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게 조금 아쉬웠던 이유에 대하여
이론에 기대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게 조금 아쉬웠던 이유에 대하여
어느 순간부터 주변에서 이런 말을 자주 보게 됐습니다.
“이 방법론이 검증된 거라서, 우리는 이대로만 가면 돼요.”
“이 프레임대로 가야되요.”
새로운 이론을 배우고, 멋진 프레임워크를 익히고, 거기에 맞춰 일을 설계하는 사람들.
겉으로 보기엔 공부도 많이 하고, 책임감 있게 보이는데…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묘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왜 모든 상황을 이 이론에 끼워 맞추려고 하지?”
“왜 이 이론이 틀렸을 가능성, 혹은 지금 상황에 안 맞을 가능성은 잘 이야기되지 않을까?”
이 글은 누군가를 비판하려는 글이 아니라,
제가 옆에서 지켜보면서 느꼈던 작은 불편함과 질문을 정리해 보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기록입니다.
먼저 이해합니다.
이론은 정말 든든합니다.
“세계적인 ○○ 교수의 이론이에요.”
“이 방식은 이미 많은 기업에서 검증됐어요.”
“이 프레임이 요즘 트렌드라서요.”
이렇게 말하는 순간,
판단의 무게가 ‘나 개인’에서 ‘이론’으로 조금 옮겨가는 느낌이 듭니다.
결과가 안 좋아도 이렇게 말할 수 있으니까요.
“이 정도면 방법론대로는 잘한 거예요.”
“이 이론도 한계가 있네요.”
그래서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이론을 믿는 게 정말 ‘용기’일까,
아니면 ‘내 책임을 조금 덜어줄 방패’를 찾는 걸까?”
제 주변에서 자주 보였던 장면들을 몇 가지로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1) 모든 현실이 이론에 맞춰 잘려 나갈 때
원래는 이론이 현실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여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현실이 이론에 맞지 않으면 무시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예상과 다른 데이터가 나오면 → “표본이 문제인 것 같아요.”
팀원이 다른 의견을 내면 → “프레임 이해가 부족한 것 같아요.”
사용자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여도 → “아직 이 가치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아서 그래요.”
물론 일리가 있는 말일 수 있지만,
이 패턴이 반복되면 이론은 점점 “정답지”, 현실은 “오답 처리된 예외”처럼 취급됩니다.
그걸 옆에서 보면서, 저는 자꾸 이렇게 느꼈습니다.
“이 이론을 더 잘 쓰고 싶은 걸까,
아니면 이미 정해진 답에 세상을 끼워 맞추고 싶은 걸까?”
프로젝트가 잘 안 되었을 때, 이런 말도 자주 들었습니다.
“조직 문화가 이 방법론을 받아들이기엔 미성숙해서요.”
“팀원들이 이 이론을 이해를 잘 못 해서…”
“한국 시장이라 이런 프레임이 잘 안 먹히는 것 같아요.”
물론 환경 요인은 분명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항상 환경·조직·타인 쪽으로만 원인이 흘러갈 때,
저는 약간의 공백을 느꼈습니다.
“그럼 그 안에서 ‘내 선택, 내 판단, 내 해석’은 어디에 들어갈 수 있을까?”
어떤 이론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일수록,
점점 그 이론의 용어로만 말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건 ○○ 프레임의 2단계에서 막힌 거예요.”
“지금은 △△ 모델의 전환 구간이라 이렇게 가야 합니다.”
그것도 멋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당신만의 문장, 당신만의 사례,
당신만의 언어로 설명한다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남이 만든 이론은 공용어에 가깝습니다.
결국 우리를 움직이는 건 '내가 직접 겪은 실패와 시도에서 나온 ‘사적 언어’인데,
그게 자꾸 뒤로 밀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우리가 이론에 자꾸 기대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책임의 무게”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내 기준으로 결정했다가 틀리면 → “내가 잘못한 것”이 됩니다.
이론을 기준으로 결정했다가 틀리면 → “이론의 한계”나 “환경 탓”이라고 말하기 쉽습니다.
여기에는 이런 심리가 깔려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완전히 앞에 나서기엔 아직 확신이 부족하다.
그러니 좀 더 ‘객관적이고 권위 있는 것’을 앞세우고 싶다.”
저는 이 마음 자체를 비난하고 싶진 않습니다.
누구나 불안하고, 누구나 두렵고,
누구나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과정이 버겁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불안을 달래기 위해
너무 빨리 ‘남의 기준’을 내 삶의 정답처럼 받아들이게 될 때
정작 중요한 질문들이 사라지는 게 아쉬웠습니다.
“이 이론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전제에서, 나는 무엇을 다르게 볼 수 있을까?”
“이 프레임 없이, 내 언어로 이 상황을 설명하면 뭐라고 말하게 될까?”
“결국 이 상황에서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
저는 이론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이 새로운 방법론을 공부하고, 서로 나누는 모습도 좋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조금만 더 이런 균형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작게나마 이런 말을 남겨보고 싶습니다.
“이론에 기대는 건 괜찮아요.
다만, 이론 뒤에 숨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론은 내 생각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더 잘 정리해주는 도구였으면 좋겠고,
상황을 이론에 맞추는 게 아니라,
이론을 상황에 맞게 조정할 용기도 있었으면 좋겠고,
실패했을 때 “이 이론이 틀렸네”에서 멈추지 않고,
“그 이론을 가져와 적용한 내 판단은 무엇이었나”까지 같이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결국,
각자의 경험 위에 자신만의 기준과 방법론을 쌓아가는 과정이
진짜 의미 있는 성장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이론은 그 길을 조금 덜 험하게 만들어주는 지도일 뿐,
내 삶 전체를 대신 살아줄 수는 없는 것처럼요.
이론은 도구로써....
마무리 – 여러분은 이론을 어떻게 쓰고 계신가요?
이 글은
“이론에 빠져 있는 사람들, 틀렸다”라고 말하고 싶은 글이 아닙니다.
오히려,
“왜 우리는 이렇게까지 이론에 기대고 싶어질까?”
“그 안에는 어떤 불안과 책임감이 숨어 있을까?”
“이론을 조금 더 건강하게 사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를 같이 생각해보고 싶은 마음에 적어본 글입니다.
혹시 여러분 주변에도
어떤 이론이나 방법론에 너무 매달리는 모습이 보였던 적이 있나요?
혹은, 한때 어떤 프레임에 과하게 기대고 있다가
조금 거리를 두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