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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기사 Feb 10. 2021

일이 점점 커진다

나 때문에

아브라함 한 사람의 불신과 조급증 때문에 적자인 이삭보다 먼저 서자 이스마엘이 태어났고, 이삭의 후손과 이스마엘의 후손이 이스라엘 땅에 대한 정통성 분쟁을 멈추지 않았고, 종교를 이유로 전쟁이 일어났고, 전쟁 때문에 동서양 문물의 교류가 활발해졌고, 사람들의 의식이 성장했고, 인본주의가 싹을 틔웠고, 르네상스가 일어났고, 산업이 발전했고, 물자가 풍부해졌고,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로 양분되었고, 빈부의 차이가 심해졌고, 그래서 우리가 요 모양 요 꼴로 사는 거라며 우리들의 세계사 6천 년어치를 아브라함 한 사람의 결함 때문이라고 퉁쳐버리신 고등학생 때 역사 선생님 얘기를 당시엔 이해 못 했었는데 실제로 요 모양 요 꼴로 살다 보니 그 긴 세계사의 시작과 전개를 너무나 격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일이 점점 커진다.'는 개념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칠판 왼쪽 끝에 숫자 '1'을 아주 작게 쓰고 점점점점 크게 칠판의 오른쪽 끝까지 '1'을 연달아 쓰셨던, 2 역사 선생님 덕분에 일이 커지는 단초는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명심하기 시작했다.


'요나 콤플렉스'자신의 재능을 과소평가하고 후퇴하려고만 하는 나약한 인간 심리를 말한다. 큰 일을 앞두고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숨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게 요나 콤플렉스다. 어떤 모임이든 요나는 반드시 있고, 그 요나 때문에 모임은 시련과 좌절을 겪기도 한다.


내가 그랬다. 내가 다녔던 회사가 폐업할 때 나 때문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내가 속했던 동호회가 깨질 때 역시 나 때문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조직과 모임에서 항상 나는 작은 분자에 지나지 않았지만 파산의 원인이 나에게도 상당히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무슨 겸양의 덕,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나 때문에》라는 그림책에 나오는 고양이가 일을 치르고 말았다.

집 안에 있는 화병의 꽃이 활짝 피고 꽃망울이 톡 터진 걸 고양이는 태어나서 처음 본 것이다. 엄마와 아빠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아이들과 뛰어 다녔고, 화병 위로 뛰어 올랐고, 화병이 떨어져 깨졌고, 깨진 화병 조각을 밟아서 아빠의 발에 피가 났고, 아이들을 잘 돌보지 않았다면서 엄마와 아빠가 싸웠다. 고양이를 쫓아내라고 엄마가 소리쳤고, 아이들은 이 모든 상황이 당혹스러워서 울었다.

고양이가 화병 위로 펄쩍 뛰어 오르는 작은 행동 하나 때문에 집 안이 완전 난리가 난 것이다.

일이 점점 커진다

한 사람, 혹은 아주 사소한  때문에 역사가 바뀐 경우가 많다. 엄밀히 말하면 바뀐 게 아니고 처음부터 그쪽으로 가고 있던 거였지만. 


1914년 보스니아의 학생 몇 명이 공부에 싫증이 나서 사라예보를 방문 중이던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페르디난트 대공을 암살하는 바람에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테런스 딕스, 『주머니 속의 유럽사』, 85쪽


2011년 시리아 남부의 도시 데라에서 15명의 학생들이 자스민혁명 당시의 구호를 벽에 써놓았다는 이유로 체포되었고, 학생들을 석방하라는 요구에 정부가 과잉 대응하면서 시리아 내전이 시작되었다. 1,000만 명의 국민이 내전을 피해 집과 조국을 떠나 국내외로 도피생활을 하고 있다.

모르텐 뒤르, 『제노비아』, 98쪽


아픈 기억은 좋은 기억더 많이, 더 오래 남아서 그것 때문에 절망을 더 쉽게 하고 좌절을 더 오래 가져가는 것 같다. 우리 인생에 기쁜 일과 슬픈 일 중 어느 것이 더 많이 일어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쁜 일보다 슬픈 일이 더 또렷하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건 확실한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구체적인 과오보다는 아픈 기억이 더 선명하게 남는 법이다. 


지금의 나의 언행이 어떤 자국을 남길지 두렵다.


중국의 사상가인 노자가 는 말을 곱씹어보았다.

'선행무철적 선언무하적(善行無轍迹 善言無瑕跡) : 행군을 잘하는 군대는 수레바퀴 자국을 남기지 않고, 말을 잘하는 사람은 흠을 남기지 않는다.'


궤변이 아니면 명하기 어려운 인생 요 모양 요 꼴 흠과 자국을 반드시 남길 텐데 어떻게 걸어다녀야 할지 난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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