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관계

by 시작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아직도 나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자리에서 처음 보는 사람을 맞닥뜨리면 그 순간부터 표정은 굳어가고 말은 꼬이고 뇌는 생각을 멈춰버려서 나는 한껏 부자연스러운 사람이 되고 만다. 아주 옛날의 일을 돌이켜 보면, 어렸을 때의 나는 처음 보는 사람한테 말도 제법 걸고 내 얘기도 곧잘 하는 아이였는데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사람들과 관계 맺는 일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새로운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게 아니다. ‘저 사람이랑 친해지고 싶다’라든가 ‘저 분이랑은 꽤 잘 통할 것 같은데’라는 식의 생각은 하지만 막상 내가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는 일은 정말 드물다. 그러다보니 점점 지인들의 폭이 줄어 감을 느꼈고 중학생 때부터는 인간관계에 대한 결핍과 거기서 오는 공허함을 계속 가지고 살았다.



내가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는 이유를 되짚어 보니, 아무래도 나의 낮은 자존감 탓이 아닌지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 본 사람들과 친해지려면 우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는 보여주는 과정이 필요한데 스스로가 바라보는 나는 별로 재미도 없고 딱히 매력도 없는 사람이라 남들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기가 꺼려졌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관계에서 먼저 도망쳐버리고, 내가 받게 될 상처가 두려워서 먼저 관계를 끊어냈던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얼마쯤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때를 다시 되돌아보면 아쉬움과 후회만 남는다. 도망쳐온 내 모습이 비겁하게 느껴진 적도 많다. 나는 SNS로 대화를 할 때에도 정말 친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 사람과 대화를 계속 이어가는 게 힘들었다. 카톡 답장을 해야 되는 상황이 싫어서 안 읽은 채로 며칠을 둔 적도 있고, SNS조차 다 덧없다는 조금은 극단적인 생각이 들어서 계정을 몇 번 탈퇴한 적도 있다. 돌아보니 나는 늘 관계에 수동적이었고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는 무책임한 태도로 사람들을 대한 것 같다.



아무리 영원한 건 없다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일단 좋아하게 되면 그 관계가 영원하기를 소망하게 된다. 그렇지만 동시에 우리가 다시 남이 되었을 때의 상황을 가정해보게 된다. 사실 나는 그 상황이 두렵고 내가 받게 될 상처가 너무 클까봐 계속 회피해왔던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먼저 손을 놓아 버린 관계들이 많다. 감히 그 사람에게 함부로 말하고, 미련 같은 건 모른다는 듯이 고고하게만 굴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미안함과 함께 죄책감이 든다. 그냥 좋게 말할걸, 먼저 겁먹고 포기해버리지는 말걸 하는 뻔한 회한은 남지만 이미 지금 되돌릴 수 있는 관계는 아니기에 속으로만 삼키고 말 뿐이다.



애초에 내가 너무 완벽한 인간관계를 바라왔기 때문에 여태껏 피하고 도망쳐 다니기에만 바빴던 게 아닐까. 세상에 나와 완전히 같은 사람은 없다. 사람은 모두 고유한 개성을 가진 존재이고 살아온 환경도 가치관도 모두 다른데, 서로에게 딱 맞는 퍼즐 조각처럼 완전히 들어맞는 관계는 환상 속에서만 존재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점을 먼저 받아들이고, 관계에 있어서도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부단히 해야 할 것 같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타인을 배타적으로 대해서도 안 되며, 혹여 갈등이 생기더라도 그것을 무작정 회피하기보다는 잘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많이 부딪쳐봐야 그 사람을 더 잘 알게 되고, 더 잘 싸우는 법을 터득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에는 싸움은 무조건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걸 서서히 깨달아가는 중이다.

또 나는 예전에는 곧고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맞는 건 맞고 아닌 건 아니라고 선명하게 말하는 어떤 일에도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나는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부드러운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자아가 너무 강하지 않은 사람, 때로는 자신의 의견을 굽힐 줄도 아는 사람이 역설적으로 더 강한 사람이 아닌가 하고 고쳐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인관계를 원활히 유지하려면 어느 정도는 생각이 유연해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앞으로의 삶에서 나는 인간관계에서 또 상처를 받게 될 수도 있고, 내가 기껏 쌓아올린 관계가 불안함과 불완전함으로 인해 흔들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혹여나 무너지고 넘어지더라도 나와 함께 걸어줄 몇 명의 사람들만 있다면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서 시작할 용기만 있다면 미리부터 걱정하거나 불안해하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러니 미리 겁먹지도, 도망치지도 않기를, 일단 한번 부딪쳐보기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