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메밀 국수
새벽녘 잠에서 깼다.
처음으로 아버지 꿈을 꿨다.
돌아가시는 꿈이다.
너무 생생해서 심장이 덜컥 거린다.
얼마간 그대로 침대에 앉아 있다 다시 잠들면 꿈이 이어질까
박차고 일어나 욕실로 가 찬물로 샤워했다.
머리뼈에서 꽁꽁 언 강바닥에서 나는 쩡~ 쩡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커피포트에서 물 끓는 소리가 “톡” 하고 멈춘다.
젖은 손으로는 질기게 안 찢어지는 커피믹스 봉지를 절반쯤 찢어내고도
늘 마무리는 가위다.
나는 글을 써본 적이 없다.
내가 글을 쓰지 않는 이유는 못 쓰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그다음은 직업군인이셨던 아버지의 검열 때문이다.
매주 토요일 집에 오신 아버지는 가방 검사와
국민교육 헌장 암기를 점검하신다.
그날은 뜬금없이 국군장병에게 위문편지를 쓰라고 하신다.
누이는 초등학교 5학년 나는 3학년이다.
바닥에 엎드려 편지를 쓴다.
생전 처음 써보는 편지 어떻게 쓰는 것인지 몰라 곁눈으로 누이 편지를
흘겨보며 흉내를 냈다.
내 편지를 보신 아버지께서 박장대소하신다.
“국군장병 아저씨께
아저씨 추운데 얼마나 고노가 많으신지요? ”
누이 편지에 노고를 뜻도 모르면서 고노로 커닝해 쓴 것이다.
이후로도 수개월 동안 내 별명은 “고노”였다.
놀림을 당하면서 나는 불끈불끈 다짐했다.
내 다시는 편지를 쓰지 않겠노라고 !!
그렇게 반세기가 지난 오늘 갑자기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진다.
후일 아버지와 함께 보내드리고자 서글픈 마음으로 아버지를 쓴다.
아버지는 지방 중소도시 명문고를 다니셨다.
밴드부에서 클라리넷을 부셨다고 들었다.
그런데 같은 밴드부 일본인 친구와
말다툼 끝에 클라리넷으로 그 친구 머리를 심하게 가격한 후
사건이 커지자 자퇴하신 후 시간을 보내다
‘세일러복’이 멋져 보여 해군에 입대하셨단다.
해군 입대 후 훈련 중 해병대가 창설되자
해병으로 갈 사람은 지원하라고 하셔서
손들어 해병으로 병과가 바뀌셨다.
보름 전 먼저 지원해 간 동기들이 1 기고 아버지는 2 기다.
그 당시부터 해병대 기수는 보름마다 1 기수씩 늘어난다.
흑백 사진이지만 당시 아버지는 꽃미남 18세 청년이셨다.
제주도에서 훈련을 마치고 진정한 해병이 되자
곧 6. 25 전쟁이 터졌다.
통영에서 전투 중 갑자기 일본으로 훈련 간다고 하여
큰 전함에 실려 어디엔가 다다르자 그제야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하신다.
인천상륙작전은 맥아더 장군의 선상 지휘로 진행되었고
아버지는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향에 계신
부모님들께 마음속으로 기도를 드리며 맥아더 장군의
상륙 명령만 기다는데
어라~ 첫 상륙 팀이 한국 해병대가 아니라
미 해병대에게 상륙 명령이 떨어졌단다.
한국 전쟁인데 당연히 총알받이는 한국 해병이지
어떻게 미 해병을 먼저 상륙시켰는지 맥아더 장군을 만나면
물어보고 싶다고 하신다.
그런 인연으로 아버지는 인천 맥아더 장군 동상을 훼손하려는 자들로부터
이를 지키는 수호대로 한동안 활동하셨다.
아버지는 94세 치매로 말씀을 알아듣기는 어렵다.
오늘은 후루룩을 잃으신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메밀국수를 퍼지게 삶아
가위로 잘게 잘라 수저로 떠먹여드리고 오면서 울었다.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