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기행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과연 내가 그 당시에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할걸...' 하고 후회하고 있었을까? 어쩌면 먼 훗날의 모습을 제외하고 '현재'라는 기준만 놓고 본다면 지금 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을 수도 있다곤 생각합니다. 항상 최선의 선택을 내릴 순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내린 결정에 후회했던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적어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까지는 꽤나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걸 지도 모르겠습니다.
EP.2
그렇게 회사 생활을 시작한 저는 첫 출장으로 신세계 백화점 대구점의 팝업스토어를 나갔습니다. 전주에 온 지 2~3주 정도밖에 안 돼서 아직 적응도 제대로 못했는데 다시 대구로 가게 되다니. 사실 대구로 돌아간다는 것에 반가움보단 걱정이 앞섰습니다. 일주일 정도 판매할 물량을 들고 가야 하기 때문에 1톤 탑차로 가야 하는데 운전연습 겸 제가 운전대를 잡아보기로 한 것이죠. 운전면허를 딴지 한 달밖에 안 됐고 첫 실전 도로주행이 탑차라니..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네요. 초심자의 행운이 따랐던 것일까요? 삐그덕 거림은 있었지만 어찌어찌 무사히 대구는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대구로 가며 운전을 알려주기 위해 보조석에 앉아 있던 친구가 제가 차선 변경을 할 때마다 괴성을 지르던 게 아직도 생각나네요..ㅎ
대구에 도착하자마자 신세계 팝업 진행을 위해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교육도 듣고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필요 물건을 사거나 구경하려고 왔던 곳에서 백화점 문이 다 닫히고 난 뒤, 불 꺼진 조명아래 매장 안에서 우리의 판매 부스 세팅을 하고 있으니 뭔가 진짜 실무를 시작하는구나 실감이 나더군요. 그리고 저는 대학생 시절 공모전 동아리를 했었는데 기획서를 작성하게 되면 마지막 프로모션 단계에서 제시하는 방안 중 하나로 팝업스토어를 자주 넣곤 했던 거 같은데 그것을 결국 내가 직접 하고 있구나라는 약간의 신기함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진행한 팝업스토어는 TV에서 보던 유명 브랜드나 인플루언서가 진행하는 팝업스토어처럼 불티나게 팔리진 않았지만 같이 참여한 업체들과 판매 수치를 비교했을 땐 '우리가 이 정도로 실망할 수준은 아니구나' 정도였던 거 같습니다. 사실 많은 판매량을 바랐던 것도 욕심인 게 저는 당시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판매할 제품에 대한 가격도 제대로 못 외웠고, 고객의 구매를 유도할 수 있는 우리 제품의 셀링포인트가 뭔지, 어떤 말을 했을 때 관심을 유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없이 무작정 '우리 한번 봐줘!'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큰 소리만 질렀던 거 같거든요.
일주일간의 팝업스토어를 진행하며 배울 수 있었던 점은 인지도가 전혀 없는 식품 브랜드가 판매량을 올리기 위해선 결국 '제품력' 즉, 시식을 했을 때 맛에서 합격점을 받아야 구매전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건 너무 당연한 말이고 고객이 '시식'이라는 행위를 한 번이라도 하는 것을 유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너무나도 중요했습니다. '팝업스토어를 하면 사람들이 궁금하니까 먹어보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오만했고 현실은 냉정했죠. 당시 저희 앞을 지나가는 고객의 50%는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갔고 30%는 바라만 보거나 단 두 번 웃고 지나갔습니다. 왜냐하면 저희의 브랜드 이름이 '저세상'인데 남자 2명이 갓을 쓰고 제품을 팔고 있으니 갓을 쓰고 있는 것에 신기해서 한번 웃고 그렇게 이목이 끌려 브랜드 이름을 읽어보니 '저세상'인 것에 두 번 웃고 갔었죠. 그렇게 남은 20%의 고객만이 시식이라는 행위를 시도해보려 했고 그중에서도 반틈정도만이 구매까지 전환이 됐던 거 같네요. 즉, 앞서 말했던 것처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제품에 대한 관심을 일으킬 수 있도록 한번 먹어보려는 시도를 이끌어낼 수 있는 어떠한 정보전달이 필요했고 시식을 하면서도 우리의 강점이 무엇인지, 왜 이 제품을 구매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동반되어야 했는데 저는 그게 너무도 부족했던 것이었죠.
아쉬움 반, 희망 반을 남긴 채 다시 저는 고향 대구를 떠나 전주로 돌아갈 시간이 왔습니다. 마지막날의 백화점 팝업이 끝나고 나니 8시 반정도였고 돌아가기 전에 친구와 저의 모교 대학 근처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며 드디어 돌아가면 쉴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운전대를 잡고 고속도로로 넘어가려는 순간 결국 제가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탑차의 앞범퍼는 떨어질 듯 말 듯 덜렁거리며 간신히 매달려 있었고 제가 부딪힌 차는 버스였습니다. 모든 게 순조롭게 마무리될 줄 알았던 상황이 순식간에 잊을 수 없는 장면으로 남게 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