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릴 수 있지만 보람찬 삶을 위해 EP.1

전주기행

by 투박한 일기장

안녕하세요. 현재 글을 작성하고 있는 시점을 기준으로 2년 반정도 전의 저에게는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변곡점이 된 부분을 첫 글로 작성해 브런치 작가를 신청했었는데요. 운이 좋게 저의 이야기를 남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게 되어 기쁘고, 앞으로도 제가 겪었던 중소 스타트업의 삶을 꾸준하게 작성해 보겠습니다.



EP.1


지난 글에서 저는 왜 대구에서 30년 가까이 살아오다가 전주로의 첫걸음을 내딛게 됐는지에 대해 간략하게 알려드렸는데요. 그렇게 저는 전주에 있는 회사에 4월 첫 출근을 앞두고 살아갈 집을 구하기 위해 수중에 있는 200만 원한 남짓을 들고 원룸을 계약하러 전주에 갔습니다. 이때가 아마 23년 3월 중순쯤이었던 거 같네요. 대부분의 활동 반경을 집과 가까운 환경에서 살아왔던 터라 자취도 살면서 이때 처음하게 된 거였고 방 계약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방을 볼 때 어떤 걸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 건지도 모른 채 시간이 얼마 없어 하루 만에 3~4 곳의 방만 둘러보고 그나마 괜찮다 싶은 방으로 무작정 계약을 해버렸어요. 나중에 이것과 관련된 무지로부터 발생한 안타까운 일도 발생했지만요.


그렇게 방계약까지 끝내고 전주에서의 새로운 삶을 위해 30년간 따지 않았던 운전면허증도 취득해서 제 방에 켜켜이 걸려있던 옷가지들을 챙겨 전주행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비록 목표로 하던 곳은 아니었지만 취준을 위해 쳇바퀴 같은 삶을 살다가 첫 직장, 첫 자취 등 저에게는 '처음'이라는 단어가 붙는 것들이 많아서 그런지 걱정보다는 마음속 설렘이 피어올랐던 거 같습니다. 이사 후 집 앞 다이소에 가서 요리를 직접 해 먹어야지 하며 샀던 요리도구, 좁은 방이지만 그래도 나름 꾸며보고 싶어서 샀던 소품들, 청소도구와 주방식기들 저에겐 모든 것이 30살의 나이엔 어쩌면 좀 느린 경험일 수도 있지만 저에겐 새로우면서도 재밌었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첫 출근날, 원래 대표님과 친구 둘이서 근무하던 회사에서 저 포함 새로운 직원 3명을 더 채용해 총 5명이 회사를 키워보기 위해 모였습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어벤저스 어셈블! 같은 느낌이 나네요. 실상은 한분 빼곤 모두 회사경험이 없는 사회초년생 들어있지만요. 첫 출근날은 지금 생각해도 웃긴 거 같네요. 사무직으로 뽑혔지만 저에게 주어진 컴퓨터와 책상은 없었습니다. 회의용으로 사용하고 있던 원형 테이블이 저의 책상이 되었고 대학생 시절 마케팅 동아리를 해보겠다며 구매했던 60만 원짜리 삼성 노트북이 저의 업무용 컴퓨터가 되었습니다. 이 노트북은 동아리 활동 시절, 너무 굴려서 이제 수명이 다해 놓아줘야 맞는 친구였지만 회사를 위해 조금만 더 사용해 보기로 했죠.(로딩만 2~3분 걸렸던 걸로...)


그렇게 제가 들어와서 담당하게 된 첫 업무는 바로 디자인이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게 될까 너무 궁금했던 저에게 디자이너는 정말 예상치 못했던 직무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림도 그릴줄 모르고 어디에서 일러스트나 포토샵 등 디자인 툴을 제대로 다뤄본 적도 없는 제가 할 수 있었던 건 고작 동아리 활동에서 살아남기 위해 배웠던 PPT 발표자료 제작과 포토샵 누끼 따기 정도가 다였으니까요. 디자이너가 된 이유도 곧 있을 백화점 팝업스토어에서 사용할 홍보물이 필요했는데 첫 직장의 첫 업무에 뭐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서였을까요? 어느 정도는 제가 해볼 수 있을 거 같다고 말해서였습니다. 홍보물 제작도 결국 다 돈인데 자본금이 턱없이 부족한 우리에게 외주를 맡기는 건 너무 부담스러웠으니까요.


그리고 저희 회사는 OEM으로 제품을 소싱하는 곳이 아닌 직접 제조하는 제조회사인데 대표님이 생산직은 뽑지 않고 모두 사무직만 채용했습니다. 그 이유는 판매처가 있어야 생산이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엔 정말 미약한 하루 판매량이었지만 어쨌든 온라인과 박람회, 팝업스토어 참여 등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는데요. 마침 다음 일정으로 신세계 백화점 팝업스토어로 잡혀 있었고 재고는 부족했습니다. 그럼 재고가 부족하면 누가 생산을 하느냐? 바로 저희였습니다. 그래서 생산이 있는 날의 하루 스케줄은 10시 출근해서 2층에서 2~3시 정도까지 사무업무를 보다가 1층에 있는 생산실로 넘어가 필요한 수량에 대한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열악, 좋게 말하면 낭만 속에서 저의 첫 회사 생활 단추가 끼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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