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들여다 보기

내 가까이 있는 것들

by 쵸코 아빠

누구를 믿느냐보다, 어떻게 믿느냐가 결국 우리를 만든다.

믿음이란 단순한 기대나 낙관이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도 끝까지 붙잡으려는 태도이며, 어쩌면 감정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필요한 ‘이성의 온도’ 인지도 모른다.


2025년 한국시리즈가 막을 내렸다.

LG와 한화는 연일 역전과 재역전을 주고받으며 팬들을 숨죽이게 하는 명승부를 펼쳤고, 결국 마지막에 웃은 팀은 LG였다. 우승 팀에게는 축하와 찬사가 남고, 패한 팀에게는 아쉬움과 질문이 남는다. 승리에는 설명이 필요 없지만, 패배에는 늘 이유를 묻게 된다.


한화의 패배 이후, 팬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마무리 투수에게 쏠렸다.

프로 3년 차인 그는 올 시즌 내내 팀의 뒷문을 묵묵히 지켜온 핵심 전력이었다. 수차례 위기에서 팀을 구해냈고, 그의 이름은 ‘신뢰’와 함께 불렸다. 그러나 시즌 마지막 경기와 한국시리즈의 결정적인 순간, 그는 연달아 세이브에 실패했다. 단 몇 개의 공이 지나간 자리에서, 그를 향한 평가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믿음은 실망으로, 기대는 비난으로 뒤집혔다.


비난은 선수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았다.

투수 운용을 결정한 감독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이미 흔들리던 선수를 왜 다시 올렸는가.” 패배한 감독에게는 언제나 결과론적 질문이 따라붙는다. 선택의 맥락보다는 결과의 숫자가 먼저 제시되고, 그 숫자는 책임의 무게로 돌아온다.


그러나 감독의 자리에서 생각해 보면, 그 선택이 과연 무책임한 도박이었을까.

한 시즌 동안 팀을 지탱해 온 선수, 수없이 위기를 넘겨온 마무리를 마지막 순간까지 믿는 것. 그것은 어쩌면 전술이 아니라 관계의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감독은 그 선수를 믿었고, 선수는 그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냈을 것이다. 결과만 놓고 보면 실패였지만, 그 과정까지 모두 잘못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날의 패배는 한화가 못해서가 아니라, 상대팀이 그보다 조금 더 잘했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결과 앞에서 쉽게 흔들린다.

패배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돌리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책과 원망은 쌓이고, 믿음은 가장 먼저 의심의 대상이 된다.


이 장면을 보며 오래전 한 기억이 떠올랐다.

자금팀 대리로 근무하던 시절, IMF의 혼란 속에서 함께 일하던 한 후배가 있었다. 그는 좋은 학교를 나왔고, 머리가 좋았으며, 무엇보다 성실했다. 일처리가 깔끔했고 숫자에도 강했다. 그래서 중요한 업무를 맡기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나뿐 아니라 조직 전체가 그를 믿었다.


그러나 그는 예치금 이자를 횡령한 뒤 해외로 도피했다.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배신감보다 먼저 찾아온 감정은 혼란이었다. ‘그럴 사람이 아닌데’라는 생각, ‘내가 뭔가를 놓친 건 아닐까’라는 자책이 뒤엉켰다. 그 이후로 오랫동안 나는 그 일을 쉽게 잊지 못했다. 믿음이 무너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 판단에 대한 믿음까지 함께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믿음은 단순히 타인을 향한 신뢰가 아니다. 그 안에는 반드시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함께 들어 있다. 내가 옳게 판단하고 있다는 믿음, 내가 본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 그래서 결과가 좋을 때 믿음은 ‘신뢰’라는 이름으로 남지만, 결과가 나쁠 때 그것은 ‘자책’이나 ‘원망’으로 바뀐다.


문제는 그 감정의 소용돌이가 생각보다 크고 오래간다는 데 있다.

상대를 원망하면 분노가 남고, 자신을 탓하면 상처가 남는다. 어느 쪽이든 마음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잘못된 믿음에서 비롯된 감정은, 문제를 해결하려 애쓸수록 오히려 더 깊은 균열을 만든다.


예수께서는 “믿음이 있으면 산도 옮길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단순한 기적의 약속이라기보다, 믿음이 인간을 얼마나 단단하게 만드는 가에 대한 비유처럼 들린다. 믿음은 우리를 이어주는 진흙과 같다. 각기 다른 돌들이 제각각 흩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힘이다. 의심과 불신으로만 가득한 공동체는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진다.


그러나 모든 믿음이 옳은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의 불안과 탐욕, 허황된 기대를 파고들어 맹목적인 추종을 끌어내는 거짓된 믿음도 있다. 그런 믿음은 결국 누군가의 책임 회피와 타인의 희생 위에 세워진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믿음 그 자체가 아니라, 이성을 잃은 믿음이다.


비록 2025년의 가을, 한화는 모두가 바랐던 마지막 장면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한 해 동안 ‘야구’ 하나로 대전 시민과 충청도민을 끈끈하게 엮어준 시간은 분명 존재했다.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그 시간을 함께 견뎌낸 선수들, 그리고 끝까지 ‘믿음의 야구’를 선택한 감독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비난이 아닐 것이다.


믿음은 결과로만 평가될 수 없다.

때로는 실패 속에서도 지켜내야 할 가치가 있고, 그 가치를 지키려는 태도가 결국 사람과 공동체를 만든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건네야 할 것은 힐난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등을 밀어주는 격려, 그리고 흔들려도 함께 가겠다는 더 우렁찬 응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