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p 여자의 첫 연애

남자는 왜 그렇게 친절하기만 했을까

by 김지투



그는 친절하고 예의가 바른 사람이었다. 카페에 가서는 신발 벗고 아빠다리를 하지 않았고 절대 반대편 의자에 다리를 올리지도 않았다. 먹은 편의점 초콜릿 쓰레기는 꼭 가지고 나와 다른 곳에 버렸다. 버스나 택시를 탈때도 기사님께 공손하게 성의를 담아 인사했다. 밥집에 가서도 공손하게 주문하고 공손하게 결제했다. 어디에 가서 언짢은 일을 당했을 때도 절대 따져 묻지 않고 손해를 좀 보더라도 예의바르게 마무리지었다. 거절을 할 때도 상대방이 기분나쁘지 않게 돌려 거절했다. 부탁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손을 씻을 때 비눗칠은 세번씩 했고 양치는 두번씩 하고 이너는 손빨래를 했다. 핸드크림과 물티슈, 이클립스는 꼭 챙겨다녔다. 필기구는 가방에 볼펜을 달랑 하나 넣어다니지 않고 필통에 종류별로 챙겨다녔고 필기를 할때도 펜으로 찍찍긋지 않고 꼭 수정테이프를 사용했다.


그는 가을을 좋아했다. 그에게 가을은 시원한 계절 그 뿐이었다. 여름의 매끈한 나뭇잎이 바삭히 말라버리는 것은 몰랐다. 각각의 나무에서 나오는 노란빛, 초록빛, 붉은빛, 마른빛 잎파리, 혹은 그게 몽땅 섞인 낙엽더미는 몰랐다. 그는 고양이를 좋아했다. 그의 눈에 고양이는 그냥 세모난 귀 두개 달린 털난 동물이었다. 어떤 길고양이에게 선택받는 자동차나 수풀,바위,의자 등은 좋아하지 않았다. 경계하는 그들의 뱀같은 눈동자, 밤에 창문턱에 앉아서 밖을 구경하는 고양이가 사람이 ‘먀아옹-’ 하며 다가올때 ‘햐악-‘ 소리내며 세우는 낙타같은 등과 고슴도치같은 털, 쥐꼬리처럼 바닥에 붙어있다가 위로 뻗치는 우산 꼭지같은 꼬리는 몰랐다. 에너지가 터질듯 말듯하며 잠재력이 가득해 춤을 추고 싶고, 노래가 나오는 동안은 이상한 짓을 해도 될 것 같은 멜로디를 듣고는 ‘신난다’ 라고만 했다. 비유로 가득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를 보고는 별로라고 하거나 다른 비유를 생각해내지 못했다. 그래서 생각의 흐름이 말끔했다.


그는 착하고 수줍음이 많았다. 근데 수줍음이 그렇게 많은가. 내가 하는 말 마다 ‘ㅎㅎ웅 ! 괜찮은거 같아ㅎㅎ’ ‘싫은건 아니야.’ ‘난 상관없어’ 등 ‘ ㅎㅎ’ 과 ’다좋아‘를 남발했다. 질문이 아닌 나의 말은 그에게서 대부분 ’음…’ 이라던가 ‘’하하하‘ ‘오~’ ‘웅!’ ‘짱이다~’ 등의 리액션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어떤 것에 대해 진하게 주장하거나 반박하고 고집피우는 일이 없었고 절대 상대방의 기분을 망치지 않았다. 반대로 거절하지도 않았다. 했을 수도 있다. 워낙 부드럽게 거절해 내가 못 알아들었을 수도. 그렇게 매사에 완곡한 표현만을 사용해 대다수의 사람에게 착한 사람으로 비춰졌다. 그러나 이런 일반적이고 예쁜 말들이 내 귀에는 슴슴하다 못해 자기주장이라곤 없는 국어사전이나 챗gpt의 성실한 공감표현, 혹은 유치하고 순수한 뽀로로나 루피 크롱의 말처럼 들렸다. 내가 한 말들이 이런 반응이 되어 돌아올 때마다 난 생각했다. 이래서 이 사람이 좋아졌었지… 어디서도 튀지않는 중간미있는 사람이어서… 나는 그의 이런 점이 괜찮아 보였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그와 공간만 공유하게 되었다. 주장하는 사람은 주장하지 않는 사람 앞에선 내 주장을 굳이 ’펼칠‘ 필요가 없다. 비유놀이도 할 수 없다. 내가 내 생각을 보여주고 싶어도 별 생각이 없어 보이는 사람 앞에서 토크쇼를 계속 할 순 없다. 처음엔 나쁘지 않았다. 그의 중립미가 꽤 좋아보였으니까. 나도 그의 앞에서는 통상적 말만 했다. 의견에 대한 뒷받침을 장황하게 늘어놓거나 비유를 하지 않고 중립미를 가져가는 듯 했다. 내가 이렇게 통상의 말만 하는데 그가 나를 알까 ? 하는 생각이 스쳤다. 당연히 알리가 없다. 동시에 나도 그의 말에서 생각을 읽어낼 만할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그가 그의 성격과 생각을 숨기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딱히 파악하지 못하면서 아무튼 그가 나와 비슷한 구석이 있길 바라고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지는 않았다. 말할 기회가 생기지 않았을 뿐더러 내 말을 쏟아내는 순간 내가 그와 다른 부류의 인간인 것을 들통날까봐였다. 그도 그랬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생각해낸 주제와 질문들, 내 머리를 채우고 있는 수많은 비유와 잡생각들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는 최선을 다해 배려하고 친절했다.


꾸준하게 재미가 없어도 일반적으로 올바르고 대다수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비춰지던 그였기에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그가 흔하게 만나기 어려운 좋은 사람이라고 믿어보기로 했다. 내가 사진을 즐겨 찍지 않고, 365일 방해금지 모드를 켜놓고, 무거워서 들고있을 때 손목이 아파도 아이폰 프로 맥스는 좋은거니까. 좋아하기로 한 사람이 괜찮은 사람이라서 다행이었다. 동시에 그를 미워하게 될 날이 올까봐 두려웠다. 미워하기로 한 사람이 사실 괜찮은 사람인 건 자괴감들고 받아들이기 싫은 상황일테니까. 그리고 그 날이 왔다.


작가의 이전글남의 말을 듣는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