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만 해도, 성수역 웨이팅 적은 맛집이 궁금하면 '성수역 웨이팅 적은 맛집' 같은 키워드로 네이버나 구글을 열어 검색하곤 했다. 1년도 채 안 되는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Chat GPT에게 묻는다.
'성수역 인근에 웨이팅 적은 맛집 3개만 추천해 줘. 아이도 같이 갈 거니까, 노키즈존은 제외야!'
AI의 발전 속도가 실로 어마어마하다. 미드저니가 혁명처럼 등장하고, 이미지 일관성에 대한 이슈가 커지자 Comfy UI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툴 사용의 복잡성으로 진입 장벽이 높았고, 대화형 AI에 대한 니즈가 지속되자, 최근 구글에서 '나노바나나'를 출시했다.
이뿐인가. GPT-4o가 출시된 후 이미지 생성 능력이 크게 향상되면서, AI를 통한 인물 생성의 커버리지가 넓어졌다. 기존의 'AI스러운' 모델 이미지가 아닌 '진짜 사람 같은' 모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툴이 출시되고 있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기술이 발전하면, 그걸 따라가야 하는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불안한 게 당연하다. 디자이너는 툴 전문성을 보유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 하지만 이번 강의를 듣고 느낀 점은, 대다수의 디자이너가 같은 (또는 비슷한) 고민과 불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양한 업계와 직무의 디자이너분들 이야기를 들으며, 처음에 가지고 있던 불안은 기대로 바뀌게 되었다. 총 6개의 세션 중 기억에 남는 세션 3개를 소개하려고 한다.
Session 1. 급변하는 AI 시대 속 디자이너로 살아가기
LINE 김황일(Motion & Interaction Designer)
첫 번째 세션은 AI 이미지 생성 도구를 실무에 실제로 적용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LINE의 김황일 디자이너는 일본 배달 앱 서비스 ‘데마에칸’ 프로젝트 사례를 통해 AI 이미지 활용의 가능성과 한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한국과 일본의 상반된 관점이었다. 한국은 빠르게 AI 툴을 도입하여 생성된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반면, 일본은 저작권 등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었다. 이 두 국가의 관점이 결합되니 '리스크가 적은 AI 활용'이라는 흥미로운 방향이 가능해졌다.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닌가..)
앱에 사용되는 아이콘과 메인 비주얼을 AI로 만드는 과정도 흥미로웠는데, 아이콘은 Chat GPT, 메인 비주얼은 미드저니와 나노바나나를 활용해 일관성을 확보했다고 한다. 생성형 AI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손 모양 왜곡 현상은 포토샵의 부분 생성 기능을 같이 활용했다는 점에서 실무적인 고민이 느껴졌다.
이미지 생성 단계를 넘어, AI를 통해 생성된 자산을 체계적으로 관리·재활용할 수 있는 '비주얼 허브(Visual Hub)' 개념도 소개됐다. 이는 단발성 결과물에서 벗어나 AI를 디자인 워크플로우의 일부로 통합하려는 시도로, 향후 디자인 조직 운영에 참고할 만한 접근이었다.
Session 2. AI 시대 전문성을 가진 디자이너로 살아가기
듀오톤 최지훈(Creative Experience Manager)
두 번째 세션의 핵심은 'AI를 다룰 줄 아는 것'과 'AI를 활용해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의 차이에 있었다. DUOTONE의 최지훈 디자이너는 단순히 툴 사용법을 익히는 것만으로는 경쟁력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도구를 통해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다.
진행했던 3개의 대표 프로젝트를 예시로 들며, 각 프로젝트에서 AI를 활용한 범위를 상세히 이야기했다. 흥미로웠던 점은, 스케치 → 1차 시안 → 클라이언트 피드백 → 최종 시안이라는 큰 맥락에서의 디자인 프로세스에서 공통적으로 '1차 시안' 단계에 AI가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클라이언트의 세부적인 피드백을 반영하기에는 기술적 한계가 뚜렷했고, 직접 수정하는 것이 훨씬 빨랐기 때문이다. (이 점은 AI를 활용하는 대다수의 디자이너가 느끼는 것이리라 확신 한다.. 속터져)
기술적인 숙련도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렵다는 점은 강의 내내 강조된 핵심 메시지였다. 같은 AI 도구를 사용하더라도 디자이너마다 산출물이 다르게 나오는 이유는, 기술보다도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 방향을 설계하는 사고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의 전문성은 미적 감각이나 기능 숙련도보다도, AI를 포함한 다양한 도구를 자신의 디자인 언어 안으로 끌어들이는 역량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AI 도구를 얼마나 능숙하게 다루는가?"라는 고민에만 빠져 있던 나에게, "그 도구로 무엇을 만들 것인가?"라는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준 것이다.
이와 함께, AI 시대에 디자이너는 'AI와 의도적으로 멀어지기' 연습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AI는 기존의 아름다움을 빠르게 학습하고 재현하지만,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나 관점을 제시하지 못한다. 결국 AI가 만들지 못하는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관점을 찾기 위해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사색하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영감을 얻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결국 AI는 우리의 손과 발이 되어줄 뿐, 어떤 길을 갈지 결정하는 것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라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Session 3. AI 도구와 함께하는 프로덕트 디자인의 현재와 미래
하이브 조훈(Content Innovation Team Manager)
세 번째 세션은 AI가 프로덕트 디자인 실무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준 시간이었다. HYBE의 조훈 디자이너는 실제 프로젝트에서 활용 중인 다양한 AI 도구를 소개하며, 이들이 디자인 팀의 구조와 업무 방식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그가 각 AI 도구를 하나의 '팀원'으로 비유해 설명한 부분이었다. 반복 작업을 담당하는 실무자 역할을 하는 툴이 있는가 하면, 전략적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리더 역할에 가까운 툴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각 툴의 강점과 한계를 이해하고, 이를 적절히 조합해 팀 전체의 퍼포먼스를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러 툴 중에서도 최근 활용을 시작한 ‘마누(Manus)’를 특히 유용하게 느끼고 있다고 언급했는데, 이는 생산성과 결과물 퀄리티를 동시에 끌어올리는 데 효과적이라는 맥락이었다.
강의는 화면을 좌우 2분할하여 진행됐는데, 한쪽에서는 강의 자료를 스크롤하며 설명을 이어가고, 다른 한쪽에서는 ‘팀장’ 역할의 마누(Manus)가 실시간으로 UX 관점에서 UI를 설계하고 구현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이런 2분할 강의 방식처럼, AI가 가능한 범위의 업무에 대해서는 AI에게 맡기고, 확보한 시간을 더 복합적인 문제 해결이나 창의적인 판단에 쓰는 것이 핵심 전략이 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이는 단순한 생산성 향상을 넘어 디자인 프로세스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접근이며, 디자이너의 역할을 ‘모든 것을 직접 만드는 사람’에서 ‘무엇에 집중할지 결정하는 사람’으로 이동시키는 변화다.
AI의 등장으로 디자이너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확장될 수 있다는 관점이다. 기술이 대신할 수 없는 ‘가치 판단’이나 ‘방향 설정’의 영역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으며, 디자이너가 실무를 넘어 이러한 부분에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예술가적 시각”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하며, 단순히 작업 능력을 높이는 것에서 한 단계 나아가 무엇이 가치 있는 디자인인지 판단하고 정의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번 컨퍼런스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는 'AI는 도구가 아니라 구조'라는 점이었다. AI가 디자인 결과물을 직접 완성하지는 않지만, 결과물을 만드는 프로세스 자체를 변화시키고, 그 안에서 디자이너가 맡아야 할 역할의 정의를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할수록 디자이너는 ‘새로운 툴을 얼마나 빨리 배워야 할까’라는 압박에 놓이기 쉽다. 하지만 이번 강연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된 포인트는 문제의 초점이 ‘툴 숙련도’ 자체에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AI를 얼마나 잘 다루느냐가 아니라, AI를 디자인 프로세스 안에 어떻게 통합하고, 그것을 통해 어떤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내느냐이다.
즉, 디자이너는 더 이상 모든 것을 직접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고 그 과정을 설계하는 사람으로 역할이 확장되고 있다. 이번 강연은 단순히 새로운 AI 툴을 소개하는 자리가 아니라, 이런 변화 속에서 조직과 개인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실무 관점에서 짚어준 시간이었다.
처음엔 불안에서 출발했던 질문이, 이제는 “앞으로 어떤 구조를 설계할 것인가”라는 방향성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다시 정의되는 출발선 위에 우리가 서 있음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