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
비가 그친 뒤의 새벽은 오히려 더 축축했다.
청계천 위로 얇은 안개가 깔리고, 물 위에는 종이 한 장이 떠내려가고 있었다.
종이엔 잉크가 번져 있었고, 문장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청계천, 재봉틀 아래서 사람이 죽어간다.
글씨는 찢겨 있었지만, 아직 완전히 지워지진 않았다.
그 시각, 인쇄소 안에서는
민수가 마지막 교정지를 묶고 있었다.
그는 커피 대신 찬물을 마셨다.
밤새 흘린 잉크 냄새가 손에 배어 있었다.
벽시계가 새벽 네 시 반을 가리킬 때,
문 밖에서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다.
낯선 구둣발이 몇 발짝 뒤따랐다.
민수는 라디오를 켰다.
지지직거리는 잡음 사이로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섞였다.
“정부는 불온 인쇄물 유포자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민수는 라디오를 끄지 않았다.
대신 원고지 위에 한 줄을 더 썼다.
“기록은 언제나 사람보다 느리지만,
사람보다 오래 남는다.”
그는 펜을 내려놓고
서랍에서 사과 하나를 꺼냈다.
껍질을 벗기며 중얼거렸다.
“이 문장은… 내 마지막 기사일지도 모르겠군.”
문이 두 번 두드려졌다.
낮고 일정한 리듬이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문으로 걸어갔다.
“누구요?”
“청계파출소입니다. 확인할 게 있습니다.”
민수는 웃었다.
그 웃음엔 놀람도, 두려움도 없었다.
그는 활자판 옆의 노트를 닫고, 책상 위에 놓았다.
그 위엔 단 한 줄이 적혀 있었다.
“누군가는 써야 했다.”
문이 열렸다.
네 명의 형사가 들어왔다.
한진이 맨 앞에 서 있었다.
서로 눈이 마주쳤다.
“박민수 씨죠?”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불온 인쇄물 유포 혐의로 연행합니다.”
민수는 조용히 손을 들었다.
“수갑은 필요 없을 겁니다.”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한진은 잠시 멈칫했다.
그 담담함이 이상하게 마음을 흔들었다.
형사들이 인쇄소를 수색했다.
서랍, 책장, 인쇄기 밑, 벽 틈.
하지만 민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인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기계는 여전히 따뜻했다.
“원고는 어디 있습니까?”
한진이 물었다.
민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미 세상에 나갔습니다.”
“외신입니까?”
민수는 웃었다.
“글자가 바람을 타면, 국경은 아무 의미 없어요.”
한진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명령했다.
“모두 나가. 내가 직접 데려간다.”
형사들이 나가자 인쇄소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민수는 담배를 꺼내 한 개비를 피웠다.
“태워도 되겠습니까?”
한진이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증거가 아닙니다.”
“그건 알지요.”
불빛이 순간 흔들렸다.
민수의 얼굴이 연기에 가려졌다.
그는 재떨이에 담배를 비비며 말했다.
“당신은 믿습니까?”
“무엇을?”
“진실이 언젠가는 이긴다는 걸.”
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어요. 나도 이젠 모르겠거든요.”
차가 출발했다.
인쇄소 불빛이 차창 밖으로 멀어졌다.
민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낯설었다.
‘이 얼굴로, 나는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한진은 운전대를 잡은 채 물었다.
“그 기사, 누가 넘겼습니까?”
“내 가요.”
“혼자?”
민수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기록은 혼자 쓰지만,
남는 건 늘 여럿이니까.”
“당신, 후회는 없습니까?”
민수는 대답 대신 창밖을 봤다.
새벽의 하늘은 희뿌옇고,
가로등 불빛은 물 위에서 깜박였다.
“후회할 시간에 한 줄이라도 더 써야죠.”
한진은 그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차 안에는 엔진음만 울렸다.
파출소에 도착하자
형사들이 그를 잡아끌었다.
민수는 잠시 멈추더니 뒤를 돌아봤다.
“내 인쇄소에 불은 끄지 마세요.”
“왜요?”
“기계는, 누군가 다시 써야 하니까.”
그는 고개를 들고 천장을 바라봤다.
형광등 불빛이 눈을 찔렀다.
“눈부시네요.”
그 한마디가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새벽이 다시 밝았다.
청계천 다리 위,
정연이 라디오를 들고 서 있었다.
외신 뉴스가 다시 흘러나왔다.
“…the reporter who delivered the story is now in custody…”
정연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물 위에 햇빛이 부서졌다.
그녀는 그 빛을 향해 속삭였다.
“민수 씨, 글은 살아있어요.”
한진은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찢어진 메모 한 장이 들려 있었다.
“누군가는 써야 했다.”
그는 그것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누군가는 지켜야 하지.”
그날,
청계천의 물은 아무 일도 없던 듯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물속엔,
누군가의 문장이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