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등산길에서
우리 학교에서는 매년 전통적으로 등산 행사를 진행한다. 수학여행 다음으로 가장 큰 행사이므로, 걱정보다는 설렘으로 기다린 행사다. 그런데 등산을 이틀 앞둔 날, 담임 선생님께서는 내게 가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말씀하셨다. 위험하다며 걱정에서 비롯된 말씀이었지만, 단체활동에서 불참을 권유받는 것은 처음이라 무작정 기분이 안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참여 의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는 선생님께서 이 말씀을 내게 직접 하실 때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을까. 그리고, 이 말씀에 당차게 “NO!”를 외치는 날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하룻밤 사이, 선생님께서는 내게 새로운 제안을 하셨다. 등산로 입구까지만 가기, 그 이후에 차량을 타고 이동하기 등등 선생님의 고뇌가 느껴지는 감사한 제안들이었지만 나는 차라리 안 가고 말지라는 생각이 이미 굳어버린 상태였다. 내게는 함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는데, 등산에 참여를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겠냐는 마음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는, “폐 끼치지 말자.”라는 생각이 자꾸만 뇌에서 맴돌아서 선뜻 가겠다고 말하지 못했다. “선생님께서 많이 걱정하시는데 굳이 내가 참여해서, 잘 못하고 일을 내면 어쩌지? 나 때문에 모두 힘들어질 것이고, 나는 창피해서 쥐구멍에 숨어버리고 싶을 것이야!” 딱 이 마음이었다. 결국, 등산 당일 아침까지 나는 참여하지 않을 생각을 가지고 선생님께 말씀드렸고, 가지 않기로 했다. 오전 수업에서 아주 뜻깊은 시간이 될 거라고 말씀해 주신 수학선생님의 영향으로 아주 조금 마음이 흔들리긴 했지만, 나의 생각은 여전히 변함없었다. 현실적으로 내게 어떤 어려움들이 들이닥칠지 모르니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니까 갈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는 ‘도전해 볼 만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는 듯했다. 나도 모르게 교무실 앞에 서 있었기에, 그리고선 나도 가면 안 되냐고 거의 애원하듯 부탁드렸기에 그렇다. 내 생애 첫 등산이자 아주 높은 확률로 마지막이 될 텐데 놓치기 아쉬웠다.
많은 걱정을 안고, 교무실까지 발걸음 한 것이었는데, 내게 돌아온 대답은 아주 뜻밖이었다. 내가 다시 가겠다고 할 줄 아셨다며, 처음 말씀과는 다르게 해 보는 데까지 해보고 힘들면 말하라고, 함께 가도 괜찮다고 해주셨다. 그때부터, 며칠 간의 답답함이 뻥 뚫리는 듯했다. 아주 힘들게 얻은 기회이니 끝까지 해보자라는 굳은 다짐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가는 길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남학생들의 속도는 굉장했고, 나와 친구들은 따라잡기 바빴다. 수많은 계단을 오르고 몸의 균형이 맞지 않는 내게는 무척이나 어려운 좁다랗고 경사진 곳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모든 것들이 내 예상대로 흘러간 것은 아니다. 이 길은 내가 갈 곳이 못 된다… 포기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넘어지지 않게 손을 건네주신 선생님이 계셨다. 위험한 길이 나타낼 때마다 내게 조심하라고 말해준 친구가 있었다. 이 길로 가라고 비켜주던 친구들과 살아있냐고 안부를 묻는 유쾌한 친구들이 참 많았다. 이러한 감사한 일들을 겪으며, 내가 했던 걱정들은 괜한 걱정이 될 수 있었다.
지금껏, 도움은 받지 않아야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한 것 같다. 언제나 나의 어려움을 숨겼고, 혼자 해내거나 안 된다면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은 도움을 받는 것도 어쩌면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안 되는 길이라면 “전 못 가요.”라고 말하고 산 중턱에서 기다리려고 했는데 선생님과 친구들의 도움 덕분에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아직까지, 선생님께서 내게 해주신 말씀을 떠올리면 마음이 정말 따뜻해진다.
“손 필요하면 말하고! 힘들다면 너에게 속도를 맞춰줄 수 있어~ 정말 다 해 줄 수 있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감동이었다.
학교에서 친구가 발표한 내용 중에 이러한 내용이 있어서 받아 적은 적이 있다.
“저는 자신의 한계는 넓혀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의 나는 이 말에 큰 공감을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한계를 넓힌다는 건, 적어도 나의 신체적 한계에는 적용되지 않으니까. 그런데, 이 등산을 계기로 ‘한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작은 도움으로, 절대 못 갈 것만 같았던 길이 갈 수 있는 길이 되었고, 못 오를 것만 같았던 산이 오를 수 있는 산이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조건들이 부족하다면, 도움을 통해 채우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이를 통해 나의 ‘한계’를 넓힐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고 싶어졌다.
고작 산 하나 올랐을 뿐인데, 내가 얻게 된 성취감과 감사함의 크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올해 가장 잘한 결정임에는 틀림없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추억, 함께 만들어준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그리고 큰 도전을 한 내게도 큰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