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계급은 상사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아버지 부대
인근 도시에서 살았다.
대부분 군인 가족들이다.
매주 토요일이면 늘 무엇이든 먹을 것을 마련해 들고 오시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변소 간 슬레이트 지붕 위에서 10리 밖 비포장 신작로를 걸어오실 아버지를 기다렸다.
손톱만큼 작게 보이는 사람이 점점 커지면서 실망도 기대도 하면서...,
지금 생각해 보면, 변소 간은 분명 골진 슬레이트 지붕인데 남동생과 내가 올라가
길게는 한 시간 이상도 노닥거리며 아버지를 기다렸는데 깨지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다.
아버지가 단골로 사 오시는 티피 쵸콜볼
초콜릿 속에 땅콩이 숨어 있는 무척 맛 나는 초코렛이다.
그 당시에도 있었나 싶지만 있었고 맛도 있었다.
어느 때는 “미루꾸”라고 불렀던 밀크 캐러멜과 비슷한 맛
군용 마크가 선명한 캐러멜도 넉넉히 가지고 오셨다.
10개씩 두 줄이나 들어 있는 캐러멜 덕분에 나는 반에서 제법 인기가 좋았다.
단 거 먹고 싶으면 당원을 우물물에 녹여 마시다 혼나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식구는 서울로 이사 왔다.
동네 또래 아이들이 아버지가 군인이라는 것을 알고 계급이 무엇인지 집요하게 묻는다.
집에 오실 때 늘 사복을 입고 오시니 아이들이 궁금했나 보다.
나는 고민 없이 “응 소령”
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아이들이 와아~ 하며 “해병대 소령이면 짱이다” 라고 하면서 나를 부러워하고 난 그 아이들이 미웠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군복을 입고 집에 오셨다.
나는 안절부절 아이들이 못 보았기를 바라며 밖으로 나와 미어켓처럼 고개를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아무도 본 아이들이 없는 듯했다.
그렇게 지내시고 일요일 다시 부대로 들어가시는 아버지를 문안에서 인사 하고 스파이처럼 문틈으로 밖을 살폈다.
한참을 내려가시는 아버지를 촉새로 유명한 녀석이 어떻게 알았는지 아버지 뒤를 쫓기 시작한다.
뒤에서는 계급장이 안 보이니 전면을 보기 위해서다.
버스 정류장까지 따라가 결국 아버지 계급장을 보았단다.
아버지 계급은 또래 아이들에게 들불처럼 번졌다.
그렇게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어 한동안 밖에 나가 놀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기창이가 찾아왔다.
소금 약을 얻으러 왔단다.
군부대에서 장병들에게 한여름에 탈진을 대비해 먹이는 핑크색 소금으로 된 알약이다.
아버지는 너희도 땀나게 놀다가 들어오면 먹으라고 알려주시고 원기소 통 만한 빨간색 약통을 마루 입구 나무 벽에 걸어 두셨다.
그것을 기창이가 얻으러 온 것이다.
누가 먹을 거야? 물었다
기창이는 쭈뻣 쭈뻣 말을 안 한다.
말 안 하면 안 주겠다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콩나물국을 끓이는데 소금이 집에 없단다.
기창이 아버지는 오래전 가출하신 것은 나도 알고 있었는데
어머니도 며칠 째 집에 안 들어오셔서 그렇단다.
나는 지금도 기창이를 가끔 만나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신다.
기창이가 소금 약 이야기를 기억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나는 아직 묻지 못했다.
소금 약을 한 움큼 쥐여주면서 아이들 근황도 물었다.
이제 더 이상 이야기하는 아이는 없다고 한다.
자존심 강했던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맘고생이 심했으면 그 일 이후 지금까지
“말을 하지 않으면 안 했지”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 계급이 나를 평생 정직한 인간으로 만들어 준 셈이다.
2부.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