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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기사 Jun 21. 2017

객기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액자 속에 담긴 정우의 웃는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 소변 대에서 승리한 후 기쁨에 취해 미친 듯이 웃정우의 표정이 사진 속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몇 년 우가 강원도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호준이와 내가 만나는 것만큼 정우를 자주 만나지는 못했.

하지만 정우가 가끔 서울에 오면 용산에 사는 호준이와 마포에 사는 나는 일부러 정우를 만나러 우리가 자주 놀던 강남역까지 가서 모이곤 했다.

졸업 후에도 서너 셋이 함께  갔고 경조사도 챙겨주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정우가 어떻게 어떻게 해서 복분자주를 다량 확보했다면서 학교에 들고 왔다.

그 술은 비닐팩에 낱개 포장되어 있고 약 50개 정도 확보되어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건 술이 아니라 복분자 주스였다. 우리는 그때 그것을 술로 알고 있었다.)

그 복분자주를 먹으면 말 그대로 요강을 엎어버릴 정도의 괴력이 생긴다고 믿었다.

정우 방 침대 밑에 잘 숨겨놓고 매일 3개씩 갖고 등교해서 나누어 먹었다.


등교하자마자 화장실에 가서 모닝 복분자를 한 팩씩 마신 후 소변기에 소변을 발사했다.

처음엔 세 명이 동시에 소변기에 붙어서 시작해 서서히 뒤로 물러서는 방식이었다.

멀리 물러서면서도 가장 정확하게 소변기에 골인시키는 게 관건이었다.


아침에 일어난 후 대회 직전까지 변을 참는 것도 승리를 위한 노하우였다.

엄청난 출력으로 멀리, 그리고 정확하게 쏘려면 일단 충분한 양을 장전해놓고 있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밤새 참았던 소변을 방광에 가두어놓느라 얼굴이 노랗게 질린 적도 있었다.

객기였다.   

 

우리의 내기가 끝나고 나면 화장실 바닥은 분탕질 흔적으로 가관이었다.  

민폐였다.


요즘 소변기 위 벽에는 청결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던 옛 성인들의 격언이 예쁘게 코팅되거나 액자에 담겨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가장 고전적인 격언은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혹은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교조적인 격언은 더 이상 아무도 감동시키지 못하는 한물간 것이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뇌쇄적으로, 때로는 매정하게.

새로운 트렌드의 격언에도 좀처럼 다가오지 않는 게 현대인인데 ….


'당신이 저를 소중하게 다루어주신다면 오늘 제가 본 것은 비밀에 붙이겠습니다.'

'쓸데없이 비거리를 실험하지 마세요.'

'난 더 이상 당신에게 다가갈 수 없으니 당신이 가까이 와주세요. 좀 더.'

'그렇게 멀리 서는 건 어디서 배운 버릇이오?'


서른 일곱.

애나 어른이나 몸에 장착하고 다니는 객기를 준엄하게 꾸짖는 격언들에 이제는 순종하며 살 나이가 되었다.  

그동안 우리가 철없이 흘리고 다닌 객기를 청소하느라 고생하신 분들에게 미안해 할 나이가 이미 지났다.


회사 동료들과 저녁 식사를 하다가 그랬다는 것이다.

화장실에 붙어 있격언에 밑동만 남아 있던 정우의 객기가 소생한 것다.

정우의 회사 동료라는 사람이 그 궁서체 격언 사진을 나에게 보내줬다.

맞춤법은 많이 틀려 있었지만 퇴화된 객기를 재생시키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금연이 무슨 뜻인지 알면서도 담배에 불을 붙이신 분은  옆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담배 연기를 모두 들이마신 후 밖으로 내뿜지 맙시다.'  


담배 연기를 모두 들이마신 후 내뿜지 않는 내기를 회사 동료들과 했다는 것이다.

모두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켁켁거리며 눈물 콧물을 다 뿜어냈다는데 유독 정우만 그 독한 담배 연기를 다 들이마셨다는 것이다.

정우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정신을 잃었고 병원에 실려갔지만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단다.

객기였다.


고등학생 때도 그랬다.

바닥에 소변 분탕질을 하는 바람에 다른 아이가 미끄러져 팔이 부러진 적이 있지만, 그래서 내가 이제 그만 하자고 말렸지만 정우는 그 많은 복분자주를 다 먹어치울 때까지 매일 그 이상한 대회를 이어다.

번번이 호준이에게 지는 게 싫었던 것이다.  

결국 마지막 소변 대회에서 정우는 호준이의 소변발을 누르고 승리했다.

호준이가 일부러 져준 것일 수도 있다.


호준이와 나는 처음 겪는 친구의 죽음에 황당한 마음을 가눌 수 없어서 적지 않은 술을 들이켰다.

밤이 깊어지자 정우네 가족들의 울음 소리도 잦아들었고 조문객들도 대부분 돌아갔다.

호준이와 나는 밤을 새워야 할지 돌아가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다가 가족들 눈치도 보이고 해서 어색한 눈짓을 교환한 후 함께 일어났다.  


담배 연기에 의한 질식사라고 결론이 내려졌지만, 그 죽음의 원인이 '연기'가 아니라 '객기'라는 걸 호준이와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누구도, 심지어 우리도 정우의 죽음에 직접적인 책임은 없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객기'를 20년 동안 유지할 수 있도록 응원하거나 묵인해온 것이 우리 둘이라는 걸 호준이와 나는 공감하고 있었다.


장례식장 화장실에선 가족들과 마주칠까봐 일부러 병원 본관의 화장실로 갔다.  

소변기로부터의 거리와 자신의 능력이 비례한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남자들의 객기를 경계하는 격언이 어김없이 소변기 위에 붙어 있었다.

'너무 먼 당신 때문에 나의 바닥은 마를 날이 없습니다. ㅠㅠ'


"그 와중에도 먹긴 많이 먹었다. 그치?"

"그러게. 무슨 염치로 그렇게 오래 앉아 있었는지 …."


친구를 잃은 슬픔,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 처음 겪는 사건에 대한 당황스러움이 참았던 소변에 농축되어 소변기로 분출되었다.

차라리 시원했다.


"먼저 간 놈만 불쌍하지."

"…."


쾌변을 느끼느라 잠시 감았던 눈을 뜬 순간 난 보았다.

아! 이럴수가.

확실히 보았다.

적당히 취해서 몸을 약간 흐느적거리던 호준이가 소변기로부터 조금씩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20년 전 그때처럼 서서히.


'이건 뭐지? 혹시, 객기? . 아니겠지. 아닐 거야.'


그렇다면,

먼저 간 친구를 추억하는 것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러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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