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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인 Feb 25. 2024

QUO VADIS. 그대, 어디로 가는가?

Nomad in Roma (9)

Uno


비가 내리는 9시 38분, 나는 그라냐노(Gragnano)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 아침 나폴리의 여행자 대부분은 소렌토나 폼페이, 포지타노와 베수비오로 갈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라냐노로, 그들보다 이름이 덜 알려진 근교의 소도시로 간다. 이처럼 다르고 낯선 길로 나아갈 때 나는 희열을 느끼고 존재를 확인한다. 이는 어쩌면 질병인지도 모른다.


투명한 뿔테 안경을 쓴 아시아 여성, 나이 든 흑인 남자 둘, 아코디언과 반도네온을 섞어놓은 모양의 악기로 호소하며 나에게 손가락 하나를 펼쳐 보이는 남자, 숙영 장비라도 들었는지 삐쭉 빼쭉 튀어나온 배낭을 멘 백인 남자와 검정 보스턴 백을 든 나.


몇 분 뒤, 우리가 모여 있는 라마다 호텔 앞 버스 정류장으로 75번 버스가 도착한다. 흑인들이 먼저, 내 뒤로는 아무도 타지 않는다.


그로부터 30분 뒤, 나는 다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은 고객도 의자도 없는 시골 정류장이다. 사실 이곳에 오기까지 사소한 일이 있었다. 문장과 단어를 고르다가 환승 정류장을 지나친 것이다. 혹시 몰라 맨 앞 좌석에, 그것도 더 안전무결할 기사의 뒤에 자리를 잡았는데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나의 두 번째 부주의는 첫 버스를 50분 동안, 다음 버스를 20분 정도 타면 그라냐노에 닿을 수 있다던 구글의 말을 곧대로 믿은 것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10분 뒤에 도착한다던 74번 버스가, 3분 만에 눈앞에 나타났다. 인공지능의 시대는 아직도 멀었다.


지금부터는 인류를 믿기로 한다. 74번 기사에게 한 차례, 현지인으로 짐작되는 승객에게 한 번 더 ‘나는 그라냐노에 가노라!’고 선언한다. 기사는 자신만 믿으라는 듯 오른손으로 왼 가슴을 두드린다. 위대한 구글의 안내대로라면 74번에서 내리고도 20분을 더 걸어야 했을 테지만, 몽매한 인류는 그것을 사분의 일로 단축시킨다.


그렇게 나는 파스타의 땅 그라냐노에 입성한다. 그리고 벤치에 앉아 태양과 수다를 즐기는 노인들에게 다시 길을 묻는다.


Qual è il ristorante preferito dai gragnanesi?

-> 그라냐노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레스토랑이 어디죠?


????? uno chilometro !!!! ????… ?? via Roma!

-> ????? 일 킬로미터 !!!! ????… ?? 로마대로!


영어와 구글번역의 음성인식 기능을 모르는 그들과의 대화에서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우노 킬로메트로와 비아 로마뿐. 1km 거리에 있는 로마대로로 가라는 말일테다. 역시, 로마인가? 노인들을 떠나기 전, 나는 손을 모으고 그라치에 밀레(Grazie mille)를 세 번 반복한다. 3000만큼 고맙다는 뜻이다.


이윽고 도착한 비아 로마에서 나는 적당한 레스토랑을 찾아 입장한다. Pasta Cuomo. 쿠오모 가족이 운영하는 곳이리라. 곧 영어를 할 줄 아는 점원 다리오가 나를 맞는다. 지금은 구글이나 네이버, 그 어떤 인공지능보다 그가 반갑다.


추천받은 그라냐노 가정식 파스타와 그라냐노산 와인을 주문한다. 그리고 시작된 적막. 이상 기류를 감지한 다리오가 누군가를 부른다. ‘Alexa, Musica!’. 잠시 후 고요하던 레스토랑에 음악이 채워진다. 익숙한 이 멜로디는, 샤키라(Shakira)가 틀림없다.


'Whenever, wherever. We're meant to be together.'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선곡, 그보다 더 훌륭한 식사를 마치고 나는 다시 추천을 부탁한다. ‘제가 그라냐노에서 할 것이 남아 있나요?’


나의 질문을 다리오가 전하자 주방이 분주해진다. 무언가를 상의하는 듯하다. 잠시 후 소란이 잦아들고 한 분의 신사가 나를 찾아온다. 그의 이름은 마리아노 쿠오모(Mariano Cuomo). 이탈리아, 아니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파스타 메이커, 쿠오모의 프레지던트다.



Due


점원, DJ에서 이제는 통역사로 변신한 다리오가 마리아노의 뜻을 전한다. “당신만 괜찮다면 보여줄 게 있다. 그리고 나폴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들었는데, 그라냐노에서는 가는 길이 불편하니 기차역까지 자동차로 태워주어도 괜찮은가?” 호의를 거절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3000만큼 고마움을 표하고 쿠오모 일가에게 오후를 맡긴다.


내가 식사를 마친 걸 확인한 마리아노가 자기를 따라오라며 손짓한다. 주방을 지나 건물 뒤편으로 그를 따라간다. ‘Close! Close!’ 그가 소리친다. 비밀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나는 그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그는 손가락으로 눈동자를 가리킨다. 나는 눈을 감는다. 그에게 의지해 다섯, 아니 여섯 발쯤 걸었을까. 그가 손을 놓는다. 나는 안심하고 눈을 뜬다. 타이밍 좋게, 조명이 켜진다.


‘Welcome to Museum of Pasta!’ 마리아노의 말과 함께 쿠오모의 파스타 박물관이 펼쳐진다. 휘둥그레 커진 눈으로 박물관을 둘러보는 사이 그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짧은 대화가 오가고 그는 내게 전화를 건넨다. ‘My son Alfonso. He can speak english.' 알폰소는 정제된 속도와 단어의 영어로 동방의 여행자를 안내한다. 1820년에 시작된 쿠오모 파스타의 역사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투어를 마치고 레스토랑으로 돌아오니 마리아노의 아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햇살처럼 따뜻한 미소를 만면에 머금은 그녀는 나에게 몇 마디 이탈리아어를 건넸는데, 대략 ‘마리아노가 차를 가지러 갔으니 바깥에서 기다리면 된다.’는 뜻인 것 같았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나의 안녕과 축복을 바랐다. 알아듣지 못했지만, 알 수 있었다.


마리아노의 벤츠가 그라냐노의 골목을 지나 산길로 접어든다. 다리오의 빈자리는 구글이 대체한다. ‘우리는 뮬리니(Mulini) 골짜기로 가고 있습니다. 뮬리노(Mulino)는 전통적인 방식의 방앗간입니다.’


이후 한 시간 동안, 그는 내게 많은 것을 보이고 들려주었다. 2000년 전 로마인들이 만들었다는 수로, 메디치 가문의 뿌리가 시작되었다는 산골 마을, 산 중턱에서 내려다보는 지중해와 그라냐노, 중세 공작의 성과 탑들, 숲과 나무, 협곡과 새들의 울음소리, 수없이 지나가고 반복된 것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다가올 미래까지.


그가 약속했던 ‘Circum Vesuviana’ 기차역에서 우리는 헤어진다. 짧지만 강렬한 악수, 언제든 찾아오라는 인사와 다시 오겠노라는 사나이들의 언약이 조수석과 운전석을 오간다.


아직 해가 저물지 않은 오후, 나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이 기차는 나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가 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기술이나 숫자로는 어쩌지 못하는 것들이, 아직 그들의 손이 닿지 않은 것들이 지구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중요하다.


나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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