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일기

여권

by 근영

10년 전에 발급받은 여권이 만료되어 재 발급받았다.

여권 유효기간이 10년이지만 정작 알차게 썼던 기간은 초반 5년이었던 것 같다.

그 후 5년은 코로나로 팬데믹이 길어지고 임신과 출산을 하고 다시 해외여행을 다녀볼 참에 아이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여권은 저기 어딘가에 고이고이 모셔두었다.


초록색 여권이 유효하던 기간에 워낙에 큰일들이 많았어서 그 기간은 나에게는 특별하고 애달픈 기간들이었다. 아이의 집중치료가 끝날 무렵에 내 여권도 만료되었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무렵에 새로운 여권을 발급받았는데, 과하게 의미를 부여하자면 마치 내 인생도 새로 재발급받는 기분이었다. 새로운 챕터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새로 찍은 사진으로 여권 재발급이라니! 게다가 마침 색깔도 파란색이라니! 너무 멋지지 않은가?


그래서 가장 많은 속지로 선택했다. 해외여행 갈 일이 많지 않겠고 또 전자 여권으로 스탬프가 예전만큼 많이 찍히지 않겠지만 그래도 미래의 내 인생에도 설레는 페이지가 많았으면 좋겠으니까. 나의 바람이다.


우리 아이에게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여권이 있다.

돌 무렵에 만들 때는 해외여행 갈 생각에 여권만 보면 어디를 갈까 하며 즐거웠는데 가지 못할 상황이 되니 '언제 갈 수 있을까, 만료되기 전에는 갈 수 있겠지?' 하며 마음이 아팠었다. 이제는 어디를 가볼까 하는 설레는 생각만 할 수 있어서 마음이 가벼워졌다. 어디든 갈 수 있겠듯이.


인생은 내 의도와 상관없이 맞이하는 상황도 있겠지만 내가 만들어 가는 페이지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번 챕터에서는 나 스스로 만들어가는 페이지를 더 늘려볼 참이다. 부지런하게 역동적이게 움직이다 보면 이번 유효기간 동안에는 스스로 주도하는 인생에 유쾌한 일들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또 다음 여권 재발급 기간이 되었을 때에는 그다음 챕터를 조금 더 유쾌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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