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편이다. 아주 열심히는 아니지만, 적어도 모든 것에 최소한의 성의는 보였다. 먹고살기 위해 평범한 일을 나름대로 충실히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오늘도 다른 날들과 똑같이 일을 마치고 돌아와 유튜브를 보며 저녁을 먹으려고 했다. 그때였다.
"그동안 사느라 수고했다. 상으로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게 해 주겠다. 일주일 뒤에 다시 올터이니 준비를 해놓도록 하여라."
마치 귀가 아닌 머릿속에서 울리는 듯한 음성에 깜짝 놀라 들고 있던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바쁘게 고개를 움직이며 주변을 살폈다. 분명 나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귀를 만져봤지만 에어팟 같은 것은 당연하게도 꽂혀 있지 않았다.
"이게 무슨..."
혼란스러웠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방금 내게 말을 건 것은 확실하게 '신'이라는 것. 신이 아니라면 적어도 나보다 한 차원 높은 존재라는 것.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으로서의 본능이 그렇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신이었다고. 그렇다면 나는 확실히 일주일 뒤에 죽을 것이다.
궁금한 것들이 끝없이 생각났다. 죽는다면 어떻게 죽는지, 죽음은 고통스럽지 않을지, 죽은 후에는 어디로 가는지, 환생은 있는지, 돌아가신 할머니를 만날 수 있는지 등...
아, 그러고 보니 수고했다느니 상이라느니 나에게 호의적인 태도이지 않았나? 해봐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든 나는 허공에 말을 걸기 시작했다.
"저기요? 신님?"
.......
"야! 대답 좀 해봐!"
당연하게도 대답은 없었다. 아마 대화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아니면, 대답해 주기 싫던가. 어쨌든,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일주일 뒤에 죽을 것이라는 선고를 받았음에도 놀랍도록 침착한 자신에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어쩌면 이 지겨운 삶을 벗어날 수 있음에 기쁜 마음도 있었을지도.
칙— 칙—
평소에는 별로 피지도 않던 담배를 찾아 불을 붙였다.
"쓰읍— 하아아..."
주인아줌마가 지랄할게 뻔했지만 뭐, 곧 죽을 건데 알 바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앞으로가 고민이었다. 일단 거지 같은 회사는 당연히 때려치우고. 일주일 동안 뭘 해야 할까? 난 뭘 하고 싶은 거지? 가족들에게는 뭐라고 말할까? 친구들에게는? 내 유산은 누구에게 주지? 아, 그러고 보니 유언장이라도 써야 하나?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정리하는 것을 포기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 짧다면 정말 짧은 시간. 이러고 있는 시간도 아까웠다. 고민하는 것은 생각나는 것을 모두 한 뒤에 해도 늦지 않다고 결론을 내린 뒤, 나는 즉시 상사에게 전화했다.
"여보세요? 이런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야 김 대리."
"부장님. 저 그만두겠습니다."
"김 대리,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내가 뭐 서운하게 한 ㄱ—"
뚝.
부장님 아니, 부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끊어버렸다. 평소에는 절대 하지 못했을 행동을 하니 일종의 해방감이 느껴졌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못할 것이 없었다. 한편으로는, 허무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서 이리 살아왔던 것일까. 하기 싫은 것을 꾹꾹 참으며 살았을까.
갑자기 몰려오는 공허감에 고개를 빠르게 흔들었다. 나의 습관 중 하나였다. 불안하거나 우울하면 고개를 세게 흔든다. 그래도 안되면 내 뺨을 스스로 때린다. 고개를 흔들었음에도 계속해서 안 좋은 느낌이 꾸역꾸역 올라오자 습관처럼 손을 올려 뺨을 때리려던 찰나, '왜 내가 맞아야 하지'하는 의문이 들었다. 우울한 감정 같은 건 일하고 살아가는 데 별 도움이 안 되니까 평소에는 그렇게라도 억제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왜 나는 그렇게 살았어야 했을까? 억울한 감정이 올라왔다. 뺨을 때리지 않았다. 그리고 손을 올린 김에 세상을 향해 중지를 올렸다.
"Fxxk you. 엿이나 먹어."
그 말이 허공 속으로 사라질 때, 다시 한번 해방감이 느껴졌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나를 억압하는 이 세상을 향해 작은 반항을 시작한 것이었다. 내 안의 무언가가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분명 살아있었다.
어차피 곧 죽을 거 신용카드 막 쓰고 빚내도 되는 거 아닌가 싶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것을 남기진 못할지언정 적어도 가족들에게 빚을 남길 수는 없었다. 당장 내 통장에 있는 돈은 700만 원. 이 정도면 그래도 하고 싶은 건 대충 다 해보지 않을까. 부족하면 그때 생각하자.
"하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곧 죽게 생겼는데 돈 걱정이라니. 돈, 돈, 돈, 그놈의 돈. 아주 지긋지긋했다. 결국 그 돈 때문에 그렇게 잠 줄여가며 공부해서 대학을 갔고, 대학에서 열심히 취업을 준비했으며, 취업해서도 매일을 고통스럽게 일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였을까. 사실, 그 과정에서도 가장 절망적인 건 이 버티는 삶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것이었다. 대학만 간다면, 취업만 한다면, 승진만 한다면, 내 집만 산다면. 도대체 어디까지 인내해야 끝나는지 알 수 없었다. 대체 인생에서 행복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행운인지 불행인지 난 이 삶에서 해방됐다. 더 이상 미래를 걱정하며 살 필요가 없어졌다. 곧 죽을 것이니까.
복잡한 마음과 후련한 마음을 가지고 침대에 누웠다. 아직 밥 먹은 거 안 치웠는데. 뭐, 별 상관없지. 이런저런 일을 겪어 피곤해서였을까, 아니면 별 걱정이 없어져 편안해서였을까. 나는 곧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알람 없이 일어났다. 따스한 햇빛이 방을 비추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 방은 이 시간에 해가 잘 드는구나. 3년을 넘게 살았는데 이제야 해드는 시간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인식하자 웃음이 새어 나왔다.
"흐... 크....."
이내 크게 웃기 시작했다.
"푸하하하하!"
눈물이 찔끔 나왔다. 이렇게 웃어본 것도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왜 웃는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웃었다.
"하아."
검지로 눈물을 닦으며 폰을 들고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일주일의 자유를 얻은 내가 제일 먼저 할 일은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부모님께 죽음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병에 걸렸다고 하기에는 너무 멀쩡했고, 다른 이유를 대자니 인간이 미래를 어떻게 아는가? 그래서 그냥 얼굴이나 뵙고 인사만 드리기로 결심했다.
띵동—
"누구세요?"
"저예요 엄마."
급한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이내 문이 열렸다. 어느새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어머니가 놀란 표정으로 서계셨다.
"얘, 지금 이 시간에 웬일이니? 회사는 어떡하고!"
"잠깐 들렀어요. 잠시 들어가도 되죠?"
"그래 그래. 빨리 들어와.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어."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웃고 계신 표정을 보니 기분이 좋아 보이셨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래도 자주 찾아뵐 걸 그랬다. 꽤나 놀란 듯한 표정의 아버지가 거실에 서계셨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냐."
"오랜만에 인사도 드릴 겸 왔어요. 아, 엄마. 그리고 이거요."
손에 들고 있던 홍삼 박스를 어머니께 건넸다.
"아유. 그냥 오지 뭐 이런 걸 사 왔어. 자자, 그러지 말고 잠깐 앉거라. 응?"
"네. 별거 아니니까 챙겨 드세요."
나와 아버지가 거실에 자리를 잡자, 어머니는 부엌에 들어갔다. 아마 과일을 가져오시려나 보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아버지가 먼저 입을 여셨다.
"회사는 어떡하고?"
"오늘 잠깐 쉬려고요."
"... 성실하게 다녀야지."
"예."
말씀을 하시고는 갑자기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셨다.
"너 무슨 일 있구나."
"그런 거 없어요 아버지."
"내가 널 아는데. 계속 거짓말할 거냐."
"......"
또 이런 건 귀신같이 아신다.
"사실 회사 그만뒀어요."
"왜."
"그냥... 힘들어서요."
평소 같았으면 그냥 넘겼겠지만, 지금은 왜인지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마음이었기에 티가 났으려나.
"쓰읍... 사내자식이 말이야... 그러고 보면 예전부터 그렇게 나약했어. 삼시세끼 꼬박꼬박 먹으면서 공부만 하는 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징징 우는 소리나 하고. 어? 이제 군대 갔다 와서 사람 됐나 했더니,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왜 때려치워! 그래. 요즘 좀 잠잠하다 했다. 너 인마 너 대학 보내려고 니 어미랑 뼈 빠지게 일해서 먹여 살렸더니, 그거 앉아서 하는 일 조금 힘들다고 그만둬? 아주 잘하는 짓이다. 효자야, 효자."
한 소리 들을 줄은 알고 있었지만, 듣고 또 들은 얘기를 또 들으려니까 머리가 아파왔다. 하지만 오늘은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가 불쌍했다. 곧 죽는 자식과 마지막으로 한 대화가 이렇다니.
"죄송합니다."
"죄송한 줄은 아는구나. 남들도 다 힘들어. 어? 너만 힘든 줄 알지? 세상 나가봐라. 누가 좋다고 일하면서 사나. 남들도 그렇게 다 참아가며 하는 건데 넌 뭐가 그리 못나서 이거 하나 못 버텨!"
그렇다. 인생은 원래 힘든 것이었다. 모두가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모두가 살아나간다. 아버지는 그저 속상하고 걱정되시는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더욱 씁쓸한 웃음이 지어졌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 그리고 연세도 있으신데 그렇게 화내시면 건강에 안 좋아요. 금방 또 취직할 테니 진정하세요."
"허... 이놈이 내가 나이 들었다고 아주 무시를 하는구나."
"그런 게 아니라-"
"꼴도 보기 싫으니까 나가! 다시 일자리 구할 때까지 얼굴 볼 생각도 하지 말아라."
말을 마치자마자 방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곧 쾅— 소리와 함께 방문이 닫혔다. 대화로 풀어드리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하긴 몇십 년 동안 쌓인 것이 금방 풀릴 리가 없었다. 그저 지금은 안타까울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보는 아버지 모습이 화내는 것이라니.
어머니가 조심스레 과일을 들고 거실로 나오셨다.
"에고... 그러니까 왜 그만뒀어. 너희 아버지 성격 알면서."
"사정이 있었어요."
"그래, 이제 어른인데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금방 풀리실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말아라."
"네. 어머니도 걱정 마세요."
"그래 우리 아들. 줄 게 없어서 어떡한담. 이거라도 좀 먹고 가거라."
"네,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예쁘게 깎여진 사과를 입에 넣었다. 맛있었다. 어머니 얼굴을 바라봤다. 정말 많이 늙으셨구나. 마음이 좋지 않았다. 효도 한번 못했는데, 최악의 불효를 저지를 예정이니 말이다. 그래도 할 건 해야지. 사과 한 조각을 마저 먹고 아버지 방문 앞으로 갔다.
똑 똑—
가볍게 노크를 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화가 단단히 나신 모양이다. 나는 옷매무새를 다듬고 문 앞에 바로 섰다. 그리고 아버지를 향해 큰 절을 올렸다.
"아버지.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뒤를 돌자 어머니가 당황하신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께도 똑같이 큰절을 올렸다.
"어머니. 낳아주시고 길러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건강하세요."
"얘가 갑자기 왜 이래? 정말 무슨 일 있니?"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나는 티를 안 내려고 애써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진짜 별일 없어요. 그냥, 이렇게 표현한 적이 없는 것 같아서요."
"에구. 우리 아들 철들었구나. 그래. 응. 고맙다."
조금 안심이 되셨는지 표정이 풀어지셨다. 무언가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기분에 급하게 나갈 준비를 했다.
"왜, 온 김에 좀 더 있다 가지..."
"저 바로 가봐야 할 곳이 있어서요. 잠깐 들른 거예요."
"그래. 바쁘겠지. 밥 잘 챙겨 먹고."
"네 엄마. 조만간 또 찾아뵐게요."
"항상 조심 운전하고. 응?"
"네네. 걱정 마세요."
아쉬운 표정의 어머니를 뒤로하고 현관문을 닫았다. 부모님과의 마지막 인사를 마쳤다. 마음이 복잡했다. 그제야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어머니께 들릴까 하는 마음에 급하게 계단을 내려갔다.
어머니, 아버지. 정말 감사했습니다.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