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생 박준석
회식자리에서 신입사원이 내게 묻는다.
“수석님, 근데… 결혼은 하셨죠?”
나는 이런 질문이 늘 난감하다.
결혼을 했다고 하면 그 말도 틀리진 않다. 하지만 지금은 또 아니니까.
아니라고 해버리면, 괜히 질문한 사람이 머쓱해진다.
이혼한 지 벌써 3년이 지났고, 이제 4년 차로 접어든다.
여섯 살이던 큰아들은 어느새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고, 아직 아기 같던 둘째도 이제 여섯 살, 유치원에서 제법 제 목소리를 내는 나이가 되었다.
그때와 지금이 달라진 게 뭐냐고 묻는다면… 글쎄.
아이들은 여전히 주말에만 본다.
함께 살던 집은 사라지고, 이제는 홀로 남아 있다는 것.
평일 내내 혼밥을 이어가는 신세가 변한 것도 아니라서, 크게 서럽지도 않다.
아침이면 알람을 끄고, 작은 아파트 화장실로 향해 면도를 한다.
늘 같은 루틴. 다만 혼자 살다 보니 빨래나 청소가 예전보다 엉성해졌다는 것 정도가 달라진 점이다.
어쩌면 가장 큰 차이는, 아이들 엄마의 빈자리다.
그녀는 예전엔 종종 아이 친구 엄마들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게 뒷담인지 잡담인지 알 수 없는 소소한 대화였지만, 그때는 당연하게 흘려들었던 그 목소리가 이제는 어렴풋이 떠오르기도 한다.
사는 동안에도 점점 희미해져 가던 것들이, 이제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버린 것이 신기하다.
그래서 다시, 회식자리로 돌아온다.
나는 이런 질문이 참 어렵다.
이 친구에게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글쎄요… 하긴 했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이혼을… 해서요.”
나는 조심스레 대답한다.
역시나, 물었던 쪽이 훨씬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아니에요. 저는 뭐… 괜찮습니다. 상관없는 일이니까요.”
말은 그렇게 흘려보냈지만, 속은 쓰렸다.
이혼이 무슨 죄라고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은근히 죄목이 된다.
지난 승진 때도 미끄러졌다. 동기 말로는 팀장이 내 이혼을 좋지 않게 본다고 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더니, 집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사람이라나.
회사 사람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정작 내 앞에서는 다들 쉬쉬한다.
그 눈치를 받아내는 게 가끔은 숨 막힐 만큼 버겁다.
오늘 이 회식자리처럼 말이다.
“돌싱이에요. 이혼한 지는… 글쎄, 벌써 3년? 4년쯤 됐네요. 성격 차이로 헤어졌고, 아이는 둘 있습니다. 주말에만 만나지만… 아이들은 너무 좋습니다. 그래서 늘 주말에 놀아줄 체력을 미리 길러둬야 해요. 아들이 둘이라, 에너지를 쏟아내지 않으면 집이 감당이 안 되거든요. 주말마다 내가 완전히 탈진해 버려야, 주중에 아이들 외할머니가 조금이라도 덜 힘드시죠.”
내가 일부러 웃으며 상처를 끄집어내자, 잠시 굳어 있던 동료들의 얼굴이 풀린다.
내가 웃어야, 그들의 죄스러움이 가벼워지는 것이다.
“괜찮아요. 뭐… 저도 부모님 이혼하셔서 익숙해요.”
신입은 날 위한다는 듯, 어렵사리 주변인의 이혼을 꺼내놓는다.
부모의 이혼이라. 그것도 사실 작다면 작지 않은 사건이겠지.
이혼 뒤 가장 마음이 쓰이는 건 역시 아이들이다.
나를 꼭 닮아, 불쌍한 표정으로 속 이야기는 삼키고 혼자 삭이는 첫째.
눈치 빠르고 속정 깊지만, 애교 부릴 나이에 벌써 어른들 기색 살피느라 바쁜 둘째.
둘 다에게 너무 미안하다. 그게 이혼이라는 것이다.
한 번은 회사 후배가 이런 말을 툭 내뱉었다.
“형, 이혼하면 나중에 애들 장가갈 때 어쩌려고요? 요즘 이혼가정에 딸 시집보내려는 사람 많지 않아요.”
참으로 쓸데없는 오지랖이다.
아직 장가까지는 스무 해는 넘게 남은 아이들이다.
그 먼 미래의 일 때문에 내가 내 삶을 포기할 순 없다.
하지만 그 무심한 한마디가, 의외로 오래 남는 상처가 되었다.
“부모님이 이혼하셨군요. 속상했겠어요?”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었다.
큰아들 시안이가 떠올라, 무의식이 먼저 입을 열어버린 것이다.
신입은 잠시 나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듯했다.
“글쎄요… 속상하진 않은 것 같아요. 어릴 땐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아빠 밑에서 컸지만… 엄마도 만나요. 아빠는 싫어하시지만.”
꽤 현실적인 대답이다.
그래, 그래도 저 나이에 이런 이야기들을 담담히 내뱉을 수 있다면 잘 자란 편이지.
좋은 대학 나오고 우리 회사까지 들어왔으니, 어쨌든 버텨낸 것이다.
시안이도 이 신입만큼만 자라준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괜히 가슴이 저려 소주를 한 잔 털어 넣었다.
“그래… 아버지도, 어머니도. 다들 사정이 있으셨겠지.”
내 말을 끝내자마자, 신입은 기다렸다는 듯 내 빈 잔에 술을 따랐다.
선배 잔은 채우면서 정작 본인은 비우지 않는다.
요즘 MZ는 다 이런 건가.
내가 꼰대가 되어가는 건지, 괜히 소주병을 다시 들어 보았다.
“서연 씨, 한 잔 받아요.”
신입은 거절하기 어려운 듯 잔을 비웠다.
쓰게 찡그린 얼굴이 순간 스쳐 지나갔다.
“미안해요. 내가 혼자 마시자니 좀 쓸쓸해서…”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옆자리 고프로 형이 나를 불렀다.
여섯 살 많은 형님이지만 늘 친구처럼 지내온 동료다.
“준석아, 취했냐? 2차 가야지.”
시계를 보니 벌써 두 시간이 흘렀다.
2차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니, 슬슬 자리를 옮길 시간인가 보다.
“아니에요. 오늘은 그냥 들어가려고요.”
“무슨 소리야. 너 안 가면 재미없잖아. 인마, 오랜만에 만났는데 한 잔 더 해야지.”
형님의 등쌀에 못 이겨 가방을 챙겼다.
양꼬치집 문을 나서자, 해는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흩어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담배를 물고 있는 사람, 택시를 부르는 사람, 미처 끝내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여전히 웅성이는 풍경 속에서 나도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준석아, 요 앞 호프집으로 간단다. 너 갈 거지?”
고프로 형이 확인사살하듯 다시 묻는다.
“아… 안 돼요. 오늘은 일찍 들어가야 해요.”
그는 담배 한 개비를 달라며 손가락 두 개를 내밀었다.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빨아들이더니, 내 속을 뒤흔드는 한마디를 던졌다.
“야, 이혼한 놈이 일찍 가 봐야 뭐 하냐?”
휴—.
이혼한 놈은 일찍 귀가할 자격도 없단 말인가.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긁혀, 또다시 소주잔을 털어 넣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걸음을 떼자, 밤하늘에 달빛이 유난히 차게 내려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