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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PD Apr 20. 2021

극단의 왕국의 우울한 인간들

<블랙 스완>을 읽고

세계금융위기를 예측한 남자가 있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그가 2007년 <블랙스완> 책을 썼을때 뉴욕타임즈는 비판적인 서평을 실었고, 그의 논리를 반박하는 세 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고 한다. 채1년도 되지 않아 그의 말은 사실이 되었고, 그는 말 그대로 확 떠버렸다. 그는 이제 '월스트리트의 현자'라고 불리우며 '블랙스완'은 롱테일이나 티핑포인트처럼 경제경영계의 혁신적 개념으로 주목한다. <블랙스완>책을 보면 그가 22살이던 2월의 어느날 학교 선배에게 직업충고를 받던 장면이 나온다. 그 선배는 그에게 말한다. '규모불변적인'직업을 택하라고. 



규모불변적인 직업은 무엇이냐? 노동시간에 따라 급여를 받지 않는, 따라서 노동의 총량의 한계에 종속되지 않는 직업이다.치과의사와 작가를 비교해보자. 치과의사 같은 직업은 규모가변적이지 않다. 일정한 시간에 받을 수 있는 환자나 고객의 수에 상한선이 있고 의사결정의 질이 아닌 줄기찬 노동의 양이 수입을 결정한다. 이런 직업은 충분히 예상할수 있는 일들만 일어난다. 선생님, 공무원, 식당주인, 창녀 등이 이런 일들이다. 



그렇다면, 규모가변적인 직업이란 무엇인가? 약간의 노력만 더하거나 전혀 그런것 없이도 잘하면 수입 뒷자리에 0이 몇 개씩 더 붙을 수 있는 직업들이다. 예를 들자면, 작가, 영화배우, 가수나 연주자 이런 것들이다. 한 명이 보나 100만명이 보나 책 한 권을 쓰는데 필요한 노력은 똑같다, 그러면서 그는 말한다. 



"만일 내가 충고를 하는 입장이라면, 나는 규모불변적인 직업을 선택하라고 조언해줄 것이다. 규모가변적인 직업은 성공하는 경우에만 좋다. 그러한 직업은 경쟁이 극심하고, 괴물 같은 불평등을 낳고, 너무나 우연적이며, 노력과 보상 사이의 불일치가 너무 크다. 몇몇이 파이의 대부분을 차지해 버리고, 나머지 대다수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빈털터리 신세를 면치 못한다. 직업에는 두 가지 범주가 있다. 첫 번째 범주는 평범한 것, 평균적인 것, 중도적인 것에 의해 추동된다. 여기서는 평범한 것이 집단적으로 과실을 얻는다. 다른 한 가지 범주에서는 거인이 되거나 난쟁이가 되거나 둘 중 하나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극소수는 거인이 되고, 절대 다수는 난쟁이가 된다."


나는 이 부분을 보고 갑자기 울컥했다. 그동안 내가 했던 수많은 고민들, 수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몇 가지의 고민들에 대한 답이 보이는 듯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열심히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루지 않겠냐고, 1만 시간 정도만 해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기회를 찾아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은 내재화된다. 원하는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력했는데도 원하는 성과를 만들지 못했다면, 제대로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노력했는데도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면,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트렌드분석을 하고 베스트분석을 하고 올해의 키워드를 정리하고 앞으로의 키워드를 뽑았다. 미래를 예측하자. 다가올 미래의 딱 반발자국 앞에 서야한다. 그 반발자국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인문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노력과 결과 사이의 불일치에 대해 속상해했다. 




자, 이쯤에서 한번 보자. 블랙스완이란 무엇인가? ‘검은백조’는 세 가지 특징을 갖는 매우 개연성이 희박한 사건을 가리킨다. 첫째 예측이 불가능하고, 둘째 엄청난 충격을 동반하며, 셋째 일단 현실로 나타나면 사람들은 뒤늦게 설명을 시도하여 마치 설명 가능하고 예견 가능했던 것처럼 여기게 만든다. 이 모든 특성은 내가 종사하는 출판계의 특성과 딱 맞아 떨어진다. 재작년에 컬러링책이 처음 나왔을 때 나는, 과연 이런게 팔릴까? 생각했었다. 그 생각은 올해 '초판본'열풍도 똑같았다. 우리나라에는 초판본 시장이 없다고 확신했던 나였다.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던 빅셀러들이 나오자 사람들은 뒤늦게 그 현상에 대해 이러저러한 이유를 갖다붙이기 시작했다. 나는 또 그것들을 열심히 찾아읽으며 앞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곤 햇다. 



어쩌면 나는 게임의 룰을 잘못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종사하는 이곳은 평균회귀의 곡선이 통하는 곳이 아니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극단의 왕국이다. 극단의 왕국에 있는 인간은 우울하다. 그 인간은 매일 자신이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과 행운이 내편이 아닌지로 모른다는 패배감과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거라는 죄책감에 마음을 졸인다. 자신의 성공에 대한 욕망으로 마음을 졸인다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실망한 얼굴을 보아야하고, 자신의 노력과 결과 사이에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것을 뼈속깊이 사무치면서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행운같은 것)에 결국 자신의 운명이 가름될 수 없다는 것을 괴로와한다.  규모가변적인 직종에 살고 있는 규모불변적인 인간에게 이 세계는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갑고, 너무 크거나 너무 작고,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 왕국에 살고 있는 이한테 다 잘되거라는 희망과 위안은 무책임한 현실회피의 표현일 뿐이다. 이 세계에서는 다 잘되지 않는다. 극히 소수의 0.1% 정도되는사람만이 잘된다. 그 0.1%와 99.9%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 0.1%는 똑똑하고 잘나고 현명하고 암튼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태어난 아웃라이어거나 세상의 통념에 순응하지 않고 독창성을 가진 오리지날스라서 그런가? 그 말은 사실이기도 하고 사실이 아니기도 하다. 그들은 분명 뛰어난 자질을 가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외의 사람들이 그들만큼 뛰어난 자질이 없던 것도 아니다. 그들의 성공은 단지 결과론적으로만 해석할 수 있을 뿐이다. 결과론적으로만 해석할 수 있는 일은, 예측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느냐. 이 극단의 왕국에서 우울증에 피폐한 얼굴로 평범의 왕국을 찾아 떠나야 하나? 아님 평생 내것이 되지 않을 행운을 기다리며 그저 계속해서 이일을 꾸준히 하는 것말고는 답이 없는 것인가? 누군가 22살 정도의 사람이 나에게 묻는다면, 나도 저자처럼 규모불변적인 직업을 택하라고 할 것 같다. 그런데 이미 이쪽으로 들어와버린 이에게는? 아니 이쪽에 대한 애증이 너무 깊어서 결코 다른 쪽으로 갈 것 같지 않은 이에게는 뭐라고 조언할 수 있을까? 저자는 말한다. 




검은 백조 현상은 예측 불가능성이 특징이므로 우리는 (순진하게도 그것을 예측하겠다고 노력하기보다)그 미지의 가능성에 고분고분 순응하는 편이 옳다. 반지식, 즉 우리가 모르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우리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검은 백조 현상에 노출될 기회를 최대한 늘리면 기대 밖의 (유리한) 결과를 뜻밖에 얻는 행운도 늘어날 수 있다. (...) 자유시장이 작동하는 것은 기술이 뛰어난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 혹은 인센티브 때문이 아니라 누구든 공격적인 시행착오 끝에 행운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공의 전략은 간단하다. 최대한 집적거리라. 그리하여 검은 백조가 출몰할 기회를 최대한 늘리라. 



그렇다. 가능성 0.1%. 그 가능성에 거는 것도, 걸지 않는 것도 결국 우리의 선택이다. 그리고 만약 0.1%에 걸겠다면, 극단의 왕국에서 기꺼이 피가 마르기를 선택했다면, 최대한 집적거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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