안 먹었으니 그냥 가랬지만 나는 꿋꿋하게 돈을 드렸다. 새 국밥을 먹었고 국물 맛이 아주 좋았다. "돈 안 내려고 그런 것 아니에요. 잘 먹었습니다."라고 말하자 주인아주머니가 산삼을 싸가란다.
세상에... 내 첫 클레임은 정말 좋은 분들을 만나 완성되었고 나름의 멋지게 해냈다.
'프로'는 먹다가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무전취식은 하지 않아! 후훗
두 번째 기회가 왔다. 눈물 쏟을 만큼 격정의 시대물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아저씨 아주머니들 뿐 아니라 젊은 친구들로 만석이었다. 그. 런. 데.. 옆의 총각이 팝콘을 치아로 갉아먹는 듯 씹어먹는 것이 아닌가, (소리는 찍찍이가 엄마 찾는 듯 한) 게다가 옆의 애인과 팝콘 통을 흔들며 주고받느라 대사가 안 들릴 지경이었다. 오.. 주여 시험의 날이옵니다. 주인공이 눈물을 뺄 독백이 오는 순간 기회가 왔다. 총각도 영화에 빠져든 나머지 팝콘 낱알을 앞니로 잘개 부수 고만 있었다.(무아에 빠지셨군.. 그러나 혼자만 그러면 안되지. 내 무아도 지켜주길..) 대사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톡톡 쳐서 기미를 보고 "팝콘이 무척 시끄럽습니다. 조금 조용히 먹어주세요."(해냈어!!!) 총각은 흠칫 놀라더니 죄송하다고 사과하고는 팝콘 통을 애인에게 넘겨주었다. 영화의 반은 지나간 줄 알았는데 중요한 스토리를 다행하게도 충분하게 즐기고 나왔다.
이야기하지 않으면 불편 유발자들은 의식하고 있지 못할 때가 많다. 그리고 어느 때에는 내가 유발자가 되어있을 수도 있다. '프로'불편러들은 불편을 입에 달고 사는 만큼 반대로 요청이 들어왔을 때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내가 그렇게 자주 하니까. (세상은 기브 앤 테이크~! 오고 가는 요청 속에 감사함이 꽃피네..) 불편한 상황이 오면 지체하지 말고 지구의 평화와 내 마음의 안식을 위해 '프로'불편러가 되어 출동하자. 물론 워낙 소심한 사람이고 분란이 싫은 사람이라면 이야기해놓고 더욱 마음이 옥죄어 들어가 더더더 힘들 수도 있지만 그건 것이 아니라면. 단 5분이라도 버스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을 페친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뒤 돌아보며 눈짓만 하면 눈치만 봐도 되는 정도인가 보다 하고 넘어갔을 거야. 뒤를 돌아 아이에게 직접 눈을 보고 이야기했다면 조금 나아졌을 수도 있어.."
"저기, 꼬마야. 조금만 조용히 해줄래? 조금 시끄러운 것 같아. 고마워."
good job!!! 예를 들어 이렇게!!
그러고 나면 아마도 아이는 노래를 멈추던가 이야기할 때 옆 짝꿍에게 비밀 이야기를 속삭이듯 보호자에게 말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아이는 아직 못 봤다. )
이야기하고 나서 더 신경 쓰이고 혹시 뒤에서 내 욕을 하지 않을까 걱정되고 막 마음이 불편한가?
'프로'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그래도 웃자. 그리고 웃으며 이야기하자.
(시정 이후에는)
"고마워요~"
PERFECT!!!
당신의 마음에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