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가 아닌 성장이 되길....
드럼을 치던 학생이 졸업하고 난 후, 그의 동생이 학교에 들어왔다. 동생 또한 왜소증 장애였다.
진행성이지만 형보다는 더딘 진행형이라는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동생도 전기전자를 배우고 있었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동생에게도 드럼을 배우자고 제안했다.
"너의 형처럼 드럼을 해볼래?"
하지만 동생은 관심이 없다고 했다. 억지로 시킬 수는 없었다. 그래서 왜소증 동생에게는 기타를 가르치기로 했다. 드럼은 정보통신과에 있는 다른 학생을 소집했다.
그 학생은 지체장애인으로 왼발이 불편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오른발로 큰 북을 칠 수 있었다.
이들 또한 수업이 끝나면 2시간씩 남아서 연습했다. 연습이 없을 때는 배드민턴이나 탁구를 치며 재미있게 지냈다. 그렇게 함께 어울리는 시간들이 쌓여갔다.
또한 베이스 기타를 치는 선생님이 계셔서 다행히 축제를 잘 준비할 수 있었다.
노래자랑도 하고, 게임도 하고, 어울림 한마당으로 진행되는 1년에 한 번의 축제. 그 축제를 재미있게 장식하는 것은 결국 밴드부의 몫이었다. 무대 위에서 함께 연주할 때, 그 아이들의 눈빛은 빛났다.
그런데 변화가 생겼다.
학생 교육 후 진로를 결정하는 성과 중심의 제도가 도입되면서 그러한 행사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있다 해도 단 하루, 6시간의 시간만 주어지는 현실이다. 2박 3일의 축제는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장애인 교육 기간이 2년이었던 시기와 지금의 1년. 과연 1년 만에 전문적인 교육이 가능한가? 의문이 든다.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1년에 몇 명을 취업시키고, 몇 명을 수료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숫자로만 평가받는 교육. 장애인을 취업 찍어내듯이 해야 하는 지금의 현실에서 안타까운 마음만 커져간다.
선진국 연수를 갔을 때의 일이 떠오른다. 그곳에서는 중증장애인의 성공적인 사회 진출을 위해 교육훈련을 5년 정도 실시하여 충분히 사회생활을 준비시키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었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그들을 준비시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오직 실적으로만 교육훈련이 이루어지고 있다.
장애인 취업을 찍어내는 것에만 급급하다. 그 과정에서 장애인 노동권은 큰 타격을 받는다. 충분한 준비 없이 사회로 내몰린 장애인들은 결국 소외된다.
현장에서 인권 침해와 차별을 받는 사례들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그럴 때마다 고민한다. 장애인 고용이 이대로 괜찮을까? 하지만 이러한 방식이 마치 정답인 것처럼 당연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실. 교사로서 무력감을 느낀다.
드럼을 치던 그 학생의 땀 흘리던 얼굴이 떠오른다. 6개월 동안 매일 연습하고, 무대에 서서 빛나던 그 순간들. 그 시간이 그 아이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단순히 취업 실적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가치가 거기 있었다.
지금도 이러한 현실을 고민하고 있다.
숫자가 아닌 사람을 보는 교육, 성과가 아닌 성장을 기다리는 교육은 언제쯤 가능할까. 그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오늘도 제자들과 함께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