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에 대한 망각
전체주의는 언제나 과거의 문제로 취급된다. 그것은 역사책 속에 정리되어 있고, 기념일과 다큐멘터리로 반복되며, 분명히 “이미 극복된 오류”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사는 전체주의가 사라졌음을 보여주기보다, 오히려 그것이 반복적으로 다른 얼굴을 하고 되돌아왔음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질문은 단순하다. 왜 인간은 같은 파괴적 선택을 반복하는가, 그리고 왜 그 기억은 세대를 건너지 못하는가.
전체주의에 대한 기억은 경험의 형태로는 전승되지 않는다. 그것은 체험의 기억이 아니라 서사의 기억으로만 남는다. 전체주의를 직접 살아낸 세대에게 그것은 논리나 이념 이전에 공기의 문제였다. 말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일, 눈을 피하는 습관, 침묵 속에서 안전을 가늠하는 감각은 몸에 새겨진 기억이었다. 그러나 세대가 바뀌면 이 기억은 설명으로 환원된다. 공포는 교훈이 되고, 고통은 비유가 되며, 침묵은 도덕적 경고로 정제된다. 이 과정에서 전체주의의 본질은 점차 사라진다. 그것이 인간의 사고를 어떻게 무너뜨리고, 일상을 어떻게 잠식했는지는 이야기로 전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체주의가 반복되는 이유는 그것이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쉽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래 복잡한 설명을 견디는 데 익숙하지 않다. 사회와 경제, 정치의 문제는 다수의 전제와 조건 위에서만 설명될 수 있지만, 이러한 설명은 불편하고 느리며 확신을 주지 않는다. 반면 전체주의는 단순하다. 문제의 원인은 하나이며, 적은 분명하고, 해결책은 즉각적이다. 흑백으로 나뉜 세계는 불안을 제거하고, 개인에게 도덕적 위치를 부여한다. 사람은 더 이상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올바른 편에 서 있는 존재가 된다.
사회과학이 본질적으로 대중에게 불친절한 학문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회과학의 언어는 언제나 조건부이며, 확률적이고, 맥락 의존적이다. 단기적 성과와 장기적 비용을 동시에 말해야 하고, 집단마다 다른 결과를 인정해야 하며, 언제나 예외를 남겨두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직함은 설득에 불리하다. 정치는 설명의 복잡성을 감당하지 못할 때, 이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조건은 사라지고, 예외는 무시되며, 불확실성은 도덕적 확신으로 대체된다. 이 지점에서 전체주의는 하나의 선택지로 등장한다.
문제는 단순한 해법이 결코 단순한 현실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처음에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속도는 빠르고, 성취는 가시적이며, 통제감은 강화된다. 그러나 현실은 곧 이 단순한 설명을 배반한다. 그때 실패는 구조의 한계가 아니라 내부의 적 때문이 된다. 비판은 반역으로, 질문은 배신으로 규정된다. 전체주의는 이 순간부터 선택이 아니라 구조가 되며, 스스로 오류를 수정할 능력을 상실한다. 그래서 전체주의는 언제나 외부의 적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의해 붕괴한다.
그럼에도 인류는 이 과정을 반복한다. 평온한 시대는 복잡함을 견딜 필요를 제거하기 때문이다. 제도가 안정되고 삶이 예측 가능해질수록 사람들은 묻기 시작한다. 왜 이렇게까지 복잡해야 하는가, 왜 간단하게 정리할 수 없는가. 바로 이 질문 위에서 전체주의적 언어는 다시 매력적으로 들린다. 더욱이 그것은 과거와 같은 폭력적 얼굴로 돌아오지 않는다. 정의와 보호, 도덕과 연대의 언어를 입고 나타난다. 그렇기에 이전 세대의 경고는 낡은 과장처럼 느껴진다.
전체주의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인간 인지의 구조와 대중 정치의 속성, 그리고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다만 가능한 것은 면역이다. 그 면역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즉각적인 답을 요구하지 않는 습관, 조건부 설명을 견디는 능력, 불확실성을 도덕으로 환원하지 않는 절제, 그리고 “모르겠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적 여유가 그것이다.
전체주의는 잔혹해서가 아니라 쉽기 때문에 되돌아온다. 그리고 인간은 쉬움에 대한 유혹은 오래 기억하지만, 어려움을 견뎌야 했던 이유는 세대 간에 전승하지 못한다. 결국 전체주의를 막는 유일한 방법은, 복잡함을 감내하는 인간과 제도를 끈질기게 유지하는 일이다. 그것은 느리고 불편하며 언제나 불완전하지만, 인류가 반복적으로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선택해야 할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