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서 여름으로 가던 날씨 쯤이었나.
봄 특유의 건조한 공기 속에 슬금 슬금 습기가 느껴지던 계절로 기억한다.
엄마랑 외출하고 돌아오던 때에 아파트 옆라인 2층 창문에 생소한 글씨가 보였다.
독서 논술
그때가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는데 정말 엄마의 바람대로 안하던것 없이 다 해보던 시절이었다. 피아노, 미술, 태권도, 서예, 영어, 수학 등등. 엄마는 따라오는 날 기특해했고 그런 엄마를 보며 나는 뿌듯했다. 엄마에게 언제나 뭐든 의욕넘치고 배움에 욕심이 많은 아이로, 자랑스러운 아이로 있고 싶었다.
그래서였을까. 불현듯 난 국어 부분에 내가 하는게 없잖아?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한테 그런 나의 생각을 가감없이 얘기했고 수업은 거의 바로 다음날 시작됐다.
그곳에서 배우고 경험했던 것들은 나에게 사춘기 시절 넘쳐나던 감수성들을 글에 투영하는 방법과 글을 대하는 태도, 심지어 삶과 일상을 대하는 태도에까지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그러면서 난 자연스럽게 잘 쓴 글을 질투하고 글 잘쓰는 작가들을 흠모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엄마에게 감히 말하지 못하는 나만의 심연 속 감정들이었다. 엄마는 내가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할 아이로 생각했고 나는 나대로 글쓰는 천부적인 재능이 없는 주제에 말도 안되는 찌질한 마음을 품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그 애가 그랬다. 너무나도 당당하게 내 꿈은 소설가라고.
그 아이는 공부도 잘하고 무엇보다 너무나도 내성적인 아이였는데 그래서 더 의외였다. 그렇게 공부를 잘하면 엄마 말대로 더 말그대로 금전적으로 풍요로워질 수 있는 일명“사“자 직업을 목표로 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또 그렇게 자기를 드러내는데 어려움이 있어보이는 아이가 글로 본인을 표현해야하는 소설가라니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속으로 에이 네가 될리가 없잖아 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너무 부러웠다.
당시에는 왜 부러운 마음이 드는건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내가 사실 글쓰는걸 얼마나 즐기고 있는지, 나도 나를 글로서 얼마나 표현하고 싶었는지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엄마의 뜻대로 살아야된다고 믿었고 내가 가진 하찮은 능력치로는 읽혀지지않을 ’실패한‘ 글만 생산해낼게 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하고 싶다는 마음을 내가 나 스스로 알아차리기 전에 포기한거다.
그 이후 본격적으로 공부에 매진하기 직전 그 학원은 그만두었다. 그 여자아이도 어떻게 됐는지 잘모른다. 특목고에 진학해 명문대에 갔다는 소식까진 전해들었는데 성해나같은 작가가 되었으려나.
나의 삶도 그 아이와 비슷하게 흘러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이가 먹을 수록 체력도 지구력도 전과 다르게 급감하는 듯하다. 마음이 끌리지 않으면 난관에 부딪힐 수록 버티질 못하겠다. 끈기 빼면 시체던 내가 결국엔 하는 선택이라곤 중도포기다.
그러다 마침내 그냥 그 옛날 내 심연의 욕심에 마주하기로 했다. 그래 중도포기할거면 비겁하게 도망만 치다 끝내지말고 일단 마주해보기로 하자.
여전히 무섭다. 엄마가 정해주지 않은 길을 가는 것도 내가 이정도 능력으로 글을 쓴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이렇게 죽는것도 아쉽고, 처음부터 잘 쓰는 글이 어딨겠나 싶고, 읽혀지지 않는 글을 쓰는 것도 나쁜일은 아니지 않는가.
당당하게 못먹어도 ‘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