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스무스의 순교 – 성사의 여정을 그리다

명작을 찾아 이탈리아를 뒤지다

by 다두



Nicolas_Poussin_-_Le_Martyre_de_Saint_%C3%89rasme.jpg?type=w773 Le Martyre de Saint Érasme - Nicolas Poussin



바티칸 미술관에 있는〈성 에라스무스의 순교>(The Martyrdom of St. Erasmus)는 1628-1629년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이 320 x 186 cm 크기의 캔버스에 유화로 그려졌다. 프랑스 출신인 푸생의 초기 로마 시절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그가 고전주의 양식의 정제된 제단화의 대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한 작품이다.


작품의 주제는 초기 기독교의 지도자였던 에라스무스가 로마 황제 막시미아누스의 명령으로 고문을 당하고 순교하는 장면이다. 기독교 전승은 에라스무스가 배를 갈라 장기를 끄집어내는 잔혹한 방법으로 고문을 당했다고 전하고 있다.


화면에서 고문은 마치 정밀한 해부 시험을 행하는 법의학 강의 마냥 치밀하고 진지하게 진행되고 있다. 고문대에 놓인 에라스무스의 신체는 고통의 긴장감을 응축하고 있으나, 아직 뒤틀리거나 변형되지 않고 안정된 비례와 균형감을 유지하고 있다.


주변 인물들은 마치 고문의 장면을 견학이라도 하듯이 배경의 조각상들처럼 정해진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에 열중하는 객관적인 모습이다.


작품의 상단에는 천사들이 승리의 관(laurel wreath)을 들고 에라스무스를 향하고 있다. 고통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성인의 순교를 영광스러운 승리의 순간으로 승화하는 것이다.


푸생은 화면 아래에 인간의 잔인한 고문을 그리고, 화면 위쪽으로는 신의 은총을 묘사하고 있다. 신학의 관점에서 순교의 의미를 한 장면에 담아낸 것이다.


기독교 역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에라스무스라는 이름의 인물은 두 명이다.


두 사람 중 시대적으로 먼저 등장하는 이가 성 엘모(Saint Elmo)라고도 불리는 성 에라스무스다.


그는 3세기말 ~ 4세기 초 기독교의 주교로서 시리아의 베이루트(Berytus)와 이탈리아의 포르미아(Formia) 등에서 몰래 선교 활동을 하다 로마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명에 의해 체포되어 우상 숭배를 강요받았으나 이를 거부하자 창자가 튀어나올 만큼의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끝내 순교하여 성인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그러나 성 엘모의 이러한 이야기는 중세 이후에 기록된 전승에 따른 것이고 고대로부터 내려온 문헌에서는 그의 기록을 찾아볼 수 없어 엘모가 실존 인물이었는지에 관해서는 단정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즉 성 엘모에 관한 서사는 기독교의 전통 전승 중의 하나인 성인전을 통해 전래된 설화 속의 인물에 가깝다 할 수 있다.


에라스무스라는 같은 이름의 또 다른 인물로는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가 있다. 그는 1466년에 태어나 1536년에 사망한 실존 인물로 르네상스 시대를 풍미한 인문주의자이자 신학자로서, 저서 <우신예찬> 등을 통해 인문주의의 발전과 종교개혁 운동의 지적 기반을 제공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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