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진짜 네가?
나의 장애가 티 나지 않아서 마주하는 어려움은 별 것 아니라 느껴질 수 있지만 막상 겪어보면 별 것이 맞다.
티 나지 않기에 나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평범한 시작을 한다. 다수가 비장애인인 세상이니 (특히 내가 다니는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에서는 개교 이래 내가 첫 장애 학생이다) 나를 남들과 달리 보지 않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처음에는 이 점이 정말로 좋았다. 아무도 나를 색안경으로 바라보지 않고, 전혀 편견 없이 온전한 나로 평가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심지어 초등학교를 다닐 적에는 1년 내내 학급 친구들에게 이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아도 친구를 사귀고 학교 생활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중고등학교는 다르다. 중학교에서는 친구와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며 나의 부자연스러운 동작과 이해하기 힘든 당황함들( 한 손만을 사용하기에 하지 못하는 것들을 맞닥뜨릴 때 많이 당황하곤 하는데 이는 주변 친구들을 당황시킬 때가 많다)을 설명하기에 바빴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내가 하지 못하는 예체능 수행들 때문에 입학하자마자 담임선생님과 면담을 해야 했고, 수행을 달리 진행해야 할 때마다 친구들의 궁금증을 풀어줘야 했다. 뿐만 아니라 하루 종일 학교에 있기에 마주하는 크고 작은 어러움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지금은 많이 나아진 상황이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던 학기 초에는 매일이 도전이었던 것만 같다ㅋㅋㅋ 급식을 담을 때 오른손으로 식판을 잡고 떨어뜨리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을 최대로 늘려서... 최대한 재빠르게 음식을 담을 수 있을 때까지, 왼손에 수저를 들고 음식을 담고 버릴 수 있을 때까지, 국그릇에 잔반을 모아서 버리는 시간 동안 식판을 똑바로 들고 있을 수 있을 때까지 식은땀 흘려가며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일정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개인 수저를 챙기기도 했고, 퇴식구를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는 등 수없이 방법을 바꿨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와 항상 함께하는 친구 덕분이다. 태어날 때부터 내 몸이 가장 익숙한 나로서는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친구 입장에서는 이게 다 무슨 일들이지 싶었을 것 같다. 나의 시행착오를 모두 보고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있는 그대로 바라봐준 친구에게 정말 고맙다. 혹여나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라는 불안함이 매번 들었던 나였는데.. 덕분에 아주 평범하고 행복하게 학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고마워, 진심으로!
어찌 되었던... 이렇듯 고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는 장애를 밝혀야 하는 순간들이 너무나 많아졌다. 수많은 물음표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나의 어려움들이 불가피한 이유를 밝힐 것인지의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마다 나는 언제나 후자를 택했으니까. 그럴 때마다.. 든 생각이 티 나지 않아서..이다. 차라리 눈에 띄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밝히기 전과 후의 달라진 공기와 그 어색함을 겪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밝힌 후에 상처를 받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애초에 나의 아픈 면까지 받아들여줄 수 있는 친구들과만 관계를 맺을 수 있지 않았을까. 티 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만 여기던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이를 대하는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은 오히려.. 티 나지 않는 게 그렇게 좋은 건가 싶다. 장애가 있다고 하면 꼭 나오는 반응 중 하나가 “에이 진짜 네가?? 난 진짜 몰랐어. 진짜 티 안 나!! “이다. 마치, 티 나지 않는 것이 정말 다행인 것처럼 여기는 반응이나 어렸던 나만 본다 하더라도 장애를 드러내지 않아야 하는 존재로 보는 것 같아서 어느 순간부터 이 말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평생 함께 해야 하는 존재를 이렇게 여긴다면 너무 슬프지 않은가?
장애를 밝힐 때마다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아, 그렇구나.’와 같이 나의 걱정을 무색하게 할 만큼 무미건조한 반응부터 ‘나였으면 그 팔 잘랐다. 의수 쓰지 왜 그 팔로 사냐?’와 같은 어이없는 반응까지 정말 정말 다양하다. 처음 누군가에게 장애를 밝힐 때까지만 해도 시간이 지나면 비슷한 반응들에 익숙해지며 나만의 노하우 같은 게 생길 거란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왜인걸 반응들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상상을 초월했다-처음 팔 잘라라와 같은 얼토당토않은 반응을 들었을 때 너무 웃겨서 화가 날 수도 없었다ㅋㅋㅋ
그럼에도 더 이상 숨길 생각은 없다. 억지로라도 얼버무리며 어렸던 나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나부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내가 될 수 있게 해 주신 담임선생님께 감사를 드린다. 살면서 처음으로 터놓고 내 장애에 관해 이야기했고 들어주시고 공감해 주신 선생님 덕에 용기를 얻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