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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가 없다>

감상을 남길 수 밖에

by 방향

아마도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저는 시네필이나 업계종사자가 아니기에, 제 감상이 너무 얇팍하거나 요즘 한국 극장가에 대해 실상도 모르면서(진짜 모름) 막 말한다고 생각하셔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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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맞이해 한국을 방문해 가장 먼저 한 일들 중 하나는 집 근처 영화관에서 상영 중인 영화들을 알아보고 어플로 예매한 일이다.


특히 극장에서 본다면 색감이나 영상의 스펙타클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기왕이면 액션이나 비주얼이 특출난 작품을 우선하게 된다. 예전부터 기대하고 있던 <귀멸의 칼날: 무한성 편>이나 <체인소맨: 레제편> 같은 재패니메이션과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 없다>, 폴 앤더슨 감독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고려했다.


두 실사영화는 미리 개봉일정을 알고 있던게 아니라, 어플로 어떤 영화를 상영하는지 확인하다가 알게 되었다. 예고편만을 고려하면 액션이 기대되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봤을텐데, 4dx로 관람한 <귀멸의 칼날>과 <체인소맨>으로 인해 살짝 피로감이 있었던 것이 원인일까. 결국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 없다>를 관람하게 되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본 것은 꽤나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본 그의 영화가 극장에서 본 <아가씨>였던 것을 고려하면 거의 10년만인셈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의 많은 작품들 중에 <공동경비구역 JSA>, <올드보이>, <아가씨> 정도만 봤기때문에 그의 활발한 필모그래피를 고려하면 나는 딱히 그의 팬은 아닌 것 같은데, 희한하게도 내가 기억하는 몇 안 되는 한국 영화 감독이기때문에 뭔가 따라가야한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던것 같기도 한게 참 신기하다.


이참에 이름을 기억하는 한국 영화 감독들을 나열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봉준호, 박찬욱, 홍상수 정도만이 기억에 남아있다. 분명 재밌게 본 한국 영화들이 꽤나 많은데, 기억에 남는 감독 이름이 얼마 없는것도 신기하다. 이를테면 <부산행>, <더 테러 라이브>, <택시운전사>, <감기> 같은 2010년대 작품 외에도 온갖 한국영화를 다양하게 봤는데도 말이다. 극장에서 본 것 외에도 비디오나 DVD를 통해 본 것은 훨씬 많았다.


생각해보면 대부분 감독보다는 인상깊게 나온 주연배우로 영화를 기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외국 영화는 사정이 다를까? 재밌게도 감독의 이름이 중요한 경우가 아니면 소위 프랜차이즈 블록버스터는 감독이 누군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전의 마블 시리즈를 본다고 하자. 어떤 마블 캐릭터가 나오고 그들을 누가 연기하는지에 관심이있지, 감독이 누군지는 대부분 관심없기 마련이다.


반면에 감독의 이름이 소위 간판인 블록버스터들이 있다. 이를테면 <트랜스포머>시리즈의 마이클 베이 감독이 있다. 물론 마이클 베이 감독의 경우엔 <트랜스포머> 시리즈 이전부터 나름 폭발로 알려져있는 경우였다. <트랜스포머>시리즈는 1편밖에 보지 않았지만, 의외로 <더 락>, <아마겟돈>, <진주만> 같이 내 어린 시절 도파민을 담당했던 친숙한 감독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흥하고 나서 감독에 대해 따로 검색해보고 알았다. 이를테면 내겐 <더 락>은 숀 코네리가 나온 영화, <아마겟돈>은 유성 폭파 영화, <진주만>은 <탑건> 2차대전 버전정도로 기억되고 있었다.


아무튼 잡설이 좀 길었는데, 이제 영화에 대한 얘기를 좀 해보도록 하자.


이 영화는 첫 장면부터 내게 한국스럽지 않았다. 웬 서양식 저택의 파티오에서 주인공 가족이 바베큐 파티를 하는게 아닌가? 그 와중에 회사에서 보낸 선물 덕에 미국 회사인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고래로부터 K-스토리텔링에선 남이 잘 되면 배가 아프기 때문에 <운수 좋은 날>의 전범을 따라 언제나 행운은 파멸의 전조로 작동한다. 예고편에서부터 짐작이 되듯이, 주인공은 일자리를 잃고, 재취업을 위한 여정에 나선다.


상황에 등떠밀려 보러간 면접에서는 그야말로 바보 천치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상황은 반전되어 영리하게도 경쟁자를 파악하기 위해 같은 업종 구인 광고를 내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얻게 된 실직 동종업계 종사자들의 지원서를 바탕으로 그는 나름대로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제목에서 강변하듯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하다못해 계획을 세우기 위한 사전탐사에서 그는 타겟의 주변인에게 존재를 들키고, 독사에 물리기까지 하는데다가, 타겟의 불행을 마주하게 된다. 모든 과정이 처절하고, 생각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는데다, 가정 내 신뢰 문제가 야기하는 불안을 통해 극은 긴장감의 수위를 올려간다. 그 와중에도 모든 것은 마치 김성모 작가의 만화를 보듯이 시종일관 진지함과 처절함이 우리로 하여금 웃게 만든다.


이 극의 백미는 모든 것이 제멋대로 흘러가는 와중에 상황이 허술한 주인공에게 유리하게 흘러가서, 결국 자신이 원하던 모든 것을 손에 넣게 된다는 아이러니이다. 물론 관객인 우리는 직감한다, 모든 것을 손에 넣은 주인공 내면의 공허를.


최근에 몇몇 업계 종사자들이 한국 극장가가 일본 애니메이션에 점령당했다고 한탄하는 글과 그에 대한 반응들을 접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미 일본 극장가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실사영화를 이미 집어삼킨지 오래다. 일본 영화를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일본 실사 영화를 보지 않게 된 지 이미 세월이 꽤 흘렀다. 개인적으로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실사 기반에서는 할 수 없는 연출과 표현때문이다. 이러한 특징을 살려 이미 자국의 문화 산업을 대표하는 장르가 되었고, 그 중에서도 선별해서 들여오는 것일텐데 제대로 경쟁을 하려면 잘 해야하지 않을까?


넷플릭스 등을 통해 잘 나가는 K-문화 콘텐츠들이 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흥미롭게 여기는 지점이 있는데, 바로 오히려 작가주의 영화들이 "순수 재미"를 더 챙기려고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순수 재미가 단순히 자극적인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다들 알 것이라 생각한다.


예술은 소위 쓸모없음을 통해서 비로소 예술로 승화된다는 얘기가 있다. 나는 이 쓸모없음을 기본적으로 "순수 재미/유희"로 판단한다. 어떤 메세지와 분석을 통해 보이는 암시적 "지적 유희"들은 감상자들을 "감각적 만족"으로 붙들어 매어놔야 감상자들이 "정신적 후처리"를 통해 감각과 정신의 변증법이 작용해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보려한다. 그때의 감상도 이 자리를 빌려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어쩔 수가 없다>는 어떤 영화였나요?


그와중에 손예진 배우가 연기하는 주인공의 아내가 여러가지 의미로 참 섹시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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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링크:

[인터뷰] 헛수고하는 인간들을 위한 가을 소나타, <어쩔수가없다> 박찬욱 감독

2부 취향 크레바스 - 4 : 입맛의 미학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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