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mad in Roma (8)
이탈로를 타고 나폴리로 향하는 도중 메시지를 받았다. 다섯 시 반에는 직원이 퇴근해야 하니 여권 사본을 내놓으라는 호텔로부터의 것이었다. 그러면 체크인할 수 있는 코드를 보내주겠다나? 확인해보니 규정에는 분명 20시까지 체크인을 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아, 나폴리인가?’ 싶었으나 이내 ‘곧 중앙역에 도착하니 조금만 기다려줄 수 없느냐’고 되물었다. 저녁에 약속이 있거나 정말 바쁜 일이 있다면 흔쾌히 사본을 보내겠노라는 말도 함께. 돌아온 메시지에는 ‘OK. 지금 호텔로 돌아가는 중’이라 적혀 있었다.
잠시 후 기차가 나폴리 중앙역에 도착했다. 역을 빠져나오자 소금기가 실린(그래서 더 달콤하고 편안한) 바람이 나를 안아주었다. 호텔 직원은 마중까지 나와서 친절하게 체크인을 도와주었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일 처리였다. 메시지도 본인이 보낸 거란다. 그리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어디서나 귀여운 남부 사람들…
나폴리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 등장하는 피제리아 다 미켈레(L'Antica Pizzeria da Michele)에 간 것이다. 긴 줄을 보니 욕심이 생겨서 두 판이나 주문했는데 모두 만족스러웠다. 마르게리타나 마리나라보다는 코사카(Cosacca) 피자를 추천한다. 맛있는 건 차게 식어도 훌륭하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뜨거운 피자를 부러 식힐 필요는 없지만.
한편 나폴리에 도착하기 전, 그러니까 로마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는 전기자전거 투어를 택했다. ‘엥? 갑자기 웬 전기자전거?’ 싶겠지만 이를 타고 아피아 가도, 카타콤베 그리고 로마 근교를 둘러보는 종합 투어라고 하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투어는 ‘아피아 가도’를 통해 ‘카타콤베’를 반환점 삼아 돌아오는 일정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로마 외곽의 평화로운 전원 풍경과 운동하는 로마 사람들, 현역 양치기와 양떼 등 다양한 풍경을 마주할 수 있으니 도시를 벗어나 평화로움을 만끽하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유일한 단점은 6~7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인데, 나는 그 역시 마음에 들었다.
아피아 가도(Via Appia Antica)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유래된 돌길이다. 기원전 312년부터 건설되었으며, 총 길이는 무려 650km다. 이 길에서 벌어진 일 중 유명한 하나는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이다. 스파르타쿠스가 이끄는 노예군이 세를 불리며 로마로 진격한 것도, 로마군에 의해 반란이 진압된 곳도 바로 이 길이었다.
투어 중 포로로 잡힌 노예군 6,000명이 산 채로 십자가에 매달아졌다던(십자가형은 당시 로마의 최고 형벌이었다) 장소에도 잠시 머물렀는데, 수만의 군인들이 비좁은 길에서 엉기고 붙었을 살육전과 그보다 더 잔혹했을 형벌을 상상하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러나 정말로 등줄기를 차게 만든 건 카타콤베 투어였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산 세바스티아노 카타콤베로, 산 칼리스토 카타콤베와 함께 많은 여행자가 방문하는 곳이다. 산 세바스티아노의 이야기도 흥미로우니 꼭 찾아볼 것을 추천한다.
카타콤베 내부의 유골은 대부분 옮겨졌으나 일부는 여전히 봉인된 채로 잠들어 있다. 개중에는 아주 어린 나이(3세)에 유명을 달리한 아이의 무덤과 당시 평균 수명의 두 배가 넘는 80세에 떠난 노인의 무덤이 있었는데, 이를 보며 나는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를 또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같은 날 저녁 나는 두 배로 따뜻한 피자 두 판을 들고 숙소로 향한다. 온통 죽은 것들, 식고 차가워진 것들로 가득했던 로마에서는 느낄 수 없던 생의 에너지가 나폴리의 골목들을 비집는다.
부딪힌다면 분명 접시처럼 깨지고 말 속도로 달리는 스쿠터(운전자를 포함한 세 명의 십 대 소녀가 탄), 지저분하지만 정돈되어 있고, 악취를 풍기지만 청명하게 소란스러운 골목들,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살아가기 위해서 걷고 또 달리는 사람들, 유령처럼 따라다니는 담배 연기와 로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어둡고 침침한 표정들.
죽음의 도시를 빠져나오자, 비로소 천국이었다. 어쩐지, 좋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