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의 스위치를 끄고 싶다.

악몽이 만성 불면증으로 번지기까지

by 허소희



나는 어린 시절 동네에서 유명한 잠순이었다.


명절에 할머니댁을 가면 제일 늦게 일어나서 눈 떠보면 제사 준비가 이미 끝나있었고, 학창시절엔 수업 시간, 쉬는 시간, 점심 시간을 가리지 않고 졸았다.

심지어는 아침 조회 때 전교생이 보는 TV모니터에 내가 자는 사진이 박제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밤에 잠을 안자거나 늦게 자는 것도 아니었다.

11시 전에는 취침을 했고, 커피도 마실 줄 몰랐다. 그저 개운하게 기상할 수 있는 수면시간이 남들보다 좀 길고, 아침잠이 많은 편이었다.

가장 길게 잔 건 수련회 끝나고 집에 돌아와 오후3시부터 자기 시작해서 다음 날 오후2시에 일어났던 날이었다.

조조영화 약속같은 건 잡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부터는 자취를 시작했다.

자고 싶은 만큼 푹 잤고, 늦잠 자고 싶으면 늦잠을 자는 생활을 하다가 밤낮이 바뀌기도 했다.

야행성이 체질인가보다 했다.

신림동 원룸 자취방에서 2016년 새해가 밝는 걸 보기 전까지는.


현관문 밖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발소리만 가끔 들리는 고요한 단칸방에서 혼자 새해 아침을 맞이하던 새벽, 처음으로 현타가 왔다.

이틀을 뜬 눈으로 버티다 잠에 들어 다시 정상 리듬으로 돌아왔다.


기억하기론 그 해부터였던 것 같다. 친구들과 카톡을 하다가도 학원을 가서 친한 사람들을 만나서도 꿈 얘기를 자꾸 하고 있던 게.


"나 어제 또 악몽꿨어. 어둑어둑한 짙은 초록빛 숲에서 헝클어진 긴 흑발머리를 한 남자가 있었어. 흰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여기저기 가로로 쭉쭉 칼로 찢은 듯이 찢겨있고 거기서 피가 흐르고 있는거야.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쳐서 도망가는데 계속 나를 쫓아왔어."


"내가 화장실에서 거울보고 있는데 동생이 나를 부르면서 화장실 문 앞에 서있었어. 그래서 뒤돌아봤더니 아이보리색 후드 집업을 입고 온몸에 피를 엄청 흘리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어."


"몇 번 본 적 있는 친구동생이 식칼을 자기 팔에 갖다대고 나를 보면서 씨익 웃더라. 그러고 계속 웃으면서 자기 팔을 막 그었어."


365일 중에 364일 자면서 꿈을 꿨고, 363일이 악몽이었다. 너무 자극적이고 유해한 내용의 악몽들은 잠깐 잠들던 찰나에도 꾸는데, 그 내용은 갈수록 기괴해졌다.

꿈 내용을 키워드로 정리하자면 피.자해.죽음.쫓김.납치.감금.살해 등이다.

아침에 깨어나면 반나절 이상 기운이 없을 정도로 하루종일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잠들기가 무서워졌다. 확실히 자는게 무서워지니 잠자리에 누워도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매일 운동을 하고 공부를 하고 지친 상태로 잘 준비에 들지만 눕고나서 잠에 들기까지 빠르면 1시간 평균 2시간 이상이 걸리기 시작했다.


천하의 잠순이인 내가?

불면증 같은 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악몽을 이겨내기 위해 처음 했던 노력

커피를 끊었다.

헬스와 필라테스, 요가까지 운동을 주6일 매일 1시간 이상씩 했다.

숙면에 도움을 준다는 라벤더향 향초를 사보았다.

드림캐쳐를 사본 적 있다.

자기 전 운동이 몸을 각성시켜 숙면에는 좋지 않다길래 아침6시마다 헬스장을 갔다.

밤 늦게 식사를 하지 않았다.

베개와 매트리스를 바꾸었다.

암막커튼과 수면안대를 사본 적 있다.

무드등과 백색소음을 켜봤다.


그러나 대부분은 불면증의 고통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의 조언일 뿐이었다.



커피도 몇 달 내내 마시지 않았고 카페에 가면 늘 다즐링이나 캐모마일티를 시켰다.

운동을 해서 몸을 지치게 만들어봤지만, 지친 몸에 너무 피곤하기만 할 뿐 도저히 잠에는 들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죽을만큼 피곤한 채로 밤을 샜다. 그러다 해가 뜰 때쯤 기절하듯이 잠에 들었다. 입면장애 증상이었다.


겨우 잠에 들고도 금방 깨버린다. 그렇게 깨버리면 다시 잠들기가 어려워서 거의 아침에 해가 뜰 때까지 못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잠이라도 다시 들 때가 있지만 아침에 일어나기가 아주 어렵다.

그러면 낮에도 하루종일 피곤하고. 피곤해도 낮잠 한번 드는게 그렇게 어려웠다.

수면유지장애 증상이었다.


불면증은 이런 증상에 이어 다양한 신체 반응이 뒤따른다. 잠을 제대로 못자는 날들이 많아질수록 나는 점점 더 예민해지고, 불안하고 초조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긴장한 것처럼 배가 자꾸 아프고 밥도 잘 안넘어갔다.


잠 못자서 힘들다는 말은 절대 가벼운 투정이 아니었다.

까딱하면 게으르고 한심한 사람으로 치부되기 쉬워서 말도 못꺼내는 혼자만의 통 속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많은 현대인들이 잠의 중요성과, 잠이 부족하다는 것의 위험성을 간과하며 산다.

특히 한국인은 OECD 국가별 수면시간 통계에서 최하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또 최근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 일평균 수면시간이 5년 전 기록보다 8분이 더 줄었다고 한다.


뇌에 쌓인 노폐물은 뇌가 잠들어야 청소를 시작한다. 잠을 적게 잘수록 머리가 피곤해지는 게 이러한 이유다.


매일 한두시간 잠을 아껴잔다는 사람들도 있고, 평일에 잠을 조금밖에 못자서 주말에 몰아자는 직장인들이 많다. 그러나, 잠을 효율적으로 자는 법은 없다. 주말 잠이 당장은 회복되지만 바이오리듬을 파괴시켜 결국 불면증을 초래하게 된다. 한번에 몰아서 자는 게 아니라, 매일 같은 시간에 잠 드는게 중요하다. 못먹고 건너뛴 식사들을 한 끼에 다 몰아먹으면 안되는 것처럼.


오후10시~오전2시 사이에 잠들어있는 게 가장 좋다. 똑같이 8시간을 자도 새벽4시에 자서 낮12시에 일어나는 것보다는 오후10시에 자서 아침6시에 일어나는 게 더 컨디션이 좋다.


수면 적정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3-4시간만 자도 늘 체력이 남아돌고 일상생활에 전혀 무리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7시간을 자야 그 날의 업무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개운하게 일어나는 것도 중요하다. 알람을 여러개 맞춰놓았다면 하나만 남기고 지워라. 정말로 일어나야만 하는 시간에 딱 하나만. 만약 불안할 경우 2개까지는 괜찮다. 알람을 여러개 설정해두었다면 오늘부터 알람 갯수를 줄여나가보자.



불면증 약을 처방받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다시 잠을 잘 수 있게 됐다.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못자서 낮잠은 전혀 잘 수 없었지만, 밤에 잠을 푹 자기 시작하면서는 삶의 질이 차츰 나아지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 나는 졸피뎀계열의 수면제를 복용 중이다. 그래도 너무 피곤하면 낮잠에 들기도 한다.

아, 플라시보 효과같은 건 전혀 없는 것 같다. 약을 안먹었는데도 먹었다고 착각하고 누워있던 적이 몇 번 있는데, 그럴 때는 귀신같이 해가 뜰 때까지 잠에 들지 못한다.


사람들은 약에 의존하면 안된다고 말하지만, 치료를 위한 최후의 수단이라면 어찌 약을 먹지 않고 고통만 받고 있겠는가.


내가 당장 못자서 죽을 것 같은 이 고통, 일상생활에 지장이 갈 정도라면 차라리 약의 도움을 받는 게 훨씬 낫다.


나의 경우 우울증과 동반한 증상이어서, 잠을 자기 위해서라도 병원을 꾸준히 다니게 된 덕분에 우울증 치료에도 큰 도움이 됐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수면제가 필수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앞으로 수면제를 더 줄여나가고 점차 끊어보는 걸로 치료 방향을 정했다.


잠은 낭비가 아니다.

잠을 잘 자야 건강하고, 건강해야 좋은 꿈이 온다.




@myxbal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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