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고3

수능대신 취업을 선택했지만

by 정서하

의료기기 매장을 지나오면서 문득 내 지난날이 떠올랐다.
때는 1999년, 내가 고3이던 시절이었다.
주변 친구들이 수능 준비로 바쁠 때, 나는 먼저 사회로 나가 취업에 성공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오해로 인해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고,
그 뒤로는 “이제 와서 무슨 수능이냐”는 생각에 공부를 포기했다.

그 무렵 집에서는 요양 중이신 할아버지를 돌봐야 했다.
맞벌이로 늘 바쁜 부모님 대신, 그 역할은 나의 몫이었다.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는 나를 각별히 아껴주셨다.
자식들에게는 무뚝뚝하고 말 한마디 인색하셨던 분이었지만,
손주들 중 유독 나만큼은 각별히 예뻐하셨다.
나 역시 할아버지 곁에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가톨릭 라디오를 틀어놓으면, 나도 옆에서 함께 들으며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는 동맥경화 합병증으로 왼쪽 무릎을 절단하게 되었다.
그 후유증은 길고 고통스러웠다.
거동이 불가능해지자 나는 할아버지의 발이 되어드렸다.
지금 돌이켜보면, 19살의 내가 감당하기엔 벅찬 일이었다.
목욕을 시켜드리고, 대소변을 비워드리고, 밤새 곁을 지키는 일들….
그때는 그저 “할아버지니까”라는 마음 하나로,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시기 두 달쯤 전, 할아버지는 내 손에 통장과 도장을 쥐여주시며 말씀하셨다.
“이건 네 할애비 재산이다. 네가 써라.”
액수는 많지 않았지만, 그 마음만큼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의 손끝 온기와 눈빛이 아직도 내 마음 깊숙이 남아 있다.

결국 할아버지는 오랜 입·퇴원을 반복하시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마지막 말씀을 남기셨다.
의료진의 허락 하에, 손으로 쥐어짜는 엠부(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집으로 모셔왔다.
그날 온 가족이 모였다.
할아버지는 가족들의 얼굴을 한 사람씩 바라보셨고,
엠부를 떼고 단 2분 만에 고요히 눈을 감으셨다.

그 일이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이제 나는 마흔 중반의 아이 엄마가 되었고,
그때의 할아버지 목소리조차 희미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내 마음 한켠에는
그분의 따뜻한 손길과 마지막 숨결이 살아 있다.
시간은 흘러도, 그 사랑만큼은 내 안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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