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계를 위해 선택해야 했던 일들
아버지가 떠난 뒤, 집안의 시간은 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더 이상 슬픔을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없었다.
울고 있을 틈도, 주저앉아 있을 여유도 없었다.
두 아이를 먹여 살려야 했고, 아버지가 남기고 간 빚은 그대로 어머니의 몫이 되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가능한 한 우리와 함께 아침밥을 먹으려 애썼다.
이른 새벽부터 부랴부랴 밥을 지어 상을 차려 놓고,
“어서 일어나라.”
그 말 한마디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는 동안,
어머니는 이미 머릿속으로 그날의 일을 계산하고 계셨을 것이다.
우리가 학교에 가고 나면 그제야 어머니의 진짜 하루가 시작되었다.
군북이라는 시골에서 어머니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봄이 오면 논과 밭으로 나갔고,
여름에는 땡볕 아래서 김을 매고,
가을이면 남의 논에서 벼를 벴다.
해가 기울 무렵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다반사였다.
농번기가 아닐 때는 시장으로 나갔다.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며 하루 품삯을 벌었고,
겨울이 되면 찐빵집에서 일을 하거나
찐빵을 양동이에 담아 머리에 이고
이 마을 저 마을을 오가며 팔았다.
눈발이 흩날리는 어느 날,
양동이 위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장면이
나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어머니의 어깨 위에서 흔들리던 그 따뜻한 김이,
사실은 그날 우리 밥상의 온기였다.
일이 없는 계절은 쉼이 아니라 불안이었다.
“다음 달은 어찌 버티지…”
그 말을 어머니는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대신 또 다른 일을 구했고, 또 다른 하루를 견뎠다.
어머니의 손은 늘 거칠었다.
논흙이 스며든 손,
설거지 물에 짓무른 손,
찐빵을 쥐느라 굳은살이 박인 손.
그 손이 우리 밥상을 지켰고,
학교 갈 준비물을 마련해 주었고,
밀린 빚을 조금씩 갚아 나갔다.
나는 그때는 몰랐다.
어머니가 선택한 그 모든 일들이
‘먹고 살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어머니에게 노동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었고,
하루를 버틴다는 것은
내일을 포기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가난과 책임이라는 두 개의 무거운 짐을
말없이 함께 짊어진 채
하루도 빠짐없이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걸음 하나하나 위에
우리 남매의 시간이
조용히 쌓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