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스튜디오 임장기(1), 헤메다

런던에서 홈리스된 썰

by 지구별
KakaoTalk_20250912_141624209.jpg 런던에서 처음 둘러본 스튜디오는 비대면 방식 확인이었다.

런던에 도착한 다음날, 가장 먼저 한 일은 휴대전화 개통이었다. 숙소에서 가까운 유스턴역 안 마트에서 영국판 알뜰폰 통신사 레바라(Lebara)의 유심을 샀다. 보다폰의 통신망을 써서 안정적이라는 평이 많았다.(하지만 써보니 한국처럼 어디서든 통신이 터진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인터넷이 안되는 곳도 많다) 마트 직원이 "개통은 니가 해야 하는 거 알지?" 라고 말해서 몰랐지만 "당연하지" 하고 쿨하게 대답하고 나왔다.

유심핀까지 알아서 준비해야 하는지는 몰랐지만 다행히 지난 여행에서 쓰고 남은 유심핀이 가방 속에 들어있었다.(휴 과거의 나여, 감사합니다.) 휴대전화 개통을 서둘렀던 이유는 임장 때문이었다. 그렇다. 나에게 있는 시간은 9박 10일. 숙소 예약이 끝나기 전에 집을 구하고 이사하기가 가장 큰 목표였기 때문이다.

이때만 해도 나는 몰랐다. 이게 얼마나 무모한 계획인지를. 특히, 나처럼 거슬리는 게 많은 사람한테는 더더욱 그랬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이때만 해도 얼른 집을 구하고 뚝딱 이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휴대전화 개설 직후, 영국 집구하기 3대장 온라인 사이트 '오픈렌트'(openrent), '주플라'(zoopla), '라이트무브'(Rightmove)에서 스튜디오 찾기에 들어갔다. 만약 단독으로 쓰는 집이 아니라 쉐어 하우스의 방을 구한다면 '스페어룸'(Spareroom)이라는 사이트도 있다. 하지만 예산이 더 들더라도 쉐어보다는 나만의 공간을 찾고 싶어서 스페어룸은 들여다 보지도 않았다.

영국 부동산 3대장 사이트에서 원하는 지역과 예산을 설정하면 조건에 맞는 집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직방이나 다방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많았다. 오픈렌트는 한국의 당근처럼 집주인이나 대리인(주로 플랫 매니저)가 직접 물건을 올리는 시스템이었다. 겪어보니 집주인이 직접 올리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플랫 매니저이거나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소규모 부동산 에이전시가 담당했다.

반면 주플라와 라이트무브는 대규모 부동산 에이전시가 물건을 올렸다. 어차피 임차인 입장에서는 중개료를 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어떤 플랫폼을 써도 무방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방식이 달라 재밌었다.

나같은 경우 주로 오픈렌트를 이용했는데, 가장 직관적이고 대리인과 소통이 편했기 때문이다. 첫 3일 정도는 오픈렌트로 메시지를 넣고 '뷰잉'(viewing, 임장) 약속을 잡았다. 내 상황을 솔직하게 쓰고, 가능하면 빨리 집을 보기를 바란다, 오늘도 좋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솔직히 임장 전까지는 걱정이 많았다. 외국인이라고 집을 안 보여주면 어떡하지 등등. 하지만 기우였다. 런던은 전 세계 외국인이 모여드는 메트로폴리탄 도시였다. 워킹 홀리데이로 런던을 찾은 수많은 한국인 블로거들이 블로그에 쓴 "메시지에 답장이 없어요"는 다행히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오픈렌트에서 뷰잉을 신청하면 필수적으로 몇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 몇 명이 살건지, 월급은 얼마인지, 반려동물은 있는지 등이다. 그외에 자기 소개와 왜 이 집을 보고 싶은지 쓰는 칸이 있는데, 직업이 뭐고 런던에 왜 왔는지를 솔직하게 썼다. 나중에 알고보니 월급이나 연봉은 집을 빌릴 때 특히 중요한데 뷰잉 때 만난 부동산 에이전트 설명으로는 렌트비가 총소득의 30%를 넘지 않아야 안정적이라고 보고 집을 빌려준다고 했다. 임대인이 임차인과 계약을 하게 되면, 만약 임차인이 여러 이유로 렌트비를 내지 못하더라도 쉽게 쫓아낼 수는 없어서 임차인의 소득을 꼼꼼하게 확인한다. 만약 이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영국에 거주하는 또 다른 집주인을 보증인(guarantor)으로 내세워야 한다. 외국인은 특히 보증인을 구하기 쉽지 않으니, 솔직히 영국에서 집 구하기는 장벽이 높다.

정말 다행히도 기자라는 직업이 에이전트나 집주인에게 신뢰를 주는 듯했다. 소개 문구에 한국에서 집주인으로서 나 역시 임대를 주고 온 입장이라(집을 산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런던에 오기 직전에 극적으로 1년짜리 임차인을 찾는데 성공했다) 집 빌려주는 마음을 잘 알고 집을 깨끗이 쓰겠다고 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문구도 나름 큰 영향을 줬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한국에서 미리 집을 구하고 오지 않은 이유는 확실했다. 런던의 경우 많은 에어전트들이 온라인 뷰잉도 제공하는데, 나 같은 경우 집 내부뿐만 아니라 동네 분위기도 알고 싶었다. 1년 동안 연수할 대학과 대중교통으로 다니기 편한지도 중요했다. 구글 지도로 대략은 알 수 있겠지만 직접 보지 않고서는 모르는게 더 많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한국 기준으로 무리하게 잡은 내 렌트 예산은 런던에서는 전혀 넉넉하지 않다는 사실이 뷰잉 하루 만에 밝혀졌다. 첫 뷰잉은 에이전트가 알려준 방식대로 알아서 열쇠를 찾아서 빈 집에 들어가서 보고 나오는 방식이었다. 런던 북쪽, 핀스버리 파크 인근에 위치한 한국 기준으로 2층에 있는 작은 스튜디오였는데, 사진으로 볼 때보다 훨씬 작은 데다 가구와 집기가 낡았고, 집까지 가는 길이 별로 안전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지. 뷰잉 시도 첫날 집을 봤다는데 만족해야 했다. 이때만 해도 이게 런던 뷰잉 전쟁의 서막인지도 모르고...

KakaoTalk_20250912_141643047.jpg 런던에서 처음으로 임장한 집. 여기에 작은 화장실이 하나 딸려 있다. 이곳에 침대를 놓는다고 생각하면 사실상 책상과 의자 하나 놓을 공간이 없다.


작가의 이전글내가 런던에 온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