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질문하는 자리에서

공직을 떠난 뒤에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

by 황희종

권한이 있는 사람은 설명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버틸 수 있으며,

목소리가 큰 사람은 문제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도 앞에서 말이 막히는 사람,

절차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

“원래 그런가 보다” 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는 사람은

늘 질문조차 남기기 어렵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그 질문의 안쪽에 있었습니다.

40여 년간 공직에 몸담으며 수없이 많은 문서를 읽고,

회의를 주재하고, 결정을 내리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규정은 늘 곁에 있었고, 절차는 익숙했으며,

법적으로 문제없는 선택을 하는 법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한 가지 질문이 자꾸만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 결정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공직은 제도를 통해 작동하지만,

그 제도는 결국 사람을 향해야 합니다.

그 간단한 원칙이

때로는 가장 쉽게 잊히는 순간들을

나는 너무 많이 보아왔습니다.

공직을 떠난 뒤에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들도 있습니다.

회의실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

결정 이후에 남겨진 침묵,

그리고 “어쩔 수 없다"라는 말 뒤에 가려진

작은 체념들 말입니다.

공직에 있을 때는

속도를 이야기했고, 성과를 따졌으며,

책임의 범위를 계산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를 내려온 뒤에는

속도보다 방향을,

성과보다 이유를,

책임보다 태도를 먼저 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질문하는 자리로 돌아오려 합니다.

이 글은 회고록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고발하기 위한 기록도 아닙니다.

정답을 제시하려는 글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곳은

한 사람의 공직자가

제도의 중심이 아닌 시민의 자리에서

공직을 다시 바라보며 남기는 질문의 기록입니다.

나는 여전히 공공을 믿습니다.

그리고 공직의 가능성 또한 믿고 있습니다.

다만 그 믿음은

침묵 위에 세워질 수 없고,

관성 위에서 유지될 수 없으며,

"문제없다"라는 말로는 지켜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수많은 공직자들이

선의와 책임감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 것입니다.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고,

알고 있지만 나설 수 없는 순간 앞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버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글은 그런 분들에게

“당신의 고민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작은 신호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시민에게는

공직이 결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 있는 선택의 연속임을

함께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 이 연재에서 나는

권한과 책임,

제도와 사람,

침묵과 용기,

그리고 공직자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때로는 불편할 수도 있고,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게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이 글들은 정답보다 질문을 남기기 위해 쓰일 것입니다.

나는 다시,

질문하는 자리에 서기로 했습니다.

그 자리가 비록 조용하고 외로울지라도

공직의 품격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 독자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최근,

어떤 질문을 마음속에만 남겨두고

말하지 못한 채 지나온 적이 있습니까?

그 질문은

아직도 당신 곁에 남아 있습니까?

이 글은 《공직자의 품격》 연재의 첫 번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