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끊임없이 권태와 고통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처럼 움직인다.
부족하면 고통스럽고, 과하면 권태롭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한 괴로움에 허우적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시계추가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는지를 자주 확인하는 일이다.
그리고 관성이 무겁게 쏠리는 방향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균형을 찾아 돌아오는 것이다.
하루 종일 밖에 있다가 돌아오면 집이 천국이고,
며칠 집에만 콕 박혀있으면 외출이 간절해진다.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임에 다녀오면 혼자가 편하다는 걸 깨닫고,
혼자 지내다 보면 다시 함께이기를 원한다.
현상이 동일할지라도, 순서가 다르면 다르게 느낀다.
이 모든 것은 정도, 인식과 조절의 문제다.
이래도 괴롭고 저래도 괴로운 선택 대신,
이래서 좋고, 저래서 좋은 쪽을 택하자.
인간의 욕망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만족은 작은 단위에서 먼저 채운다.
가능하면 정량적으로, 과하지 않게.
그래도 부족할 때만 한 단계 큰 경험으로 넘어간다.
외식은 언제나 양이 많으니
가급적이면 소분해서 포장해 온다.
컵라면은 큰 컵 대신 작은 컵을 선택하고,
보다 건강한 만족을 주는 우리밀을 고른다.
오늘만큼은 놀러 가서 바람을 쐬고 싶었다면,
무리해서 다른 지역까지 다녀오기보다
그동안 지나쳤던 카페를 발견한다.
멀리 가야만 누릴 수 있을 것 같던 것도
가까운 범위에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
이 방식은 결핍을 줄이면서도
과잉으로 인한 피로를 막아준다.
충분히 누리되,
어느 분기점에서는 일부러 멈추는 선택을 해본다.
한 입만 더 먹고 싶을 때, 그만 멈춘다.
참는 행위 자체를 즐길 수 있다면
다음번의 즐거움은 훨씬 선명해진다.
항상 최대치로 소비하지 않아도
기쁨은 사라지지 않는다.
독서하고, 글 쓰고, 배우는 시간은
기력을 다 쓰고 만 하루 마지막의 보상이 아니라
하루 어느 때라도 시간을 할당해야 하는 당위다.
그 시간을 간절히 원했고,
그 시간을 위해 싸워왔다면
이제는 제대로 누릴 차례다.
양질의 정신적 활동은
아껴둘 대상이 아니라 충분히 향유할 대상이다.
생산성이 고플 때는
생산성에 해당하는 활동을 선택한다.
읽고, 쓰고, 요리하고, 공간을 정리하는 일.
공부를 하고 있지만 실력이 늘지 않는 것 같다면,
일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을 선택해서 보충한다.
막연한 조바심을 달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정확한 행동이다.
정확히 부족한 그 부분을 인지하고 공략한다.
가장 아픈 부분을 확실하게 치료한다.
선택의 과잉도 피로를 만든다.
백화점 디저트 코너를 종종 구경한다.
마감 세일이라길래 생각지 않았던 것까지
이것저것 사 왔지만,
막상 집에 오면 흥미가 떨어졌다.
직은 냉장고는 가득 찼고,
상하기 전에 먹기도 급급했다.
그 후로 정했다.
이것저것 많이 사지 않고,
하나만 선택해 그 자리에서 경험해 본다.
너무 많이 사들이면 관리가 부담이 되고,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으면 아쉬움이 남는다.
딱 하나의 선택은 경험의 밀도를 높여준다.
삶에는 의외로 노하우가 필요하다.
잘하는 일이 늘어날수록
삶은 조금 더 재미있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능숙함은 효율을 만들고, 효율은 여유를 만든다.
무엇보다,
너무 진지하게 시작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 몇 시간 공부하겠다는 진지한 각오보다
가벼운 진입이 지속을 만든다.
일단 뛰어들고,
흐름에 몸을 맡기는 쪽이
대부분의 경우 더 멀리 간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있어서
지금이 너무 늦은 순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를테면, 초등학생들이 배우는 바이엘을 펴고
집에서 혼자 피아노를 연습할 때.
하지만 의심할 수 없는 진리가 있다.
그 시간은 남은 인생에서 가장 빠른 시작점이다.
그렇다면 조급해할 이유는 전혀 없다.
언제나 압도적인 1등으로 시작할 테니,
여유 있게 즐기기 시작하면 그만이다.
그러니 오래 주저하지 말고
기꺼이 시작해도 괜찮다.
당신이 진정으로 소망하는 그 어떤 것이든.
균형은 기분과 씨름하는 것이 아니라
치우친 시계추를 반대로 미는 행동에서 만들어진다.
오늘도 시계추의 위치를 한 번 확인하고
가만히 방향을 조정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